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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그리엄마 Dec 26. 2020

엄마과학자 생존기 - 30화

30화 재택근무 중인 양육자의 이야기

COVID-19는 그저 소소하게 부캐를 늘려가던 나에게 일종의 N잡러로 활동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었다. 나는 코로나가 바꾼 세상을 헤쳐 나가기 위해 일단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특히나 이제 막 6개월 되어가는 창업 영유아기에 있는 나는 배워야 할 것도 직접 부딪혀야 하는 일이 많아서 살면서 처음으로 시간의 부족함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이 순간!!

창업 영유아기에서 이제 벽을 잡고 벌떡 일어서야 하는 이 시기에! 우리는 집에 갇히고 말았다....


COVID-19 상황이 대전도 심각해지면서 동료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이 기약 없는 휴원을 맞이했다.  인근 지역인 대전이 심각해지며, 세종 역시 언제 돌변할지 몰라 우리는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결국  고민 끝에 우리는 재택을 선택했다. 최소 3주 정도 더 재택으로 버티고, 1월에 다시 고민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COVID-19가 가지고 온 가장 큰 변화는, 계획을 장기적으로 세울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언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당장 한 달의 계획을 결정하는 것이었기에, 내릴 수 있는 최선이었다.


최선의 결정을 내린 뒤, 우리는 사무실에서 일하는데 필요한 서류뭉치를 챙겨 온 뒤, 그렇게 재택을 시작하였다. 그렇게 시작한 재택근무가 벌써 3주 차가 되어 간다. 그리고 3주 차가 된 지금, 역시나 새삼 깨닫는 사실은, 엄마에게 재택근무는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란 현실이다. 그렇다면, 왜 나에게 재택이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되었는지에 대하여 기록을 정리하려고 한다. 양육자의 재택근무가 왜 어려운지, 그리고 재택근무 시에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모두가 한 번쯤 생각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정말 힘들기 때문이다.

재택근무의 장단점을 생각해보자.


먼저 장점, 이동시간이 줄어든다.

그간, 나는 집에서 40정도 되는 거리의 사무실로 매일 출근을 하던 중이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등원 시간은 8 40분부터 9, 실제로 현재는 정상 수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어, 아이는 9 30분까지 등원을 하고 있었다. 재택근무를 함으로써,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아이를 재촉하여 등원시키는 수고를 덜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늦잠을 자게 하거나 혹은 아이를 등원시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이를 키우며, 내가 정한 양육 철학  하나는, 기관에 다닐 때에는 기관에 가는 시간을 정확하게 맞춰야 한다가 있다. 어린이집이건 유치원이건 학교건, 어디인가에 소속이 된다는 것은 많은 약속을 동반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중 가장 중요한 규칙은 역시 시간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약속한 시간에 만나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아이가 하는  사회생활의 규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택근무를 하고는 있으나, 아이가 유치원에 가야  때에는 아이를 정해진 시간, 8 40분에서 9 사이에는 반드시 등원을 시켰다. 대신, 재택을 하는 덕에, 아이를  빨리 깨우지 않아도, 적당히 일어나도 아이의 간단한 아침을 먹여서 등원이 가능해졌고, 나는 바로 아이를 데려다준  집에 도착해서 바로 컴퓨터를 켜서 출근을 했으니,  나쁘진 않았다. 출퇴근 차로 움직이지 않으니 기름값이 줄었고, 스트레스가 줄었다. 나름의 장점이긴 했다.

 

장점은 딱 여기까지였던 듯하다. 그 외에는 여러 가지로 일에 집중하기 어렵게 만드는 일들이 많아져 그냥 그랬다. 그럼 이동시간이 줄어드는 것 이외에 재택을 하며 거슬리는 지점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집이 늘 엉망이라는 것이 문제가 된다.

아침에 등원하는 아이는 분주하다. 일어나기 귀찮다는 아이를 억지로 깨워 씻기는 일도 내 몫, 이런 아이를 앉혀서 아침을 먹이는 것도 내 몫이다. 아이는 아직 모든 일이 서투르다. 혼자 할 수 있도록 아이에게 알려주기 위해, 되도록 손을 대지 않고 아이 마음대로 하도록 하지만, 여전히 뒷정리는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아이를 데려다주고 집에 오면 말 그대로 개판인 집구석이 내 눈앞에 펼쳐지게 된다. 뱀허물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아이의 옷가지, 아이가 가지고 놀다가 나간 아이의 장난감, 먹다 남은 음식과, 널브러진 밥풀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오자마자 난 청소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도 티테이블은 그 용도를 상실했다.


이렇게 청소를 하고 나면 한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집을 대청소하지 못하고 대충 치우는 데에만 에도 이만큼의 시간이 걸린다. 컴퓨터는 켰으나, 아직 나는 일을 진행하지 못했다. 잠시 이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커피를 들어도, 눈앞에 보이는 것은 싱크대에 잔뜩 쌓여 있는 설거지 더미이다. 결국 나는 이메일 한번 확인한 뒤, 다시 설거지를 하게 된다. 그러고 나면 대략 시간은 10시 반... 그래서야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처음 재택을 시작하던 시점 나는 식탁에서 재택업무를 진행했다. 새로 이사 온 집의 햇빛이 좋았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커피를 내리고, 그 커피를 들고 일을 해보는 게 나의 로망이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내가 이 지점에서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그냥 얌전히 앉아서 일을 하기엔, 아이가 예술혼을 불태운 개판인 거실이 너무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간신히 한 시간 정도 일을 하고 나면 점심때가 다가온다. 점심 부분 역시 재택에서는 문제가 된다. 회사에 출근을 할 때에는 점심 메뉴만 고르면 되었다. 메뉴를 고르고 시키거나 혹은 도시락을 배달시키거나 또는 마음에 드는 음식점에서 식사만 하면 그만이었다. 재택근무에서 점심은 이야기가 다르다. 해 먹어야 한다..... 메뉴를 고민해야 하고, 무언가를 해 먹어야 하는데, 결국 만들고 치우는 일이 또 다른 옵션으로 만들어진다. 또 설거지가 기다리는 셈이다. 결국, 점심에만 한두 시간이 쉽게 소요되게 된다. 또 나는 그만큼 일을 하는 시간을 뺏긴다.

그리고 또 일을 한다. 간신히 재택업무를 진행하여 한두 시간을 집중하고 나면, 안타깝게도 금방 아이가 하원 할 시간이 다가온다. 그렇게 하원을 하고 나면, 아이를 케어하며 시작되는 돌봄 재택 지옥에 들어가게 된다. 즉, 나는 사무실에서 할 때보다 훨씬 비효율적인 업무를 한채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이렇게 일주일을 보낸 뒤, 집이 개판이 되는 것을 참아보기로 했다. 보이면 몸이 움직여 집을 치우게 되는 현실이 싫어서 서재에 틀어박히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서재에 틀어박혀 일을 하니, 일은 제때 끝낼 수 있었다. 다만, 손댈 수 없게 개판이 되어가는 집이 있었고, 배우자의 한숨이 늘었고, 식기세척기 구매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으며, 음식을 하기 싫어 시켜먹는 횟수가 늘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배가 나왔다. 이 덕에 우리는 또 워킹머신 구매를 고민하게 되었다. 돌고 도는 재택근무의 지옥이었다. 가사노동을 무시하면 근무는 가능하나, 그만큼 집에 박혀 있게 되고, 운동량은 떨어지고, 건강도 망치기 직전으로 가게 되게 된다. 그렇다고 가사노동을 하게 되면, 얼결에 움직이니까 활동량은 보장이 가능하나, 하고자 하는 만큼의 업무량을 유지할 수 없으며, 집중력은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 업무를 하는 내내 오늘 해야 하는 빨래와 저녁거리를 고민하게 되기 때문이다.

복병도 존재한다. 엄마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만 6세 아동은 땡땡이도 치곤 한다. 어차피 엄마가 집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아이와 함께 하는 날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된다. 아이에게 게임기와 유튜브를 쥐어주고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일을 줄이고 앞에 아이를 앉힌 뒤, 하루 일과를 내가 짜서 가르칠 것인가... 물론 전자를 대부분 선택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도저히 업무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집이라서 이래저래 집중도 안 되는 판국에, 아이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게 되면 그날 업무는 쫑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되면 양육자로써 엄청난 회의감과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결국 한 시간도 안되어 나는 아이를 앞에 앉히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일을 포기한다. 아이와 함께 하고 있으면 업무뿐만 아니라 가사노동도 밀린다. 아이의 놀이를 방해하지 않으며 빨래를 하고, 빨래를 정리하고, 집을 치우는 고난도의 업무가 존재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업무를 깔끔하게 포기하게 되는 셈이다.


아이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아이 뒤를 쫓아다니며 치우는 것도 힘들고, 활동량이 없어서 배가 고프지 않은 아이를 달래 가며 밥을 먹이는 것도 너무 힘들다. 이 힘든 일과는 0세부터 만 6세까지 왜 끝나지 않나 모르겠다. 어떤 면에서 심플하게 그냥 아이가 먹는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으나, 그러기엔 아이의 건강이 걱정이 되고, 억지로 먹이자니 아이와 감정이 상해서 힘들다. 결론적으론 역시 이런 의미에선 재택보단 회사에서 어른들과 함께 일하는 게 훨씬 낫다 싶긴 하다.

처음 COVID-19가 시작될 무렵 스페인 독감과 비슷하게 2년을 간다고 보긴 했고, 그 정도를 각오하긴 하였으나, 역시 집에 있는 것은 힘들다. 무슨 상황마다 애국심 운운하며 K타령하는 것도 이제는 꼴 보기 싫다. 왜 이 나라는 무슨 일만 터지만 국민들이 알아서 해결을 해야 한단 말인가? 대체 일하라고 뽑은 그분들께서는 일할 의지라도 있나 모르겠다.

아무튼 힘들다. 더럽게 힘든 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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