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로생 환생

자기 몫의 십자가

by 조성실

누구나 저마다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진다.


갓태어난 아기는

배변과 딸꾹질을 동시에 하지 못해 애를 쓰고

자기 몸 하나 뒤집질 못해 용을 쓴다.


두 발 자전거를 타기 위해 수십번을 넘어져봐야하고

운동도 공부도 우정도 사랑도

모든 초행길엔 고행이 따른다.


어른이 되면 무에든 수월히 해내고 주변을 넉넉히 돌아볼 여유가 생길 줄 알았건만, 오산이었다.


나를 돌봐주었던 선배들도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진 채

기꺼이 내 몫의 짐마저 함께 져 준 것 뿐이었다.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서가 아니라

조금 더 많이 지기로 결심한 결과였다.


엄마인 내가 언제까지 아이의 짐을 다 들어줄 수 없는 것처럼

배우자가 내 몫을 다 져 줄 수도 없고

선생이 모든걸 대신 풀어 줄 수도 없다.

그렇게 저마다 자기 몫의 십자가를 진다.


아이도 나도 매일 선 그 자리에서

묵묵히 조금 더 많은 무게를 감당할 역량을 익혀가고 있을 뿐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새로운 과제를 맡게 될 때마다


나는 늘 겁이 다.

수없이 반복해 왔고 결국엔 이겨 본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새롭게 두려워진다.


이제껏 해 온 것들이 한 없이 가볍기만 했던 걸로 미화되면서

운이 좋게도 어쩌면 손쉽게은 것만 같아 마음이 움츠려든다. 새로운 마음으로 또 다시 발을 동동대는

어리석음. 완벽주의자의 숙명이랄까.


어린 아이처럼 마음으로 종종대는 내게 남편이 말했다.


"실아. 삼년 안에 안 되면 사년 안에 끝내면 되고

더 이상 못할 것 같을 땐 언제든 빠꾸하면 돼. 돈은 내가 벌면되고 너는 그저 오늘 네가 하기로 한 일을 즐겁게 후회없이 해.


나는 이제껏 네가 내린 결정에 후회하는 걸 본 적이 없어. 그런 너와 너를 그 곳에 보내신 주님을 믿어. 오빠가 네 짐을 대신 져 줄 수는 없지만 매일 매순간 기도하고 있어. 언제든 힘들면 다 그만두고 돌아와. 너를 반기는 우리가 있으니까."


준후는 내가 로스쿨 입시를 준비하는동안 엄마가 시험에서 떨어지기만을 기도해왔다. 엄마가 제발 시험에서 떨어져 자기 옆에 있어주기를. 지금도 언제든 엄마가 하던 공부를 그만두고 제 옆에 있어주길 바란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지금 이 기차를 타기 직전까지도, 뒹굴 뒹굴 자다가 손을 더듬어 나를 찾고 목에 매달려 엄마 가지마를 읊조렸다.


정후는 그래도 중학생답게 엄마가 이 힘든 과정을 해낼 것이라 믿고 제자리에서 페이스메이커가 되어주려고 애를 쓴다. 엄마는 결국엔 해낼 것이고 우리는 다시 함께 살게 될테니 하며 엄마를 위로한다. 엄마가 자랑스러워요. 그리고 저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라며.


기차역에 나를 내려주며 오빠가 과일이 담긴 그릇을 건넸다. 무얼 먹고 싶을지 몰라서 종류별로 잘라넣었어. 참외 토마토 수박. 힘들면 쉬고 무에든 할 수 있을 만큼만 해. 사랑해 실아.


그리고 아이들 아침을 챙겨주러 서둘러 집으로 떠났다.


그렇게 우리 모두 각자의 십자가를 오롯이 져가고 있다. 때때로 기대고 서로 들어주며 그렇게.

가족뿐이랴. 내 옆에 앉은 이름모를 이의 인생도 함께 수험생활 중인 동기들의 삶도 매한가질거다.


내 것이 더 무거울 것도

남의 것에 비해 구태여 가벼울 것도 없다.


그러니 두려움을 내려놓고

은혜를 구하며 오늘을 살아가자.


오늘 제가 제 십자가를 잘 짊어지고 갈 수 있도록 힘을 주시고

타인의 삶을 모른체 하지 않고 기꺼이 돌아볼 여유와 지혜를 허락해주시오.

제가 돌보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의 모든 순간을 주님께 의탁합니다.


그저 은혜를 구하며,

오늘의 해야 할 것들에 최선을 다하자.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서.


[마10:38-39, 개역한글]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저 발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