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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그리엄마 Jan 23. 2022

엄마과학자 생존기 - 35화

픽업스케쥴은 실험스케쥴만큼 어렵다.

35화. 픽업스케쥴은 실험스케쥴만큼 어렵다.



 이전 편에서 말한 것처럼 아이는 방과후 1과목 - 돌봄교실 -태권도 - 피아노 route를 돌아 집에 18시 20분 경 도착할 수 있게 세팅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나마 아이의 의사를 반영하여 학습이 아닌 것들을 위주로 편성한 상태이다.


간혹 인류애가 풍부하여 타인의 삶에 관심을 두는 사람들을 만난다.  맞벌이 부부가 학원 뺑뺑이로 아이를 케어하는 것을 보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곤 한다. 아이는 많이 놀아야 한다며 말이다. 아이가 엄마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도 한마디씩 하신다. 저 어린애를 어찌 혼자 두냐고 말이다. 이 정도의 훈수는 뭐 그러려니 한다. 가끔 선을 넘어 엄마가 옆에 없으면 애가 교우관계나 학교 관계에서 문제가 되네 어쩌네 사춘기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확실히 인류애가 넘치면 선 넘는 분들이 간혹 계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넘어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인류애가 넘치는 분들은 대개 어정쩡하게 아는 사이거나 아니면 가족인 경우가 있어서이다. 


암튼, 아이 케어를 위해 디자인하는 이 픽업 스케쥴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름 치밀한 계산이 존재한다. 마치 실험노트를 쓰고 합성 실험을 진행하기 전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것 처럼 말이다. 유기합성 실험을 할때, 조건을 선택하는 것처럼, 픽업스케쥴도 나름의 조건이 필요한 셈이다.

어떤 유기합성 실험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고려할 점들이 존재한다. 


1. 출발물질을 선택하고, 최종 만들고 싶은 물질을 예상해야 함. A에서 C를 만들지 A에서 B를 만들지를 결정하지 않으면 세부적인 조건을 잡을 수가 없음.  

2. 실험 진행 전, 장비는 무엇이 필요한지 확인해야 하고, 설사 없다면, 당장 어디선가 수급이 가능한 것들인지가 확인되어야 함. 그런 점이 확인되지 못한다면 실험은 진행조차 할 수 없음.

3. 장비를 확보할 수 없다면, 플랜 B가 있어야 한다. 당장 유사한 실험에는 무엇이 있는지, 특정 장비 없이 실험은 어떻게 실행을 해야 하는지 등도 확인해야 함.


이런 섬세한 과정을 거쳐 실험 한 스텝이 성사된다. 픽업 스케쥴도 이와 유사하다. 다시 말해 섬세한 조절이 필요하다. 그도 그럴 것이, 실험에서는 말못하는 화합물을 상대로 하지만, 픽업 스케쥴 조절은 사랑하는 아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아이의 의사를 무시하고 스케쥴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땡그리의 픽업 스케쥴에서는 다음 세부 조항들이 검토 되어야 했다.


1. 땡그리가 좋아하는 방과 후 수업으로 일주일 스케쥴 정리. 방과 후 수업은 과목당 일주일에 한번 혹은 두번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방과후는 아이가 원하는 과목으로만 신청.
 tip: 신청한다고 방과후가 다 되지 않는다. 방과 후 수업은 엄연히 추첨제이기 때문이다.

2. 하교 시간은 다른 친구들의 학원 시간과 비슷하게 4시 픽업이 가능한 스케쥴로 조정. 학원차량으로 하교 후 학원에서 수업을 듣고 다시 집으로 하교하는 시스템으로 설계

3. 학원 역시 아이가 원하는 수업으로 설정. 이때는 주당 수업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매일 갈 수 있는 학원으로 선택해야 함. 
   tip: 아이가 힘들다고 항의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아이가 하고 싶어하는 과목으로만 편성할 것. 매일 가도 지겹지 않은 태권도, 피아노, 미술 등의 예체능으로 설정하는 것이 유리. 

4. 학원차량은 필수, 서로 다른 학원을 보낸다면 같은 건물에 있는 학원으로 설계할 것. 동선 고려할 때, 한 건물내에서 학원 차량 없이 움직이는 것이 제일 안전함.
   tip : 동일 건물 내에 학원차량 지원 되는 학원 하나와 그렇지 않은 학원을 선택하여 mix 스케쥴을 만들면 아이 등하교가 훨씬 안전해짐. 단점은 아이가 싫어할 확률이 높음. 


우리는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현재의 동선을 만들었다. 방과 후 수업은 아이가 원하는대로 신청을 했고, 보통 일주일 내내 수업 듣는 것을 고려하여 5개 신청하면 한 3개는 선정될 수 있다. 물론 그것도 상대적으로 덜 몰리는 수업에 갈 때인데, 다행히 우리 아들은 인기가 적은 과목을 좋아해줘서 3개나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렇게 다니던 중, 하나는 힘들다고 그만두어서 지금은 2과목만 듣고 있으나, 전반적인 수업 모두 아이가 만족하기 때문에 학교 가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학원은 K 돌봄의 중심이라는 태권도를 기본 다닌다. 마침 아이가 태권도를 좋아하고, 덤으로 피아노도 좋아하는 상황인데, 천운으로 아이가 다니는 태권도 학원은 태권도-피아노-미술을 다 가르치는 곳이라서 편하게 보내고 있다. 매일 가도 지겹지 않은 학원 스케쥴링을 만든 셈이다.


이런 스케쥴이 끝나면 엄마 아빠 퇴근 후 도착 시간에 맞춰 아이가 집으로 하교하게 된다. 물론 학원차량으로 말이다. 숨은 노력에는 엄마 아빠의 근무시간 조정 등이 포함되지만, 6시에 하교하는 저학년 어린이에게 엄마 아빠는 늘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이고, 자기는 너무 늦게 끝나서 힘들 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유연근무가 확대되고 있지만, 일반적인 근로자는 8시간 근무를 해야 하고, 아이는 학교에서 반나절의 시간을 보낸다. 방과 후 수업을 다 하더라도 아이의 하교 시간은 3시이고, 통상 8시간 근무를 하는 부모라면 절대로 데리러 갈 수 없는 시간에 하교를 해야 한다. 여전히 아이들은 비어 있는 시간동안 부모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과거 이런 경우, 부모 중 한명이 일을 그만두는 것으로 아이의 공백을 메워 왔다. 하교 후 아이가 집에서 쉴 수 있는 장치를 부모 한명이 본연의 직업에서 부모라는 직업으로 완벽히 이직을 하면서 메워왔다. 개인의 노오력으로 버텨온 것이다. 사실 부모라는 직업으로 이직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적인 이직의 형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생각해보자. 어느 누가 근무시간 연장되고 보수는 없는데 세상 이보다 보람찬 일이 없다면서 일하라고 한다면 당신은 그 직업으로 전직을 하겠는가?


최근 대선정국에 돌봄에 대한 여러가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가장 이상적인 국가의 돌봄이란, 개인이 자신의 의지에 어긋나게 돌봄을 위한 가족 구성원으로의 전직을 막는 데 초점이 가야 하지 않을까 한다. 개인이 가족을 돌보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한 일을 해야 하는 거라면, 보호자의 부재로 발생되는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을 만들어 주는 것이 국가의 돌봄이 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간혹 든다. 그것도 안된다면, 최소한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있는, 그래서 아이의 부모로 하루에 몇시간이라도 온전히 있어도 생계가 위협받지 않도록 지지해주는 것이 국가 돌봄이 가야 하는 방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3세 이전에 부모가 안돌보면 애가 언어 발달에 장애가 생기네 어쩌네 그런 말로 부모 가슴 벌렁거리게 하는 이야기 말고 말이다. 불안감으로 부모가 아이를 돌보게 만드는 사회의 이야기보다, 당신이 부모로써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돕겠습니다 라는 워딩이 간절한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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