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아이가 십대에 접어들었다.
내 도움 없이는 목조차 가누지 못하던 생명이 자라, 이젠 기꺼이 저의 품을 내어준다. 발걸음을 맞춰 함께 걷고 때론 나를 위해 울어도 주는 벗으로 성장했다.
간만에 아이 손을 잡고 밤마실 가던 길. 그가 내게 물었다.
"엄마. 어떤 나무는 자기 키의 두 배나 되는 뿌리를 갖고 있대. 20미터 가까이 자라는데 그 뿌리가 40미터도 더 넘는다는거야. 대단하지 않아? 그 나무가 바오밥 나무야."
그 사실을 기억해서 전해주는 아이에게 고맙고, 제 키의 두배만큼이나 뿌리를 뻗어 기필코 살아남고 마는 그 나무에 고마워 마음이 뭉클했다.
미풍만 불어와도 한없이 흔들리는 내 삶의 가벼움이 부끄러웠다. 거꾸로 심어 놓은 것 마냥 투박해보이는 바오밥나무. 그 외양 속에 숨겨진 비견할 수 없는 생명력. 작은 행성 따위야 부시고도 남을거라던 그 힘에 대해 생각해본다.
"바오밥나무는 자칫 늦게 손을 쓰면 그땐 정말 처치할 수 없게 된다. 별을 온통 엉망으로 만드는 것이다. 뿌리로 별에 구멍을 뚫는 것이다. 게다가 별이 너무 작은데 바오밥나무가 너무 많으면 별이 산산조각이 나버리고 만다.”
- ‘어린왕자’중에서, 생택쥐베리
담담히 제 할 말을 건네며 아이가 걷는다. 그렇게 둘이 함께 어둠을 헤쳐 걸었다.
우리의 밤 산책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으려나. 아이는 지금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신의 세상을 향해 달려 나갈 것이다. 보폭을 함께 맞춰 걸어 갈 수 있는 날들도 머지 않았다.
모든 관계가 그러했듯 아이와 나의 관계 역시 매 시기마다 나름의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어느 순간 관계의 역전도 일어날테지.
분명한 건 '지속되는 관계'에는 비밀이 있다는 사실. 부모지간이든, 연인 사이든, 친구 관계든, 사제지간이든, 시기별로 찾아오는 변화에 적응해야만 유지될 수 있다.
내가 돌보았던 이에게 돌봄을 받고,
내가 가르쳤던 이에게 교훈을 얻고,
도움을 받았던 이에게 도움을 돌려 주는
관계의 역전이
필요하다.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란
시들고 진부해지기 마련이기에.
달빛 아래 아름다운 이야기들 흩어져 버릴새라 조심 조심 주워 담는다. 가을밤 바오밥의 추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