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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Sep 25. 2022

무엇을 훔치고 싶은 걸까?

신문에서 횡령 글자를 보면 7년 전에 내 뒷자리에 앉으신 사업관리팀 과장이 생각난다.


경력직으로 입사하신 키도 작고 통통하신 남자 과장은 말수가 적으셔서 인사 외에 말을 나눈 적이 없었다.

입사한 지 3개월 후에 갑자기 자리를 계속 비우셔서 그 팀의 다른 직원에게 그 과장의 행방을 물었더니, 과장님 어머니가 큰 병에 걸려서 효자인 과장님이 간호해주기 위해 병가를 신청했다고 들었다.     


그 후, 2개월 후 뜻밖에 소식이 회사를 휩쓸었다.


사업관리팀에서 회사 법인 도장과 기밀한 서류를 담당하던 그 과장이 회사 명의로 지인 회사에 어음을 발행한 후, 어음할인으로 현금으로 바꾼 뒤 잠적했고 은행에서 만기일이 도래하자 회사로 현금을 청구했다.

소문으로 들어서 정확하지 않지만 횡령한 금액은 몇십억 정도였다. 그 과장은 나중에 잡혔지만, 유흥비로 써서 돈이 없다는 핑계로 막무가내로 굴었고 결국 회사는 신원보증보험으로 일부만 회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들었다.

     

일 년 후에는 다른 계열사의 법인카드 횡령 건이 있었다. 다이어트를 한다고 점심을 거르는 여자 직원이 있었다. 여자 직원은 사고 싶은 물건을 법인카드로 산 다음에 경비 시스템을 통해 결재를 올린 후, 팀장이 점심을 먹으러 사라진 사이에 몰래 팀장 컴퓨터로 가서 본인의 결재를 승인해 버렸다. 

그렇게 몇 번이고 법인카드로 본인의 물건을 사다가 사용명세가 이상하다고 여긴 회계팀 직원에 의해 발각되었다. 그 여자 직원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후로 시스템이 강화되어 횡령할 생각이 없던 직원들이 결재를 받는 것이 어려워졌다.     


최근 뉴스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횡령이라는 의미로 소확횡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탕비실 물건을 가져오거나 개인 프린트물을 하면서 직장에서 생긴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다들 무엇을 훔치고 싶은 걸까?     


야근으로 잃어버린 소중한 시간을,

상사의 압박에 떨어지는 자존감을,

월급쟁이로는 평생 돈을 모을 수 없다는 좌절감을,

이렇게 평범하게 살다가 아무것도 아닌 자신의 인생을 훔치고 싶은 걸까?     


소소하게나마 횡령해서,

회사에서 소비된 인생을 보상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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