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토리 Jan 07. 2019

당근밭 이삭줍기

수확이 끝난 밭에서 '당줍'하기

 토요일 오후 아내 휴대폰에서 ‘깨톡~’ 소리가 울렸다. 마을주민 한 분이 당근 이삭줍기를 할 수 있는 밭의 주소와 사진을 단톡방에 올린 것이다. 당장 가고 싶었지만 두 아이가 감기로 거의 일주일째 앓아누워있다. 특히 큰 아들은 열이 계속 오르락내리락한다. 다음날 아침 어느 정도 회복한 둘째 딸에게 아이패드 유튜브 동영상 2시간 이용권을 주고, 오빠를 보살펴 달라는 부탁을 했다. 거래는 성사되었다. 곧장 내비게이션에 '구좌읍 평대리'를 찍고 자동차를 몰았다.  


| 제주당근이 곧 구좌당근이다

 해마다 차이가 있지만 제주도는 전국 당근 생산량의 50~70%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제주 까페에서는 당근을 이용한 케이크와 당근주스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제주에서 당근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은 북동쪽에 위치한 구좌읍이다. 2017년 제주통계연보에는 아예 당근 생산량의 100%를 구좌읍이 차지하고 있다. 다른 제주 지역의 당근 생산량 기록 자체가 없다. 물론 소규모로 당근을 재배하는 곳이 있겠지만, 판매를 위한 제주 당근의 대부분이 구좌읍에서 생산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될 듯하다. 제주당근이 곧 구좌당근이다.


| 당근 재배에 알맞은 환경

 우리나라에서 겨울에 당근을 생산할 수 있는 지역은 제주도가 유일하다. 겨울 기온이 영상 4~5도 정도로 높기 때문이다. 또한 구좌읍을 포함한 제주 동북부는 다공질의 현무암이 풍화된 폭신폭신한 토양이 잘 발달해 있는데,  이런 땅을 제주에서는 ‘뜬 땅’이라고 부른다. 비가 많은 곳이지만 뜬땅은 배수가 잘되어 당근과 같은 뿌리채소를 재배하기에 알맞다.


 사실 제주에서 당근을 이처럼 대규모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1970년대부터라고 한다. 당근 재배에 알맞은 독특한 제주의 자연환경과 함께, 이 즈음에 발달한 여러 교통수단으로 인해 농산물을 육지로 쉽게 보낼 수 있게 된 것도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 수확이 끝난 밭에서 '당줍'하기

 제주에서는 수확이 다 끝난 밭에 상품가치가 없는 일명 ‘파치’들을 얼마간 남겨두어 이웃들이 가져갈 수 있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우리가 찾아간 곳도 그런 곳이다. 생각해보면 파치를 이웃들에게 제공하게 되면 소비량이 줄어 생산자에게는 좋지 않을게 뻔하다. 올해는 특히 여름이 너무 건조해서 파종했던 당근들이 말라죽어서 농가들이 많이 힘들었었다. 그럼에도 피땀어린 귀한 수확물을 이웃들에게 남겨주는 농부들의 따뜻한 마음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구좌읍 평대리 당근밭에서 파치를 줍고 있는 아내
주워온 당근을 햇빛에 잠시 말린 후  종이상자에 넣어 그늘진 곳에 보관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