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 여행
“주짓수 하러 일본에 간 거야?”
평소엔 조용하기 짝이 없는 내 에스엔에스 계정으로 메시지가 마구 날아들었다. 일본 오사카의 한 주짓수 도장에 방문해서 찍은 사진을 공유한 직후였다.
솔직히 말하면 여행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악명 높던 코로나19도 진정됐고 오랜만에 낯선 곳을 떠돌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지난 4월, 오사카에 사는 주짓떼로(주짓수를 수련하는 남성)들이 서울 관광을 겸해서 내가 다니는 도장에 방문했다. 구김 없이 밝게 웃는 그들을 보면서 나도 오사카에 가고 싶었다. 그렇게 도복 한 벌과 벨트가 담긴 캐리어를 들고 여행길에 올랐다.
첫날 저녁 8시가 훌쩍 넘은 시각에 오사카 중심부에 있는 주짓수 도장에 도착했다. 얼굴이 눈에 익은 이들이 방문객을 반겨줬다. 그들은 내가 서울에서 열성적으로 ‘리어 네이키드 초크’(양팔로 삼각형을 만들어 뒤에서 상대의 목을 조르는 기술)를 걸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방문객의 입장이 되니 소심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국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맞붙는다는 건 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서울에서 온 주짓떼라(주짓수를 수련하는 여성)들이 약간 위축된 걸 알아서인가, 즉각 보상이 주어졌다. “훌륭하다”, “강하다”, “유도를 배웠느냐” 등 수업을 진행한 마에다 선생이 사람 좋은 웃음을 머금은 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 날에는 드디어 다나카 관장님을 만났다. 그의 도장은 2013년에 처음 문을 열어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온화한 웃음에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다. 억지로 이끌지 않아도 따르게 되는, 그런 오묘한 리더십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게 놀라웠다.
그 짧았던 여행을 되새길 때마다 떠오르는 건 온통 눈부신 태양광뿐이다. 비 예보가 있었던 게 무색하게, 5월 중순인데도 한여름 같은 뙤약볕이 내리쬐었다. 특히 금각사에 가던 날은 집집마다 하얗고 두꺼운 솜이불이 베란다에 나와서 볕을 받고 있었다.
금각은 그처럼 찬란한 빛 속에 고고하게 서 있었다. 유홍준 명지대학교 석좌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일본 미술에는 항시 극단적으로 상반된 두 개념이 공존한다고 정의했다. 극대와 극소, 화려함과 검박함, 호방함과 검소함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게 아니라 각각 독립적인 가치로 존재한다.
극단의 상보성 가운데 나는 극대, 화려함, 호방함 속에만 머물렀다. 상반된 매력의 금각사와 은각사 중에서 금각사를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그 무렵엔 작은 일에도 쉽게 쓸쓸해서 일본에서까지 쓸쓸해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찬란하게만 기억되던 여행에도 반전이 있었다. 오사카 도장의 관원인 아키라 씨가 보낸 링크가 시작이었다. 일본어를 모르지만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가 그의 아들에 관해 쓴 작품 덕분에 ‘아키라’가 ‘빛’을 뜻하는 건 알고 있었다. 여행이 끝나도 이어진 빛의 은유를 따라서 링크를 누르니 내가 스파링하는 영상이 나왔다. 오사카 여행뿐만 아니라 오사카 사람들이 서울 방문 때 촬영했던 영상에 찍힌 모습까지 뒤늦게 발견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나도 스파링하는 장면을 가끔 촬영하지만 그처럼 매일 같이 세세하게 기록하진 않는다. 분석하면서 볼 의욕이 없고 무엇보다 그리 자랑스러운 모습이 아니라고 여겼다. 오죽하면 영상을 다 보기 위해서 며칠 동안 용기를 쥐어짜야 했을까.
그 영상들이 결국 오래된 열등감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중단했던 주짓수를 다시 시작하고 1년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열등감이 해소되긴커녕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잘한다’는 칭찬을 들어도 그 앞에 ‘여자치고는’이 생략됐다고 생각했다. 블루 벨트에 두 개의 스프라이트(다음 벨트로 승급하기 위한 예비단계 표식으로 ’그랄’이라고도 한다)를 받았지만 실제 실력과는 무관한 것 같았다. 내가 정체되고 고여 있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려웠다.
언젠가부터 주짓수라는 말만 들어도 그래프 위에 좌표를 찍듯 내 위치를 의식했다. 위치라고 표현했지만 사실은 실패와 성공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를 재고 있었다. 타고난 재능으로 이 모든 걸 쉽게 하고 싶었다. 주짓수를 잘하지도 못할 거라면 뭐하러 돈과 시간을 쏟아붓는가? 절대 장인이 될 수 없는 마음가짐과 사고방식이었다.
예전에 킨츠기라는, 깨진 도자기를 수리하는 기법에 관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킨츠기 장인들은 손상된 도자기를 복원해서 원래 상태로 돌려놓는 게 아니라 금이 간 자리에 옻칠이나 금속분을 발라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킨츠기엔 ‘와비사비의 미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안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뜻하는 일본어 ‘와비’는 가난하고 소박한 미를 뜻하고 ‘사비’는 불완전함, 미완의 것, 쓸쓸한 아름다움을 뜻한다. ‘와비사비’는 아름답지 않은 것을 이해하는 방식, 또는 추함에 깃든 아름다움을 보는 방식이다.
마치 깨진 도자기처럼 내 안에도 강함과 나약함, 능숙함과 미숙함, 아름다움과 추함이 공존한다. 그러나 나는 나약함, 미숙함, 추함을 경멸했다. 열등한 성향을 없애거나 잘 숨기기라도 해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상반된 성향이 공존한다고 생각하면 감당할 수 없는 갈등이 몰아쳤고 나는 그런 불협화음을 품을 정도로 품이 너른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항상 간단한 답과 매끈한 개념을 좋아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술을 익히기까지 10년이 걸린 장인처럼 되는 유일한 방식은 통달하는 게 아니다. 다듬어지는 것이다. 오사카의 관원들도 빈틈없는 학습, 끝없는 반복, 반복을 통한 개선이라는 가장 일본적인 방식으로 그들만의 주짓수를 다듬고 있었다. 그 성실하고 진지한 태도를 지켜보면서 ‘평생 내 손과 영혼을 연결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던 장인의 말을 떠올렸다. 그제야 나의 서툰 움직임과 어리석음도 지워야 할 어둠이나 그늘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또한 노력에 깃든 아름다움이다. 그걸 오사카까지 가서야 깨달았다.
다시 시작된 주짓수와의 여정은 여전히 길고 지루하다. 또 언젠가 나의 일부는 손상되고 깨질 것이다. 그래도 그건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기쁨이다. 더없이 밝고 온화하게 세상을 고루 비추던 5월의 빛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