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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맨 Jan 07. 2023

손질하지 않은 생새우를 찾습니다

사업 결과 보고, 정산 등 몰아치던 연말 일정을 마치고 새해를 맞이했다. 건강을 챙기라는 주변인들의 염려 덕분에 조금은 느슨한 일정을 소화하며 연초를 보내고 있다. 물리적, 심적 여유가 생기는 시즌이 되면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요리로 향한다. 대충 끼니를 때운다는 개념이 낯선 내게 요리는 정말 좋은 몰입 수단이다. 재료를 구매하고, 다듬고 조리하고 식탁에 내서 식사를 하고 식기들을 정리하는 일련의 행위는 참 숭고한 행위다.


미디어의 발전은 요린이들에게는 축복과도 같다. 일류 쉐프들의 레시피를 클릭 몇 번, 터치 몇 번으로 접할 수 있으니 말이다. 며칠 전부터 비스큐 로제 파스타에 꽂혔다. 특히 관심이 갔던 건 새우를 활용한 파스타 요리였다. 새우의 머리부터 껍질까지 모든 것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맛을 내는 게 인상적이었다.


마트에 갔다. 껍질 손질을 하지 않은 생새우를 찾았다. 없었다. 백화점에도 없었다. 새우철이 지나서 생새우는 구하기 힘들다는 걸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오늘에서야 알게 됐다. 철이 지나면 만날 수 없다니 슬펐다.


만나고 헤어짐이 잦다. 새롭게 만나는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열기는 어렵다. 그래서 마음을 준 사람을 보내기는 더욱 어렵다. 만나고 헤어지는 게 꼭 정초부터 철 지난 생새우를 찾는 내 모습 같아 안타까웠다. 제법 무뎌지고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쓰리다.


한철 머무는 마음에게
서로의 전부를 쥐어주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 박준 <마음 한 철> 中


한때는 매일 만나서 함께 식사하고, 술잔을 기울이며 세상의 모든 근심을 함께 나누던 사람들이 있었다. 며칠 전 오랜만에 그들을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이 취소됐다. 갑작스럽게 직장에서  생긴 약속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의 마음 혹은 관계의 철이 지난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의 헛한 기분은 철 지난 생새우를 찾다가 좌절했기 때문일까? 철 지난 생새우는 정말 찾을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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