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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실 Nov 27. 2023

[논찬문] 새로운 시대, 민주주의를 향한 개신교의 과제

기윤실-크리스챤아카데미 대화모임: 20221205 반성과 성찰로 나아감

주제 : 한국 개신교와 민주주의 총평_반성과 성찰로 나아감


한국민주화의 발전과제」 관련 논찬문 


조성실 (시사평론가/정치하는엄마들 전 공동대표)


1. 새로운 시대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개신교의 관계를 논함에 있어 대표성을 갖는 단체로는 단연 크리스챤아카데미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에도 도시산업선교회 등 개신교 내 소수의 단체들이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거점으로서 역할 하였고, 기독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민주화 운동은 제도적 민주주의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독재 정권 타도라는 거대악 척결과 민주화라는 거대 담론이 공통의 주제였던 시대 속에서, 각계 지도자 양성, 민주 인사 구명을 위한 활동과 기도회 등 냉혹한 시대를 견디며 이어져 온 사역들은 1987년도 개헌을 비롯해 다방면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본 논찬문은 본고에 자세히 기술된 과제들 이외에 우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추가적 과제들이 무엇인지에 주안점을 두고 작성하였다. 


 87개헌 이후 민주화 투쟁이라는 거대 담론이 다소 약화되면서 개신교계의 민주화를 위한 노력은 시민운동 및 문화 사역 측면에서 이어져 왔다고 볼 수 있다. 개신교 민주화 운동 그룹 인사들의 제도권 정치 진입도 이어졌다. 한편 개신교계 내 다수 비중을 차지하는 지도자 그룹 역시 과대표성을 갖고 현실정치에 참여하며 정치세력화의 한 축으로 꾸준히 성장해 왔다. 


 동시에 다원화되고 있는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각개 시민이 판단해야 할 정치적 의제수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고, 멀티미디어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인해 사실과 의견의 구분을 넘어 매 순간 진위 여부까지 확인해야 하는 정보들이 겉잡을 수 없이 쏟아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기독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거대 담론에 대한 개신교계의 입장이 표명되었던 시대를 지나, ‘각 개신교인들’이 매 순간 스스로 정보를 분별하고 정치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2. 추가적 과제

 

 그런 점에서 ‘반민주적 정치행위를 하나님의 뜻으로 동치시키며 성도들의 정치세력화에 앞장서는 교계 지도자들을 고립시켜야 한다’,  ‘우리의 정치 사회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고 이를 위한 개신교적 대책과 참여 방식을 강구할 수 있는 상설 기구가 필요하다’는 발제자의 주문에 공감하였다. 


 나아가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자 민주시민으로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한 교육 조직의 시급한 필요성도 강조하고 싶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복음주의와 에큐매니컬 운동의 핵심적인 두 단체가 모여 함께 대화를 이어가는 이 자리가 더욱 뜻깊게 느껴진다. 에큐매니컬 진영의 역사적 경험과, 복음주의 진영의 영성이 함께 어우러져 균형 잡힌 교육의 장을 마련할 때, 신앙인이자 건강한 시민으로 공존하고자 씨름하는 이 시대의 적지 않은 개신교인들이 통찰과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프로테스탄트적 신앙고백에도 불구하고 국내 개신교인들은 여전히 교계 지도자들을 통한 말씀적용과 학습에 익숙하며 이러한 성향은 정치사회적 의사결정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바탕에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복음의 유일성이 익숙한 신앙인들의 사고방식과 교계 내 위계적 문화가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민주주의를 충분히 경험해보지 못한 대한민국 개신교인들이 다수인만큼, 개신교인에게 민주주의는 때때로 난해하고도 모순적인 난제로 다가오는 것 같다. 그 바탕에는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민주주의적 의사결정 과정을 괄시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목표로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가볍게 여겨온 교회 내 문화도 자리하고 있다. 본고에 상술된 것처럼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개신교계의 대외적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개신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민주시민이자 하나님나라의 성도로 세워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오늘 이 자리를 통해 그 일에 두 단체가 힘을 모아 앞장 서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대한민국 단독 정부 수립 이후(특히 70년대 이후) 개신교계 내 일부 그룹을 중심으로 정치적 민주화를 위한 노력이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고학력 개신교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사회선교, 노동운동, 빈민운동은 그 자체가 민주화 운동으로서 기능하며 여러 법제도적 변화의 촉매로 역할해 왔다.  


 그러나 민주 정권 수립 이후 수차례의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헌법 및 법률을 중심으로 한 권력 구조 개편은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 한 채 정체되어 있어 아쉬움을 자아낸다. 2017년 국회 내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설치되었지만 개헌 필요성에 대한 공감 이외에는 실질적 추진은 이루지 못한 채 사실상 빈손으로 그 회기를 마무리하였다. 본고는 이러한 정치적 민주화 과제를 비롯하여 합의제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제도적 개편, 경제적 민주화 실현을 위한 과제 등 정치⋅경제⋅사회적 민주화를 위한 개신교계의 역할과 과제를 그 핵심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물론 개신교계가 시민사회와 힘을 합쳐 해결해 가야 할 법제도적 과제 역시 적지 않고 이러한 변화를 도모하기 위한 개신교계의 꾸준한 노력 역시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본고는 국회를 비롯해 ‘제도권 정치를 통해야만’ 사실상의 구현이 가능한 법제도적 과제들을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우리는 지난 연동형 비례대표제 사태를 경험하면서 제도주의적 노력의 한계를 경험한 바 있다. 바로 지난한 과정과 시행착오, 제도의 악용 가능성 등이 그 예이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주의의 발전과 성공은 제도적 설계에 국한되지 않는다.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는 정치 행위를 방지하도록 하는 것이 제도적 설계의 일차적 목적이라면, 민주주의의 완성은 민주시민의 출현과 양성을 통해 마침내 구현된다. 역설적으로, 민주시민이 결여된 제도적 민주주의는 자칫 인권 및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하는 합리적이고도 설득적인 장치로 악용될 수 있는 법이다. 따라서 법제도적 노력과 더불어 개신교인들을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시민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는 역할도 반드시 병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정치철학 도서 읽기 모임, 민주적 정관의 도입과 실천, 교회 내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등은 이를 위한 효과적 교육 방안으로 작용할 것이다.     


 나아가 개신교적 세계관과 민주시민소양을 내재한 정치인들을 발굴하고 연결하는 역할도 함께 해낼 수 있다면 좋겠다. 물론 이러한 활동이 특정인이나 특정 정당을 중심으로 한 배타적 지지로 이어지지는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개인의 선한 의지는 인간의 연약함과 죄성으로 인해 쉽게 변질된다. 교계 또는 교회 내 정치의견그룹의 경우 정치적으로 동원되거나 자칫 세속적인 정치세력화 그룹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시적으로 견지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적 방안 역시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다양한 정치적 견해와 입장차를 가진 이들이 개신교 신앙이라는 공통의 가치를 중심으로 모여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상호간 생각의 차이와 합의점을 나누어 간다면 이 또한 민주적 가치 실현에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88만원 세대론에 관해 들었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논찬문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진보 진영은 88만원 세대론과 관련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고 정치의 역할과 책임을 촉구한 바 있다. 사회참여적인 태도와 신앙적 고백의 균형을 갖춘 개신교인이라면 88만원 세대론은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할까? 88만원 세대에 담겨있는 시대적 모순을 즉시하고 그러한 현실에 저항하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88만원을 가지고도 살아갈 수 있도록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삶 속에서 경험해 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기독시민의 균형 잡힌 삶의 태도가 아닐까? 이와 관련해 강연자는 그 삶을 가능하도록 돕는 신앙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릎을 치게 만든 통찰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희년 공동체, 초대 교회 공동체의 정신을 핵심가치로 삼는 교계의 실험들에 주목하게 된다. 경제적 민주화를 향한 개신교계의 가장 강력한 실천 운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희년은행을 비롯한 개신교계 내 경제 관련 실천 운동들에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교회도 선뜻 시작하지 못하는 일을 기업과 사회, 국가적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해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며 실천해가는 개신교도(교회)들의 삶이 우리 사회 내 경제적 민주화 발전에도 긍정적 자극제로 견인적 역할을 해나가기를 기대하고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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