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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로생 환생

불화와 변화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

by 조성실

어느 순간이 되면 결국엔 알게 된다. 제 아무리 지구 끝까지 찾아다녀도, 나를 전적으로 만족시킬 누군가를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간은 모두와 불화하는 법이어서, 가까운 친구, 가족, 배우자, 부모는 물론 자식과의 관계에서도 불만족과 갈등을 경험한다. 나아가 자기 자신과도 때때로 불화하는 걸 생각하면 새로울 것도 없는 이치다.


어떤 조직도, 그 어느 누구도, 어떤 리더십도 나를 오롯이 만족시켜 줄 수 없다면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수 밖에.


오지라퍼 라는 말이 다소 부정적 신조어로 유통되고 선을 넘는 무례한 질문들에 대한 사회적 반성이 시작되면서부터 인걸까.

문득씩 타인에게 갖는 호의, 관심, 배려심마저도 도매급으로 평가절하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의식 과잉, 오지라퍼 라는 말들로 타인과 연결된 감정과 그에 대한 성찰 자체가 조롱 받는 경우도 있어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타인을 향한 감각‘이 살아있다면, 그것 또한 재능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필요가 있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타인과 나를 파괴하기도, 구원하기도 하는 초능력 같은 것.

꾸준히 연마하면 결국엔 내가 속한 조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역량이 된다는 사실을. 식상하게 들리겠지만 이 재능의 고전적 명칭은 리더십이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시대 정신에 부합하는 리더십의 모양이 달라지겠지만, 그 본질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산업의 대다수를 잠식해가면 갈수록,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 타인에 대한 수용력, 각기 다른 사람들을 연결한 조직력‘이 중요해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내가 속한 조직이 못마땅하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남기로 결정했다면, 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 현재 내가 바꿀 수 있는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바꿀 수 있는게 있다고 판단했다면, 또 다시 결정의 기로에 선 셈이다.

계속해 불화할 것인지, 변화의 주체가 될 것인지.


그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대가는, 자기 효능감.

그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속한 곳을 내가 없던 순간보다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봤다는 경험이 누적돼 그 사람의 자존감이 된다.


이른바 결정적 시기로 불리우는 영유아 시절과 사춘기를 지나며 정체성과 자기인식이 형성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람은 참 안 변해 싶으면서도

모순적이게도 사람은 놀랍도록 성장할 수 있는 존재여서

결국 이런 누적적 경험을 통해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으로 변화된다.


나로부터 시작된 변화를 위한 노력이 결국엔 내 인생을 변화시킨다. 이것은 마치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 같은 것.


아둥바둥 종종대며 난리를 치는 나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실아. 남들이 뭐라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너답게 네가 만들고 싶은 변화를 향해 가. 그 과정에서 너도 너와 함께하는 사람들도 변할거야.

그 임상결과가 바로 나야. 나는 너의 판단력을 믿어.“


언제든 어디에서든

불화 속에서 결국엔 변화의 태동을 찾아내는 나를 응원하며.

수고해줘,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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