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역 계단
과업이 너무 많아 막막하고 두려워질 때마다
이대역 계단을 생각한다.
2호선 이대역에 내려 계단을 올려다보면
언제 저 계단을 다 오르나 까마득해보이기 마련이지만
그럴 때일수록
운동화 끈 질끈 매고
딱 내 발코만 쳐다보며 무념무상 걷기 시작해야 한다.
한큐에 올라갈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도 있지만
나는 무슨 고집에서인지 웬만하면 그 계단을 걸어 올라다녔다. 이상하게도 그 계단이 인생이란 과제처럼 느껴졌다. 필요하고 급할 때야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맡기겠지만 그렇지 않을 땐 가급적 두 발로 걸어 지상에 발을 내딛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이끌리지 않고 묵묵히 내 힘으로 한 발 한 발 내딛어서.
이 많은 공부를 지금의 내가 해낼 수 있는걸까 문득씩 겁이 난다.
학교로 돌아와 법학 공부를 할 때마다
세상에 이런 멍청이가 어디 있을까
나는 사실 메멘토인게 아닌가 싶어 쭈글이가 됐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부던히 휘발 중인 판례 워딩을 되짚어보고 역시나 잊어버린 무언가를 찾아 교과서를 헤짚었다. 그런데도 엉금엉금 힘겹게 기어가는 기분. 남편은 내게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결국 해안가에 도착만 하면 되는거라고 격려하는데 그 위로마저도 순식간에 휘발돼버린다.
어릴 적 성공시대라는 이름의 다큐 비슷한 프로그램을 좋아했는데. 특히나 거기에 나오는 나이든 여성들의 성공서사가 내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아이를 여럿 데리고 유학을 간 이야기, 지하철에서 젖이 줄줄 흘어 곤욕을 치룬 이야기. 그 당시엔 그 뒤에 숨겨진 그들의 고통과 눈물을 미처 알지 못했다. 십여년의 육아 뒤 만학도가 되어 학교에 돌아 온 지금에서야, 새삼 그들의 노력이 얼마나 치열하고 힘든 일이었을지 가늠하게 된다.
새로운 정상(과업의 완수)에 다다를 수 있을지 아득해질때마다 그저 발코만 바라보며 발을 내딛다보면 이제껏 그래왔든 또 새로운 문에 서게 될테지.
지난 날 동경했던 선배들의 삶처럼
이년 뒤 이 날 즈음, 오늘의 나를 뒤돌아보며 대견하고 멋지다고 도닥여줄 수 있길 바란다.
내 몸부림이 훗날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도전할 용기가 되어줄테지 자부하며.
그렇게
<그저, 발코>만 보며 뚜벅뚜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