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과 고통의 상관관계
6년 전 일이다. 당시 다니던 체육관의 보일러가 고장이 났다. 바깥 기온은 영하인데 온수가 완전히 끊긴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운동을 가르치던 코치는 '이렇게 된 김에 찬물 샤워를 해보라'고 했다. 따로 대꾸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이렇게 받아쳤다.
'뭐라는 거야, 당신이나 하세요.'
평소 코치가 하는 말을 일단 듣고 보는데 찬물 샤워는 도저히 수긍 불가였다. 삼복더위에도 절대 찬물로 씻지 않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코치는 찬물 샤워의 효능에 관해서 한참이나 떠들었다. 말인즉슨 찬물로 샤워하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나. 그의 말이 길어질수록 반발심만 커졌다.
'기분이 문제가 아니라 돈을 줘도 싫다고요!'
들은 체 만 체했던 코치의 말, 사실이었다
▲ 영화 <아토믹 블론드> 오프닝에서 주인공 로레인은 얼음이 가득 찬 욕조 안에서 몸을 일으킨다. ⓒ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갑자기 찬물 샤워에 관한 호기심이 싹튼 건 샬리즈 세런(샤를리즈 테론) 주연의 영화 <아토믹 블론드>를 본 직후였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주인공은 얼음이 가득 찬 욕조 안에서 몸을 일으켰다. 카메라가 근육으로 갈라진 주인공의 등을 오래 비추었다. 푸른색 필터를 써서 촬영한, 차갑고 건조한 분위기의 영상을 보고 있자니 내 몸이 다 얼어붙는 것 같았다.
주인공 로레인은 왜 얼음물 속에 누워 있었을까. 눈가를 물들인 커다란 멍과 온몸의 상처는 그가 간밤에 험난한 작전을 수행했음을 짐작게 한다.
운동선수들도 격렬한 훈련이나 경기 후에 다친 근육을 빠르게 회복하기 위해 냉동고나 다름없는 차가운 탱크 안에 들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니까 그는 얼음물 속에서 지친 몸을 회복하는 중이었다.
알고 보니 영화 속의 찬물 샤워를 일컫는 용어가 따로 있었다. 최소 1분 이상 찬물로 씻는 걸 일컬어서 '스코틀랜드식 샤워'라고 부르는데 이 샤워법은 007소설 시리즈에 자주 등장한다. 그래서 '제임스 본드 샤워'라고도 부른다.
<아토믹 블론드>의 로레인은 여자 제임스 본드다. 그는 혼란과 고독 속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매력적인 여성 정보원과 특별한 방식으로 접선한다. 얼음물 속에 누워 있던 오프닝은 모두 계산된 연출이었던 거다.
그런데 다친 근육을 빠르게 회복하는 것 외에도 제임스 본드 샤워의 특별한 효능이 또 있다. 바로 중독적일 정도로 기분이 좋다는 거다. 그 옛날에 들은 체 만 체했던 그 코치의 말이 사실이었다.
못 말리는 호기심이 발동한 건 그때부터였다. 단지 찬물로 씻기만 해도 정말 기분이 좋아질까, 얼마나? 찬물이 닿는 고통을 상쇄할 만큼?
러닝 대회를 코앞에 두고 연습 중이던 12월의 어느 날, 결국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겼다. 온몸이 땀에 젖은 김에 찬물 샤워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이 엄청난 냉기를 뿜었다. 심호흡을 두어 번 하고 쏟아지는 차가운 물 아래 발을 내디뎠다. 찬물이 몸에 닿자마자 '당장 이 쓸데없는 호기심을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1분간은 비명을 멈출 수 없었다. 정수리부터 시작해서 찬물이 닿는 부위가 산산이 부서지는 충격이 온몸으로 빠르게 번졌다. 동시에 숨은 들숨만 있고 날숨을 뱉을 수 없었다. 들숨, 들숨, 들숨으로 호흡이 너무 빨라져서 이대로 두면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그만해! 이건 자살 행위야.'
피부가 통증으로 찢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역설적으로 불에 덴 것처럼 뜨거운 것 같기도 했다. 거품을 모두 씻어낼 만큼 시간이 지나서야, 정말 죽어버리면 곤란하기 때문인지 고통이 사라졌다. 피부는 무감각하고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아무 생각 없이 멍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짓말같이 기분이 좋아졌다. 극도로 상쾌하고 마치 새로 태어난 것 같은 쾌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날의 제임스 본드 샤워는 평생 했던 그 많은 샤워를 다 잊게 할 만큼 강렬했다. 나쁜 의미로도 절대 잊을 수 없고 좋은 의미로도 그랬다.
나는 쾌락에 관심이 많다. 정확히는 쾌락 그 자체보다 쾌락을 얻는 방법에 몰두하기를 좋아한다. 그건 그만큼 기분이 쉽게 저조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분이 엉망일 때 쉽게 전환하는 방법이나 그저 그런 평범한 만족보다 고차원적인 만족을 얻는 방법을 개발하느라 나름대로 고심했다. 쾌락에 관한 매뉴얼을 손에 쥐면 나라는 사람과 내 삶을 다루기가 조금은 수월해지지 않을까.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쾌락에 관심을 가질수록 고통에도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고통과 쾌락은 한 쌍이어서 쾌락의 대가가 고통이듯 고통의 대가도 쾌락이다. 고통 다음에 오는 보상으로서의 쾌락이 평범한 쾌락보다 훨씬 더 강렬한 게 사실이다. 이는 내가 비정상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뇌가 작동하는 방식이 그렇다. 고통이 몸 자체의 조절 향상성 체계를 자극해서 쾌락을 끌어낸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뇌의 메커니즘을 토대로 호르메시스(Hormesis)에 관해서 연구하고 있다. 호르메시스는 '실행하다', '압박하다', '강권하다'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했다. 추위, 열기, 중력 변화, 방사선, 음식 제한, 운동 등 해롭거나 고통스러운 자극이 적당하게 주어질 때의 긍정적인 효과를 연구하는 과학의 한 분야다. 갈수록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이들이 늘어나는 것도 호르메시스와 연관이 깊다.
물론 고통에 몸을 밀어 넣는 이유를 단순한 쾌락 때문이라고 볼 순 없다. 작가인 셰릴 스트레이드는 인생의 밑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시기에 PCT로 알려진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의 한 코스를 선택했다. 4285킬로미터를 홀로 무작정 걸으며 그는 삶에서 잃었던 것들을 하나씩 되찾는다.
▲ 작가인 셰릴 스트레이드는 4285킬로미터를 홀로 무작정 걸으며 삶에서 잃었던 것들을 하나씩 되찾는다. ⓒ 게티이미지뱅크
극한의 고통과 시련에 맞서서 정신의 성장과 고양이 기다리는 도착지까지 용기 있게 걸어가는 이 여성의 여정은 꽤 감동적이다. 그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와일드>를 써서 성공했고 이 책은 배우 리스 위더스푼이 주연한 영화로도 제작됐다.
고통에 뛰어든 이들의 체험이 감동을 주고 오래 회자되는 까닭은 그만큼 고통 추구가 쾌락 추구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절친한 친구인 <아무튼 산>을 쓴 장보영 작가에게 셰릴 스트레이드에 관해서 이야기 했을 때, 그가 눈을 반짝이면서 '같이 PCT를 횡단하러 가자'고 했지만 나는 말끝을 흐리며 웃었다.
만약 고통 추구가 쉬운 일이라면 가뜩이나 고물가 시대인데 매일 제임스 본드처럼 샤워하고 난방비를 아꼈을 거다. 하지만 근육이 특별히 혹사당한 것 같은 날에나 회복을 위해서 가끔 할 뿐이다. 고통 뒤에 쾌락이 기다리는 건 사실이나 고통은 여전히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