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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명 Dec 17. 2019

40대 아저씨의 연애소설 독후감

'동창회의 목적'과 '히로시마 내 사랑'의 차이

동네 도서관에서 동창을 만났다. 갑작스러운 만남에 눈이 커지고 반가움에 손 흔들며, 변한 게 없다며 아래위를 훑어보다 내가 들고 있는 두 권의 책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아니 에르노(단순한 열정), 마르그리트 뒤라스(히로시마 내 사랑)' 친구가 피식 웃는다. 나도 같이 웃었다. 책과 함께 부끄러움은 등 뒤에 숨기고, 장황하지만 논리적인 변명을 앞세웠다. 

"집 근처의 동네 서점에 독서모임을 참석하게 되었는데, 신청할 때 일정만 보고 참석했지 뭐야. 그런데 나중에 보니 연애소설을 읽는 모임이더라고. 익숙하진 않지만 재미있어."

당당하고 차분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자꾸만 꼬여지는 손동작에 나의 쑥스러움을 숨길 수는 없었다.


공학을 전공하고 하루 종일 엑셀로만 일하는 40대 아저씨가 프랑스 작가의 연애소설을 가슴 졸이며 읽고 모습을 떠올린다면 친구의 웃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안의 쑥스러움과 부끄러움의 정체는 낯설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며칠 전에도 '단순한 열정'을 읽다가 아내의 인기척에 숨겨놓은 비상금을 들키기라도 한 마냥 책을 덮은 적이 있다. 분명 내 속에 정리되지 않은 뭔가가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며칠 전 일을 다시 생각해 본다. 아니 에르노의 뜨거운 열정과 깊은 불안, 그리고 사랑 이후의 상실감에 풍성히 공감하며, 마음속 다락에 숨겨놓았던 예전 기억들을 재생시켜 보기도 하고, 내가 이런 상황이면 어떻게 할까 위험한 상상도 해보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 게 재미있기도 하지만 잠자고 있는 내 안에 불필요한 욕망을 깨우는 건 아닌지 두려워졌다. '난 가정이 있는데...' 그렇게 생겨난 두려움과 함께 이해되지 않는 의문이 떠올랐다. 타인의 불륜에는 무척이나 비난하던 많은 사람들이 왜 불륜이 포함된 연애소설은 아무렇지 않게 읽을 수 있을까? 


궁금함을 가지고 며칠을 보내던 중, 아이들 없이 아내와 오붓하게 데이트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영화를 본 후 서로의 근황과 생각을 이야기하다, 아내는 불륜과 연애소설에 대해 남자와는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아 물었다.

"여보, 연애소설에 불륜이 엄청 많아. 그런데 사람들은 왜 비난하지 않을까?"

"(이 사람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고 있냐는 표정으로 짧게 돼 묻는다.) 왜, 사람들이 언제 비난해?"  

"아니, 홍상수 감독과 김민희의 연애, 최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자에 대해서는 무지 분노하는 사람들이 불륜이 포함된 연애소설은 즐겨 읽는다는 게, 난 이해가 안 돼"

"그거야 소설 안에는 불륜뿐만 아니라, 스토리와 의미가 담겨 있어서 그렇지. 좀 전에 본 '나이브스 아웃'(스릴러 영화)에서도 범죄 내용이 포함되어있지만, 이민자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존중의 메시지가 있었잖아. 그래서 작품의 완성도가 있는 거지. 불륜만 있으면 '동창회의 목적' 같은 성인 영화가 되는 거 아니겠어."


아내의 명쾌한 답변에 감탄하며, 아내가 영문학 전공이었단 사실이 상기되며 오래간만에 존경심이 싹텄다. 액션 영화와 연애소설을 비교해보니 며칠 동안 고민했던 불륜과 연애소설에 대한 의문이 쉽게 정리되었다. 많은 영화에서 범죄와 폭력 요소가 있지만 오락적인 요소로 보지 그것만 집중해서 보지 않는다. 불륜과 폭력 모두 사회적 규범으로 허락되지 않지만 우리와 함께 있는 인간의 본성이며, 물론 강도 차이는 있지만 안타깝게도 주변의 평범한 일이다. 소설과 영화는 때로는 사회적 규율의 테두리 속에 벗어난 인간의 본능을 인식하고,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일상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이야기할 때 우리에게 영향력이 있다. '히로시마 내 사랑'에서도 주인공 리바의 격정적인 사랑의 욕망뿐만 아니라 비극적인 역사와 함께한 개인의 상실과 상처의 치유 과정이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보니 단순한 열정에서도 여인의 불륜과 욕망 이면에는 유부남을 사랑한 여자의 존재적 불안과 누구에게나 쉽게 위로받을 수 없는 약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문학은 쾌락과 교훈을 모두 포함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동창회의 목적'을 보듯이 '단순한 열정'을 읽은 내가 부끄럽기만 하다. 인간의 본성인 내 안의 욕망을 억누르고 부정하기만 한 건 아닐까? 사회적 비난의 분위기에 필요 이상으로 나의 욕망을 옭아매고 더 큰 욕망을 만들어가고 있던 것은 아닐까? 


저녁 요리를 하고 있는 아내의 보며 식탁에 않아 흘리듯 이야기했다. 

"여보 나 바람기가 있는 것 같아.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내 안의 욕망을 발견했어."

"(한참 있다가 슬쩍 뒤돌아보며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면서) 한 번은 용서해 줄게, 두 번 그러면 죽는 거야"


한 사람을 사랑하여 가족을 만들어가고 신뢰하는 관계를 만들어간 다는 것이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듯 당연하고 쉬운 것만은 아님을 생각해 본다. 여러 욕구와 가치들 중에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의 의미를 세우고 이루어 지켜내는 것이 삶임을 나는 연애소설을 통해 배우고 있다. 제대로 배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연애소설을 보면서 아내의 인기척에 놀라 책을 덮는 일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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