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무조건 하나씩 Project #09
저는 오피스텔에 삽니다.
4천 세대가 3개 동에 나누어 살고 있는 대 단지입니다..
출근시간이 되면 중앙에 있는 3개의 엘리베이터는 거의 만원입니다.
중간 이하 층에 사는 사람들이 한 번에 타기란 쉽지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출근이 급한 사람들은
중앙 엘리베이터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합니다.
바쁜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엘리베이터가 아니고 문입니다.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서는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합니다.
이 문을 열고 닫는 게 불편한지
누군가가 매번 복도에 있는 소화기를 가져다 문에 고여놓습니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끌어와 사용하는 것입니다.
원래 소화기가 있어야 하는 곳에는 야광으로 표시가 되어 있습니다.
불이 나면 연기 때문에 시야 확보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화기가 표시된 곳, 원래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으면
화재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소화기를 옮겨 놓는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어
“모두의 안전을 위해 필수적인 소화기를 문을 고이는 용도로 사용하면 안 되지 않나요?”
라고 물으면 답하겠죠.
“모두의 편의를 위한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다시 물을 겁니다.
“그런데 왜 소화기죠?”
사실 답이 궁금합니다.
문을 고정하는 방법에는 소화기 말고도 많은 방법이 있을 텐데요.
편의와 안전을 비교해 볼까요.
생활 속에서 활용되는 횟수를 따져보자면, 편의가 안전보다 더 자주 활용될 겁니다.
하지만 둘 중 하나가 필요할 때가 문제입니다.
편의가 필요할 때 편의가 자리에 있지 않으면 불편하고 말 일이지만
안전이 필요할 때 안전이 자리에 있지 않으면 불편한 정도로 끝나진 않을 겁니다.
자세히 주변을 둘러보면,
이렇게 여럿의 안전을 모으고 모아 각자의 편의에 활용하는 경우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음주 운전과 불법 주차도,
인도를 달리는 오토바이도,
스프링클러가 없는 오래된 건물도,
위생 관념 없이 식자재를 다루는 셰프도,
필요 이상의 치료가 필요하다며 과잉 진료를 하는 의사도,
길을 걸으며 뒤따라오는 모든 사람에게 담배 연기를 뿜어대는 일도,
모두 똑같은 맥락입니다.
불로부터 사람을 지키지 못하고
엘리베이터로 통하는 철문을 지키고 있는 소화기를 볼 때마다
한숨을 한 번 쉬고 다가가 제자리에 옮겨 둡니다.
하루를 마치고 돌아올 때 다시 그 철문을 보면
소화기는 어김없이 철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지루한 소화기의 자리 찾기는 계속될 겁니다.
제자리에 없는 것이 보인다면, 저는 몇 번이라도 옮겨 놓을 겁니다.
모두의 안전을 자신의 편의를 위해 소화기를 문을 고이는 데 사용하는 사람도 그럴 테니까요.
방법은, 그 사람보다 한 번 더 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