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이 사회를 바꾸지 못해도

사람의 행위를 바꿀 수는 있다.

by 도란도란

“교수님, 건축이 사회를 바꿀 수 있나요?”

20년전 대학생 시절, 건축학과 전공이던 나는 설계수업 1:1 크리틱을 마치며 그렇게 물었다.


교수님의 대답은 단호했다.

“아니. 건축은 사회의 산물이야. 사회의 요구에 의해 생겨나는 거지.”


사회의 요구로 태어나지만, 건축가는 해석한다.


건축은 언제나 사회의 요구에서 출발한다.

건축주, 예산, 법규, 제도 —

이미 정해진 조건 속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그 요구를 어떻게 읽고, 어떤 공간으로 제시하느냐

건축가의 해석에 달려 있다.


공간은 사회의 언어이고,

계획은 건축가의 문장이다.

복도의 폭, 창의 방향, 마감의 질감 같은 사소한 결정 속에도

사람의 관계와 시선, 삶의 리듬이 담긴다.

그게 내가 믿는 ‘건축의 힘’이다.



그러나 현실은 언제나 벽을 세운다


실무에 들어오면 그 벽의 두께를 실감하게 된다.

공공건축을 설계한다 해도

건축가가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부분은 놀라울 만큼 제한적이다.

시설관리, 예산, 유지보수, 그리고 — 공무원들.


편의주의와 리스크 회피가 뒤섞인 행정의 벽 앞에서

‘공공의 건축’은 종종 ‘무난한 구조물’로 수렴된다.


가끔 생각한다.

우리나라 공공건축의 발전을 막는 건

기술 부족이 아니라 용기 부족이 아닐까.

새로운 시도를 믿고 함께 감당할 리더십이 없다면,

아무리 훌륭한 도면도 종이 위에만 머문다.



그래도, 건축은 여전히 사회를 비춘다


2011년, 일본 답사에서 봤던 한 초등학교가 아직도 기억난다.

작은 시골 마을의 학교였지만

그곳에는 아이를 존중하는 철학이 공간마다 살아 있었다.


지방의 ‘총괄건축가’가 도시의 방향을 세우고

젊은 건축가들에게 기회를 주는 시스템.

공공건축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서포트가 부러웠다.


건축이 사회를 바꾸지 못하더라도,

그 사회를 조금 더 선명하게 비추는 거울이 될 수는 있다.

우리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어떤 삶을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가 —

그 질문을 건축은 결코 피할 수 없다.



사회를 비춘 빛은, 결국 사람에게 닿는다


건축은 사회를 비추지만,

그 거울 속에는 결국 ‘사람’이 있다.


사회는 건축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사람은 그 공간 속에서 자신을 다시 느낀다.



공간은 말하지 않아도 제안한다


건축이 사회를 바꾸지 못하더라도,

사람의 행위를 바꿀 수는 있다.

벽하나, 창 하나에도 사람의 동선이 달라지고,

하나의 벤치 높이만으로도 머무르는 방식이 달라진다.


공간은 글로 지시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말한다.

“여기는 뛰어도 되는 곳이에요.”

“여기는 조용히 머물러도 괜찮아요.”


그게 내가 믿는 건축의 힘이다.

건축은 사람에게 행위를 제안하고,

머무름의 방식을 열어주는 언어다.

사회는 그 언어를 통해

조금씩 자신을 다르게 느끼게 된다.



어떤 공간에 갔을 때,

좋은 기분을 느끼는 순간을 저마다 기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건축가는 충분히 흡족할 것 같다.


그게 내가 이 일을 좋아하는 이유다.



글 | 도란도란

#건축에세이 #도시와사회 #공공건축 #공간의언어


작가의 이전글스케일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