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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명 Jan 09. 2020

아들과의 몸싸움

이기는 것이 자연스럽 듯, 지는 것도 평범한 것

들의 밤톨 같은 주먹은 날이 갈수록 단단해지고 빨라졌다. 새롭게 알려준 무릎 찍기(니킥) 기술이 나의 옆구리에 꽂힐 때는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 나온다. "흐악~" 옆구리를 부여잡고 무척 아픈 척을 하면서 떼굴떼굴 구르면 아들의 얼굴에 미소가 슬며시 흘러나온다. 그 자신감 있는 표정은 다시 나를 흐뭇하게 한다. "엄마, 오늘은 내가 아빠를 이겼어, 내가 니킥으로 아빠를...." 격투기 하이라이트 동작을 재연하듯 무릎을 들며 열심히 엄마에게 자랑한다.


저녁에 가끔 아들과 이불 위에서 몸싸움 놀이를 한다. 매일매일 자라나는 7살 남자아이의 주체할 수 없는 천방지축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방출해 주고 싶고, 그로 인해 아이의 편안한 잠자리와 건강한 마음에 도움이 될 것을 기대한다. 하루의 고단함을 뒤로하고 아이와 몸으로 놀아주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아내는 '고생한다'라고 말하지만, 사실 나는 아들과 교감할 수 있는 이 시간이 무척이나 행복하다. 어린 아들에게 아빠는 나이나 몸무게 차이 이상으로 너무나 거대한 존재일 것이다. 그런 존재와의 경쟁과 승리를 통해 아들이 용기와 자신감을 경험할 수 있는 작은 기회가 되길 바랬다.


그렇다고 내가 항상 져주는 건 아니다. 힘 조절이 안되어서 게 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지는 법도 알려주고 싶어 힘을 쓸 때도 있다. 항상 이기고 싶어 하는 아들은 아파서 그런지 속상해서 그런지 엄청 울어댄다. "아빠 싫어, 이제 회사 가서 오지 마" 별별 소리를 다한다. 나는 못 들은 척 두 팔을 들어 승리의 포즈를 한 번 취하고는 아들을 번쩍 안아서 달래준다. "이기고 싶었는데 속상했구나. 다음에 이기면 되지" 울음을 그치는 아들의 얼굴에서 아빠의 힘을 인정하고 사랑을 받아들이는 표정에 안도감이 느껴진다.


아들이 조금 더 커서 긴 문장을 이해할 때가되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조금 있으면 학교에서 여러 시험과 경쟁 속에 뛰어들어야 할 너에게 이기는 법과 지는 법을 모두 알려주고 싶었어, 우리는 항상 이길 수도 없도, 계속 지기만 하는 경우도 없어. 이기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고, 지는 것도 평범한 것이란다. 이겼을 때는 마음 것 기뻐하되 쓰러진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졌을 때는 승자를 축하해주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알아가면 된단다."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인데, 아들과 같이 성장하길 원하는 나의 내면의 자아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래 이루지 못한 과거는 훌훌 털어버리자. 나보다 높은 고과로 먼저 승진한 어린 김 과장도, 서울에 아파트샀다고 이번 주말에 집들이하는 대학동기도 진심으로 축하해주자. 그래, 아빠는 오늘 하루도 열심히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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