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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그리엄마 Feb 20. 2020

엄마 과학자 생존기 - 20

가사노동이 불편하지 않았던 이유

20. 가사노동이 불편하지 않았던 이유



인생 첫 백수 타임도 그렇고, 이번 백수 타임도 그렇지만

딱히 나는 전업주부 생활에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저 하루종일 엄마를 외쳐대는 아이를 돌보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 뿐,

그 외에 요리를 하거나 빨래를 하거나 혹은 청소를 하는 일은 아주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던 듯 하다.

게다가 우리집 아저씨 (aka. 내 남편) 역시 가사노동을 해야 하는 타이밍에서는

나름 최선을 다해 진지한 자세로 임하는 사람이었기에,

둘다 크게 부담은 없었던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서로 아이를 맡아 놀지 않기 위해 굉장히 노력하는 타입이었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시달릴 바에야 차라리 가사노동에 전념하겠다며

도망다니는 타입인데.....

왜 우린 그렇게 가사노동이 편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사실 실험을 하는 입장인 우리 부부는.....

실험실에 나가 일하는것과 집에서 가사노동에 전념하는 것이 딱히 다르지 않았다.

즉, 화학자가 실험실에서 하는 일과 집에서 진행되는 가사노동은....

위치만 다르지 내용이 똑같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일반적인 화학자의 연구가 어떤 것이라고 생각되는가?

미드에 나오는 것처럼 깨끗한 하얀색 가운을 휘날리고 실험하고 있을 것 같은가?

ㅋㅋㅋㅋ그건 있을 수 없는 환경이다....


대충의 연구란 이러하다.


출근 -> 실험복 or 실험용 앞치마 두르기 -> main 실험 -> 실험 테이블 정리  -> 실험 후 정제 -> 실험 테이블 정리 -> 연구노트 정리 -> 사용한 실험도구 세척 -> 퇴근


뭔가 용어를 써서 그럴듯 해보이지만...

위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이러하다.


출근 -> 실험 -> 청소 -> 실험 -> 청소 -> 설거지 -> 퇴근



그렇다. 우리 직종의 연구자들은 매일매일 청소와 설거지를 하고 집에 온다.

(하지만 집에선 실험하고 왔다고 지칭한다)


유기화학 실험 중인 모습


대충 유기화학 연구는 요리와 상당히 흡사하다.

나의 실험 목표와 유사한 관련 논문을 먼저 읽고

논문을 기반으로 실험을 하기 위해 연구노트를 적는다.

이 연구노트에는 실험을 진행할 때 넣을 시약들의 무게를 미리 계산해서 적고,

대략적인 실험 방법도 적어둔다.


이 과정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요리하기 전 레시피를 확인하고

사용할 요리 재료를 준비하고, 레시피 내용을 복기하는 것과 유사하다.

요리하기 전 양을 생각하고 냄비를 고르듯이,

화학자들도 실험할 양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초자를 준비한다.


냄비에 재료를 넣고 섞고 끓이듯이,

화학자 역시 준비한 초자에 실험 재료들을 넣고 섞고 끓이거나 혹은 그냥 섞거나 그런다.


그리고 결과가 나올때까지 기다린다.

물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자신이 사용한 물건을 정리하고,

사용한 재료를 제자리에 가져다 두고 청소한다.

요리랑 딱히 다르지 않다. ㅋㅋㅋㅋ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나면 요리할때 간을 보는 것 처럼,

우리는 TLC(얇은 막 크로마토그래피) 분석법을 통해

처음 넣은 물질이 없어지고 새로운 물질이 생기는 지를 시간별로 관찰한다.

그리고 관찰을 하며 부족한 시약을 더 넣기도 하고 (소금 더 치듯이)

혹은 온도를 올려 데우기도 한다 (치즈 녹이듯ㅋㅋㅋㅋㅋ)


TLC 분석법

이렇게 간단한 분석법을 통해 원하던 물질이 생겼을것이라는 판단이 들면

반응을 끊고, 다음 단계로 불순물 제거를 위한 실험을 진행하게 된다.


요리로 치면 가스레인지를 끄는 셈이다.

요리로 치면 여기서 먹기 좋도록 셋팅하면 끝이 날테지만 실험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물질이 TLC 에서 나타난 점 중 어떤 점인지를 특정하기 위해 추가 실험을 진행해야 한다.


추가로 진행되는 정제 실험들...


자신이 원하는 물질만을 얻기 위한 작업은 2번에 걸쳐 진행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하나하나 할때마다 또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물질도 잘 얻고, 실험도 성공을 했다고 치자.

그럼 다음 단계는 무엇이 남을 것 같은가?

모든 연구의 마무리는 생물이건 화학이건 같다.


실험 후 우리에게 펼쳐지는 설거지옥....


그렇다 우리에게 남은 중요한 실험 일과는 바로 설거지다......

퇴근 전 설거지를 통해 유리초자가 아주 빤딱빤딱 하도록 닦아서 오븐에서 말려야 한다.

사실 실험보다 제일 귀찮은 일이 바로 이 설거지다. 일반적인 설거지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실험실에서의 설거지는 집에서 하는 것과 달리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


세제(일명 퐁퐁)와 수세미를 이용하여 구석구석 닦는다.
여기서 얼룩이 제거가 안되는 초자(유리실험기구)들은 따로 빼서 분류한다
(얘들은 강염기나 강산으로  따로 목욕을 시켜 씼는다)
1차 비누칠 후 물로 세척한 실험도구는 아세톤 (100%)로 행궈서 물기를 제거한다.
물기가 잘 제거된 초자를 오븐에서 말린다.


이렇게 오븐에 잘 짱박고 고무장갑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실험실 휴지통을 비워야

비로써 우리의 연구일과를 마칠 수 있다.


보다시피 실험실의 일상적 노동이란게 딱히 가사노동과 딱히 다르지 않다.

그냥 좀 다른거라고는....일반적인 그릇보다 더 각이 많아서 닦기 힘든 초자들이 있고....(삼각플라스크 같은거)

설거지를 하는 우리의 옷차림이 그저 고글 끼고, 마스크 쓰고, 실험복을 입고 있다는 정도?? ㅋㅋㅋㅋ


실험실 청소는 가사노동처럼 많은 인간의 힘이 필요하다.

쓸고, 닦고, 정리하고, 설거지도 하고, 초자도 말리고, 마른 초자는 또 빼서 정리하고...

가사노동을 편하게 하기 위해 로봇청소기, 핸디청소기, 식기 세척기, 전자레인지가 존재하는 것처럼

실험실 노동을 편하기 하기 위해 우리도 청소기 쓰고, 초자 세척기 쓰고, 마이크로웨이브라는 기계를 쓴다.

 

실험도 자본이 있어야 한다는 현실을 깨닫게 해준 초자 자동 세척기


연구실에서 늘상 하던 일이기에, 나에게 가사노동은 그저 실험실 생활의 연장선일뿐...

더 힘들지도 더 쉽지도 않은...숨쉬는 것과 같은 일상이었다.


연구실 노동이 가사노동과 가장 유사한 부분은 이러하다.

본인이 열심히 노동을 한 후 본인만 뿌듯하다는거...

아무도 내 노동을 알아봐주지 않는다는 거...

그런데 게으름을 피우면 주변이 금방 개판 5분전으로 변하고,

주변에서 더럽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

But!!! 그래서 치운다해도 티가 안난다.....ㅠㅠ


특히나 자본이 많을 수록 많은 기계를 들여 몇가지 노동을 더 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은

더더군다나 다르지 않다.

연구도 가사노동처럼 장비빨, 돈빨로 영위가 가능하다.

돈이 없는 연구실의 경우, 장비빨로 노동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필요해진다.


뭐 말은 이렇게 했으나, 어느 실험실이건 처음 연구를 하고자 하는 경우,

우리가 처음 배우는 일은 청소하고 설거지를 하는 일이다.


깨끗한 환경에서 실험을 해야 실험 시 발생할 수 있는 외부 요인을 최소화 할 수 있고,

데이터를 깨끗하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실험실 막내들은 설거지와 청소에 시달리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처음 오는 학생들에게 주는 업무지만,

막상 배우는 친구들은 자신이 허드렛일을 한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실험에서 청소와 정리, 설거지는 절대로 허드렛일이 아니다.

실험의 시작이고, 기본개념이며, 마무리이다.

깨끗한 실험실, 깨끗한 테이블, 깨끗한 초자를 사용해야 실험 시 발생하는 오차가 줄어들 수 있고,

데이터가 오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인 셈이다.


가사노동도 이와 같다.

집에서 일상 생활을 편안하게 영위하기 위해서 가사노동은 필수적이다.

우리는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청소를 하고, 집안 정리를 하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한다.


혼자 살게 된다면 이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하게 되겠지만,

대게 가사노동은 "엄마"의 희생으로 혹은 자본을 통해 구한 기계를 통해 노동을 대체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개인이 쉴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연구의 오차를 줄여주고, 좋은 데이터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실험실 노동과

매일매일 우리가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집안을 정리하는 가사노동이 과연 다르다 볼 수 있는가?


실험실에서 하는 노동과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집에서 하는 노동이란 이유로 가사노동이 천대 받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직업이 직업인지라, 간혹 과학자의 길을 어떻게 가는지를 묻는 경우가 많다.

많은 상담을 받긴 하는데....

다른 과학자들이 어떻게 사는지는 알지 못하고,

필자가 아는 과학자의 삶이 그저 유기합성학자라는 점에 비추어 볼때...


과학자의 삶을 즐기기에 적합한 사람은 가사노동을 군말없이 하는 사람이다.

무언가 오래도록 앉아서 집중하는 것을 잘하고,

덕질을 해본 적이 있다면 특히나 연구직은 타고 났다고 볼 수 있다.

자고로 연구라는건 당장 어떠한 결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엉덩이 오래 붙이고 있는 이가 마지막에 웃을 수 있다.

또한, 가사노동을 잘 하는 이들을 필자가 높게 치는 이유는,

평소에 청소 잘하고, 정리 잘하고, 설거지 잘하는 친구들이

실험을 수행할때 오차가 적고, 오차가 적은 이들이 좋은 데이터 (일관성을 보이는) 를 얻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녀가 과학자의 길을 가길 바라는 이가 있는가?

꼭 설거지를 시키길 바란다.

평소에 청소도 자주 시키고, 본인 책상만큼은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하길 바란다.

앞에서 서술한바와 같이, 실험실 노동의 기본은

청소, 정리, 설거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회사에 들어가건, 어차피 본인자리는 잘 정리하고 살아야 하기에,

이러한 노동은 삶의 기본이라 볼 수 있을 듯 하다.


설거지 중인 7세 땡그리...


뭐 필자 역시 이러한 이유로,

7살 땡그리에게 삶의 기본을 알려주고 있다.

물론 더럽게 어지럽혀서 에미 에비를 대환장파티에 몰아넣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걸 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 시키고 있다.

어딜가건 가장 기본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조기교육이면....뭐 에미로써 할만큼은 한 것이 아니겠는가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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