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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e Mar 09. 2020

3월 9일의 D에게

점심 시간에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가 너를 닮은 사람을 봤어. 생긴 게 너를 닮았다기 보다는, 분위기가 닮았다고 해야할까. 직장 동료들이랑 나온 것 같은데 웃으면서 이야기를 잘 이어나가더라고. 생각해보니 웃음소리가 좀 닮았던 것 같기도 하다. 처음 내가 이끌었던 새가족 모임에서의 널 보는 것 같았어. 


오늘 하루는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갔어. 오전에는 자료조사를 마저 하다가 잠깐 회의를 하고나니 점심시간이 되어버렸고. 점심이야 늘 도시락 후다닥 먹고 커피 마시러 다녀오면 '순삭'이고. 오후에는 오랜만에 배너 디자인을 했는데, 매일 기획만 하다가 디자인 만지니까 재밌더라고. 광고회사 힘들긴 한데 또 이럴 때 재밌어. 잡다하다고만 생각했던 내 재능(?)들이 나름 또 쓸모가 있구나- 싶어지거든. 아직은 한 분야에 대한 전문성은 없지만, 차근차근 배우다 보면 나도 주력 분야가 생기지 않을까. 마음이 점점 조급해지긴 하는데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니라 시간도 노력도 쌓여야하니까. 내 자신을 재촉하지는 않으려고. 그냥 좀 열심히 해보려고.


퇴근하고나서는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엄마 아빠 결혼 기념일이어서 같이 작은 축하 파티를 했어. 갑자기 티라미수가 먹고 싶다는 아빠의 말에 차를 타고 나갔는데 첫 번째 가게에 없는 거야. 한 군데만 더 가보자 하고 두 번째 케잌 가게에 갔는데 다행히 딱 한 조각이 남아있더라고. 그거 하나 사서 집에 왔어. 다같이 케잌을 먹기 전에 'Can't Help Falling in Love'를 틀고 싶었는데 발음을 굴리면 굴리는 대로, 안 굴리면 안 굴리는 대로, AI가 말을 못 알아들어서 아쉬운대로 잔나비의 'She'를 틀어놓았어. 그렇게 셋이 티라미수를 나눠먹고서 아빠는 안방으로, 엄마는 거실로, 나는 방으로 흩어졌어. 


어제부터 운동을 하기 시작해서('한다'는 동사는 아직 민망하니 '시작'에 초점을 맞추는 걸로) 지금도 배가 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사실 몸 군데 군데가 멍이 든 것처럼 아파. 운동을 너무 오래 쉬었나봐. 그래도 다시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니 바람직하지 않으니? 사실 생존하려는 몸부림에 더 가까운지도 몰라. 아직 못 해본게 많은데 그 못한 걸 나중에라도 하려면 몸 관리를 건강하게 잘 해놔야할 것 같아서. 미래를 위한 나의 투자야. 


씻고 잠드는 시간까지 계산해보니 이제 슬슬 옷 갈아입고 스트레칭부터 시작해야겠다. 시애틀은 이제 하루가 시작되겠네. 좀 바보같은 소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시차가 있다는 게 신기해. 분명 같은 시간 속에 살고 있는데 너는 나 보다 16시간 늦은 날짜 속에 살고 있다는 게. 아무튼 말이 길어졌는데 여기서 정리할게. 

잘 지내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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