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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실 Dec 04. 2023

[논찬문] 이념 논쟁과 한국 사회 그리고 교회에 관하여

기윤실(기독교윤리실천운동)-크리스찬 아카데미


 초등학생 때로 기억한다. 가족들과 식사를 하며 티비를 보고 있었다. 대학생들이 연세대를 점거 했다는 뉴스와 함께 진압을 위해 출동한 헬기가 화면에 잡혔다. 부자연스럽게 티비 전원을 끄려던 엄마와 그걸 말리려는 아빠 간에 말다툼이 시작됐다. 저런 뉴스를 구태여 보여 주지 않아도 대학에 가면 운동권이 될 것 같아 걱정이라던 엄마와 세상 돌아가는 형편을 다방면으로 듣고 배워야 자기 삶을 책임지는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던 아빠 사이에 긴장감이 강렬했던지 이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뚜렷한 유년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때가 1996년의 어느 하루였다는 사실은 그로부터 십여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의 걱정과 달리 대학에 입학한 2005년 대학 캠퍼스 내에서 운동권 선배들을 만나는 건 드문 일이었고 학생회나 동아리 몇 곳에 관련 분위기가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언뜻 들어본 적이 있을 뿐이었다. 


1. 바야흐로 ‘05학번이즈백

 우리는 지금 그 05학번이 추억 소환 컨텐츠물의 상징으로 소비되는 시절을 살아가고 있다. 유튜브 내 새로운 코미디 무대를 개척해 낸 성과로 백상예술대상 예능작품상을 수상한 <피식대학> 채널의 주요 컨텐츠 중 하나는 ‘05학번이즈백’이다. 다시 말해 1세대 SNS의 상징이었던 싸이월드 감성이 복고의 기준이 되는 시대란 이야기다. 탈이데올로기의 시대에 나고 자란 이들에게 광복절 경축사를 비롯한 이념 논쟁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회귀한 이념 논쟁의 핵심 이슈였던 육사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에 대한 국민적 평가는 부정적이었다. KBS와 한국리서치가 전국에 거주하는 만 18세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추석 특집 여론조사에 따르면 70세 이상을 제외한 전세대에서 반대 의견이 찬성 대비 최소 20%p이상 높았다. 그 중에서도 30-40대는 흉상 이전에 대한 동의가 약 18-19%대 비중을 차지한데 반해 반대 입장을 표명한 응답자는 73-74%에 달했다. 20대의 경우 ‘모름/무응답’ 비중이 15.7%로 16.0%를 보인 70세이상층 다음으로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여론조사 결과 뿐 아니라 그 후 진행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도 이를 방증한다. 발제자의 분석처럼 적어도 다음 총선 국면에서 이념 논쟁의 재점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2. 역할과 쓸모 

 그럼에도 국제 안보 환경과 분단 국가로서의 숙명을 공히 고려할 때 이념 논쟁으로의 회귀는 여전히 유효한 카드다. 역사 속 인물에 대한 재평가와는 또 다르게 현재적인 안보 위협과 이에 관한 대응 카드는 언제든 정치 이슈를 삼키는 최우선 화두가 될 수 있다. 물론 세대별 차이와 경향성이 뚜렷했던 전과는 다른 양상으로 여론이 전개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정치 지형 속에서 개신교회의 역할과 쓸모는 무엇일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하는 개신교인에게 사회는 그리스도인으로 삶을 살아나가야 할 주 무대이자 파송 받은 선교지에 해당한다. 이는 자연스레 사회적 역할과 정치적 책임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된다. 

 그렇다면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자. 사회 그 중에서도 정치권 입장에서 바라 볼 때 개신교회에 기대하는 역할은 무엇이며 그 쓸모는 어느 정도일까. 기본적으로 정치권은 각 종교계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한다. 현대사의 주요 정치인들은 종교계와 다양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으며 주요 여론을 수렴해왔고 국가적 위기와 갈등이 초래될 때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여론과 지혜를 경청하는 방식의 정치 행위를 이어왔다. 그 중에서도 개신교계의 영향력이 단연 돋보였는데 그 기저에는 계속 된 교세 확장과 수적 우위가 자리하고 있었다. 종교적 영향력에 기반 한 사회적 권위와 수적 우위를 자랑하는 교세를 바탕으로 교계의 존재감이 확대되어 왔고 그 영향력은 단연 매 선거 시즌마다 정점에 달했다. 다수의 중대형 교회들이 소문의 허브이자, 군중의 집결지이며, 정치적 열정을 가진 이들의 거점으로서 역할 해 왔다. 어느 때엔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주요 정치인들을 견인했고, 그렇지 않을 때엔 극우 포지셔닝을 도맡아줌으로써 전통적 보수 정당의 온건적 이미지를 이끄는 반사효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교회의 쓸모였다. 

 그런 교회가 쇠락하고 있다. 가나안 성도의 출현, 청년층의 이탈, 비종교화 흐름과 코로나 19로 인한 오프라인 교회의 위기는 교세의 축소로 드러나고 있고 이는 정치권과 교회의 관계 재설정에도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야 교계의 전통적 영향 아래 존재하는 성도들의 활동력이 유효한 상황이지만 이들을 세대교체 해 줄 동력이 없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교회의 쓸모가 유지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3. 본질과 파장

 개신교계의 위기는 비단 교세의 어떠함으로부터만 오는 것은 아니다. 그간 개신교회가 앞장 서 선구적 역할을 해 온 대다수의 분야(교육과 문화사역, 자선과 구제 및 사회복지 사업, 각종 시민운동 등에 이르기까지)가 정부의 사회복지 확장 정책과 분야별 전문화를 통해 분화되어왔고 역설적으로 사역적 관점에서의 운신의 폭도 줄어들었다. 일상적으로 지역주민들과 만나고 소통할 수 있었던 매개들이 줄어들며 지역사회에서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낼 수 있는 공식적인 통로가 좁아져 온 게 사실이다.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지역 카페, 방과후 교실, 마을 도서관 등의 역할을 자처해 온 교회들이 있었지만 다방면의 사회 사업을 감당했던 지난 시절과는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런 때에 교회는 어떤 존재로 서 역할 해야 하는 것일까? 개혁적 역할을 자처 해 온 이들의 노력이 무색하게 세속적 가치와 자본에 취약한 교계의 단면이 여전한 상황에서 이념 논쟁이 재점화되거나 국제 안보 환경이 더욱 악화돼 신냉전 분위기가 초래된다면 과연 우리는 개신교회의 일원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얼마만큼의 파장을 미칠 수 있을까. 

 울림이란 파장이 있어야 가능한 법이며, 파장이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될 때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갈릴리 사람들에게 던져진 예수님의 메시지가 그러했듯, 현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고민과 이들을 압도하는 시대정신, 나아가 집단적 사상이 무엇인지 그 본질을 짚어 하나님나라가 그것과 어떻게 다른지 그 소망에 관해 말할 때 비로소 반향과 파장이 가능하다. 


4. 이념의 가장[假裝]

 그런 점에서 자칫 간과하기 쉬운 ‘가장(假裝)된 이념’에 관해 논해보고자 한다. 통상 현대사에 큰 획을 그었던 사건들을 중심으로 안보 보수에 대한 대중적 인식은 분명한 편이다. 역사적 사건들도 있었고 이를 다룬 영화나 드라마들이 연달아 흥행하면서 국민의 관심도 자연스레 높아져왔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사회·경제적 이념들, 가히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몇몇 이념들에 대해서는 주요한 이슈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일례로 신자유주의 및 능력지상주의, 페미니즘 등의 이슈가 그러하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의뢰하고 ㈜지앤컴리서치가 수행한 ‘2022 주요 현안에 대한 개신교인 및 비개신교인 인식 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인의 돈에 대한 견해는 비개신교인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해야 한다’와 같은 당위와 지향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이다’의 형태로 진행된 현실 인식 조사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지만 그럼에도 ‘오늘의 한국 사회가 새로운 신분제 사회’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3명 중 2명 이상으로 ‘이를 초래하는 대표적 원인이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개신교인 46%, 비개신교인 48%)와 불평등한 정치·사회 구조(개신교인 33%, 비개신교인 31%)’라고 대동소이하게 답변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통계청이 발간한 2022 한국의 사회동향 ‘한국 유권자 차원에서의 정치적 양극화’ 자료를 통해서도 우리 국민들이 지지 정당과 무관하게 정부 주도의 소득 재분배 정책에 대해 어떤 입장을 공유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앞선 자료를 통해 개신교인과 비개신교인간의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인식이 비차별적으로 나타났듯 신자유주의 기조의 상징적 사안이라 할 수 있는 정부 주도의 소득 재분배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 진보정당 지지자든 보수정당 지지자든 무당파든 할 것 없이 대동소이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무당파와 보수정당 지지자의 경우 중립적 입장이 상대적으로 높긴 하지만 그럼에도 2003년 기준 평균 80%에 육박했던 소득 재분배 정책 찬성 기조가 50%대로 급감한 추세에는 지지 정당간 차이가 크게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글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소련이 붕괴된 즈음 태어나고 자란 그야말로 탈이데올로기 키즈들에게 최근 촉발된 이념 논쟁은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물론 조금 더 싫고 조금 더 나쁜 쪽을 선택할 수 있겠지만 그 논쟁에 참전하는 이들 모두에게 느끼는 피로도는 아마도 유사할 것이다. 도리어 이들을 짓누르는 이념은 끊임없는 경쟁과 생존의 문제, 열패감과 고립이다. 그 뿐인가. 지난 대선의 판도를 갈랐다고 평가 받는 20대 남녀의 대세적 투표의 방향, 그리고 그 기저에 존재하는 페미니즘 이슈도 우리 사회의 통합과 평화를 향해 반드시 함께 이야기해나가야 할 이념이다. 전통적 이데올로기 구분에 가려져 이념이 아닌 듯 가려져 있지만 사실상 더 뿌리깊게 우리의 사상을 좌지우지 하는 이러한 사안들에 관해 개신교회가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지, 신학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떻게 말하고 공존해야 하는지에 관해 더 깊은 고민과 씨름이 필요하다. 포기할 수 없는 본질과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바꿔나가야 할 비본질의 영역을 치열히 고민해가는 일 자체가 이념 논쟁 회귀 시대 개신교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5. 타성과 이념을 거슬러영원한 소망을 향하여

 덧붙여 너희 안에 소망에 관해 묻는 자들에게 말할 것을 준비하라는 신약 성경의 가르침이 의미가 있으려면 남들의 눈에 우리 안에 존재하는 소망이 보여야 할 것이므로 말하는 대로 살아내려는 성도와 교회의 몸부림이 필요할 것이다. 세상과 다름에서 오는 거룩함은 외양과 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단체로 발행하는 성명서나 개인의 정치적 입장이 아닌 성도 개개인의 삶의 태도와 교회의 사역을 통해 비로소 드러날 뿐이다. 정치적 쓸모를 다해내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비판하면서 학벌, 부동산, 자본을 대하는 성도 개인과 교회의 태도가 세상과 다르지 않고 남달라 보이지 않는다면 이 또한 또 다른 자기기만 아닐까. 그러므로 ‘이 땅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둔 바로 그 소망’이 성도들의 삶과 개교회의 의사결정을 통해 드러날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영성과 사회적 책임을 두루 갖춘 이들이 있어야 개신교회가 발행하는 사회적 메시지에도 힘이 실리고 결과적으로 반향과 파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치적 입장을 신앙적 진리와 동일시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종교적 정치행위화에 빠질 위험은 비단 보수 진영만의 문제가 아니다. 개혁적 복음주의자와 에큐매니컬 진영에도 변함없이 존재하고 때때로 쉽고 편안한 선택지로 존재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하나님의 진리는 특정한 정치 그룹과 이념에 매이지 않는다. 악마의 타자화는 쉬운 반면 내 안에 존재하는 타성과 이념을 거슬러 반복해 자기를 성찰하는 일은 어렵다. 그 좁인 길을 선택하려는 태도와 자기부인을 통해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도 확장되어 가는 것이 아닐련지. 이념논쟁을 재점화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우리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자기반성이 병행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고]

1) https://news.kbs.co.kr/datafile/2023/09/29/308261695869841851.pdf 

2) 2022.11.15.-11.24(10일간), 전국 만19세이상 개신교/비개신교인 남녀 총 1000명, 온라인조사

목회데이터연구소 발간 <넘버즈 184호> (http://www.mhdata.or.kr/)

3)  통계청 2022 한국의 사회동향 ‘한국 유권자 차원에서의 정치적 양극화’, 하상응(서강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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