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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bin Kim Mar 22. 2020

그럼에도 살아나가게 하는 사람

노아 바움백 <결혼 이야기>


  신발끈이 풀리면 누군가 나를 그리워하거나, 혹은 내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이라는 말.

어느 마음 절절한 소설의 혼잣말 같지만 노아 바움백의 이 지독히 투명한 드라마를 마주하고 나면 조금은 더 현실적으로 다가올 단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아 바움백은 끊임없이 지극히 인간적인 돌아보기를 마주하게 했던 감독입니다. 캐릭터에 대한 호감도를 떠나 <프란시스 하>를 인생영화로 꼽는 청춘들이 늘어갔던 것도 결국, 마주해야 할 삶을 외면하지 않도록 귀엽게 떠미는 이 감독의 재주 덕분인지도 모르겠어요. <결혼 이야기> 또한 결혼이라 쓰고 이혼을 말하는 이야기 같지만 결국은 사랑을, 사람을 돌아보는 시선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애정인지 증오인지 모를 널뛰는 감정들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그 누구의 편도 아니거나, 그 모두의 편에 설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영화는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니콜(스칼렛 요한슨)의 이혼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이조차 이혼의 절차 속에서 알게 되는 사실이지만 둘은 분명 첫눈에 반했고 연출가인 찰리를 따라 뉴욕에 정착해 헨리라는 사랑스런 아들까지 두고 있지요. 그러나 변호사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았던 합의 이혼의 그림에선 점점 물러나게 되고, 니콜이 LA로 돌아가면서 지난한 양육권 싸움까지 더해집니다. 서로의 장점을 써내려 가며 시작한, 다소 흐뭇하기까지 했던 이혼의 과정에는 은밀히 앞서 나가고자 하는 경쟁심, 서로에 대한 언성 높은 저주까지 보태어지고요. 영화는 결코 짧지 않은 러닝타임 동안 이 모든 과정을 서둘러 갈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하게 합니다. 단순하다고 생각했던 이 서사 속에 숨겨놓은 노련한 연출의 덕이기도 하겠지요.


데뷔 이래 누구보다 다채로운 필모그래피를 채워가고 있는 아담 드라이버는 스칼렛 요한슨과 함께 또 한 번 독보적인 연기를 선보입니다. 특히, 극중 그가 직접 부르는 [Being alive]는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그대로 담고있는 듯한 가사를 지니는데요. “나를 너무 잘 아는 사람, 나를 너무 필요로 하는 사람, 지옥을 경험하게 하는 사람, 그럼에도 살아나가게 하는 사람”, 아담 드라이버의 노래 실력만을 논하기엔 영화의 중심을 싣고 있는 장면입니다. 실제 이 곡은 <스위니 토드>로 유명한 스티븐 손드하임의 뮤지컬 <컴퍼니>의 넘버 중 하나인데요. <컴퍼니>의 로버트와 <결혼 이야기>의 찰리는 다소 다른 상황에 선 주인공들이지만, 삶이란 말 그대로 “이 죽일 놈의 사랑” 과 함께하는 운명이라는 깨달음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같은 결을 지니게 되지요.


풀려버린 신발끈을 두고 그리움을 떠올릴 수 있는 건 결국 사람의 일이 아닐까요?

<결혼 이야기>는 가끔은 이 작고 귀여운 상상에 기대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람에 대한 영화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뒤늦게 발견하는 속마음 같은 것들이 조금은 적었으면 하고 조용히 바라게 만드는, 인간의 감정으로 살아가는 모든 일이 곧 사랑에 관한 일이라고 돌아보게 만드는 헌사라고 말하고 싶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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