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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ywon Kim Apr 11. 2020

Fancy Nancy가 fancy한 이유

픽쳐북 인문학


처음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는 반짝이로 뒤덮인 표지, 그리고 표지의 화려한 복장을 한 여자아이를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따뜻한 위로를 주거나, 유머러스하거나, 생각거리를 주는 이야기를 찾아 동화책을 고르고, 보는 나는 Fancy Nancy의 표지만 보고 ‘아, 이런 공주 공주 한 동화책은 스토리가 조금 약하더라.’ 하고 책을 다시 책꽂이에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문득, 이 화려한 표지의 주인공이 궁금해졌다. 이름부터 그냥 Nancy 도 아닌 Fancy 화려한, 멋진 낸시. 이름과 표지를 장식하는 화려한 액세서리와 반짝이들. 아이라고 하기에는 극도로 우아한 포즈와 손가락 각도, 그리고 정신을 쏙 빼놓는 화려한 복장까지. 도대체 무슨 특별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너무나 알고 싶어 졌다, 멋쟁이 낸시의 이야기를.





그렇게 알게 된 Fancy Nancy는 내가 아는 동화 속 여자아이 캐릭터 중 (디즈니의 공주 제외) 가장 화려하고, 가장 충만하고 most dramatic, 가장 열정적이며 most energetic, 가장 마음이 따뜻한 warm-hearted 친구이다.


보통 동화 속에서 화려하고, 끼가 넘치는 친구들은 지극히 평범한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당 역할을 도맡는데, Fancy Nancy는 이런 캐릭터에 대한 편견을 뒤엎는다. 


화려한 낸시는 이름처럼 화려한 생활을 한다. 시중에서 볼 수 없는 화려하다 못해, 산만해 눈이 아파오는 자신의 드레스와 액세서리를 직접 디자인하고 (내 눈이 아픈 건 내가 패션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 프랑스에서 온 자신의 인형 Marabelle Lavinia Chandelier을 데리고 갈라 파티에 참석하고, 홍학과 초록 깃털이 달린 챙 넓은 모자, 빨간 하이힐을 신고 친구와 파라솔 밑에서 티타임을 갖기도 한다. 어떤 면에서는 extravagant, 좀 과한 면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Fancy Nancy 책 전반에서 낸시는 ‘I am making progress - that is fancy for getting better’ 이런 식으로 fancy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성숙한 영어 표현과 이따금 낸시가 애용하는 프랑스 단어의 의미를 친절히 설명한다.




 

우연히 이런 낸시를 만나보고는 ‘와 정말 어떻게 이런 캐릭터가 있을 수 있지?’ 하고 당혹감과 웃음이 절로 나왔다. 특별하면서도,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여러모로 매력이 넘치는 이 캐릭터는 어떻게 생겨난 걸까? 혹시 동화 속 낸시의 엄마가 낸시를 이렇게 꾸미는, 동화판 패리스 힐튼(?) 같은 사람이 아닐까? 


Nancy’s fancy life의 배경이 궁금해진 나는, 낸시의 엄마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 그런데 낸시의 엄마를 보니 낸시가 이렇게 멋있을 수 있는 이유가 보인다. 


낸시의 엄마는 낸시를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Fancy Nancy 시리즈에서 낸시의 엄마는 낸시가 자유로운 낸시일 수 있도록,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자’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낸시의 엄마는 낸시가 자신의 분신처럼 함께하는 프랑스 인형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신문 광고에서 발견한 갈라 파티 소식을 낸시에게 알려주고, 파티에 낸시와 함께 멋진 드레스를 입고 참석한다. 또 발레 공연을 앞두고 역할에 몰입한 낸시가 화려한 몸동작으로 집안과 슈퍼마켓을 휘젓고 다닐 때 낸시의 엄마는 낸시를 야단치거나 제지하지 않고 그저 흐뭇하게 바라본다. 낸시는 모든 색깔의 하이힐을 소장하고 있는 듯한데, 낸시에게 한 뼘이나 큰 그 구두들은 한눈에 봐도 낸시의 엄마 것임을 알 수 있다. 낸시의 엄마는 낸시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모든 재료와 격려를 제공하고, 또 시간을 내서 낸시가 좋아하는 것에 함께 참여한다.




Fancy Nancy and the Mermaid Ballet 편에서 낸시 엄마의 역할이 더욱 잘 드러나는데, 낸시는 발레 공연을 앞두고 그토록 원했던 인어공주 역할을 자신이 아닌 가장 친한 친구 Bree가 맡게 된 것을 알고 연극 속 비극의 주인공처럼 슬퍼한다. 


낸시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다. “I’m a terrible girl. I lied. I said I was happy for her. And I’m not.” “저는 정말 나쁜 아이예요. 저는 거짓말을 했어요. 저는 Bree 가 인어공주 역할을 맡게 되어 기쁘다고 했는데, 저는 기쁘지 않아요...” 낸시는 인어공주 역할을 하지 못하게 돼서 슬픈 것보다, 친구 Bree를 위해 진심으로 기뻐해주지 못한 자신에 대해 자책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자 낸시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That’s not lying, exactly. You want to be happy for Bree, don’t you?” “음.. 낸시야, 정확하게 말하자면 넌 거짓말을 한 건 아냐. 넌 브리를 정말 축하해주고 싶잖아, 맞지?” 그러자 “Of course. She is my best friend!” “당연하죠! 브리는 저의 가장 소중한 친구예요.”라고 대답하는 낸시를 엄마는 이렇게 위로한다. “It’s just hard now because Bree got something you wanted very much. You’re jealous. But your heart is so generous and warm, it will melt the bad feelings away.” “지금 낸시의 마음이 어려운 건 당연한 거야. 브리가 네가 간절히 원하는 걸 갖게 됐잖아. 그럴 때는 질투하는 마음이 생기지. 하지만 낸시, 너의 마음은 너무나 넓고 따뜻해서 이런 나쁜 기분은 금방 사라질 거란다. 


낸시의 엄마는 낸시가 속상한 이유와 질투라는 감정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낸시에게 질투를 이길 수 있는 따뜻한 사랑, 넓은 마음이 있음을 상기시켜준다. 이 얘기를 들은 낸시는 엄마를 통해 자신의 능력과 가치 - 다른 사람을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 그리고 그런 낸시를 인정하고 믿어주는 엄마의 사랑 - 를 깨닫고, 인어공주 역할을 맡은 친구 브리에게 자신이 만든 소중한 조개 티아라를 선물하며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엄마의 위로를 통해 질투가 아닌 사랑과 자신감으로 충만해진 낸시는 우아하게 바람에 흩날리는 버드나무 역할을 성공적으로 해낸다. 낸시는 엄마의 사랑을 통해 역할과 상관없이 당당하고 아름다운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이렇듯 낸시의 엄마는 Fancy Nancy가 자신의 모습 그대로 행복할 수 있도록, 낸시가 자신의 달란트와 사랑을, 자신의 특별함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낸시 곁을 든든하게 지켜준다. 낸시를 더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도, 낸시가 평범하기를 바라는 것도 아닌, 있는 모습 그대로의 낸시가 행복할 수 있도록 낸시가 필요한 것들 - 주로 반짝이고 알록달록한 천과 소품들 - 을 제공해 줄 뿐이다. 




내가 처음에 Nancy를 보고 당황을 금치 못했던 이유는 사실 Nancy가 남들과 너무 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남들과 같고 다름을 결정하는 것은 굉장히 주제넘은 생각이지만, 말 그대로 fancy 한 낸시의 겉모습에 본능적으로 ‘뭐 이런 캐릭터가 다 있지?’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마치 내가 가끔 개성이 강한 생김새나 스타일, 강한 성격의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을 특이하고 부담스럽게 생각해 나와 다른 부류의 사람들로 단정 짓는 것처럼 말이다. Fancy Nancy와 낸시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는 낸시의 엄마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나의 이런 고정관념을 마주하도록 해주었다.


정작 나는 겉모습으로 판단받기를 싫어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겉모습만으로 그들의 생각을 판단해오던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느새 ‘이상’ 해 보이지 않기 위해 ‘나다움’, ‘자유로움’을 잊어버리고 ‘평범함’을 입기 위해 노력해온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내가 보기에 너무나 이상하고, 그런데 자유로운 Fancy Nancy에 나를 비추어보니 fancy 하지 않은 내가 보였다. 


Fancy Nancy, 그녀가 fancy 한 이유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 패션디자인, 발레 연기, 친구 Bree - 온 진심을 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온 진심을 다하는 데 있어 그녀는 정말 자유롭다. 다른 사람의 시선과 판단이 - "멋진 인어공주 역할과 비교되는, 별 볼일 없는 나무 역할" - 자신의 행복을 방해하도록 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다른 사람의 시선과 평가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없다. 왜냐하면 낸시는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멋지고, 당당하고, 아름다운 존재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낸시의 엄마가 Fancy 한 Nancy를 인정해주고,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신감과 사랑, 그리고 매력이 넘치는 낸시는 자신만을 사랑하는 아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자신과 같은 fancy 한 존재로 인정하게 된다. 마치 친구 Bree가 인어공주 역할을 맡았을 때, 자신이 인어공주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것을 속상하게 여기는 것을 넘어,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조개 티아라를 주며 Bree가 멋진 인어공주 역할을 잘 해내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낸시의 모습 같이. 




Fancy Nancy는 내가 만나본 동화 속 캐릭터 중 가장 아름답고, 가장 자유로운 인물이다. 그런 자유로움 뒤에는 Fancy Nancy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해 준 낸시의 엄마가 있었다. 조금만 둘러보면 나에게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내 겉모습이 아닌 내 열정과 내 진심을 알고,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사람들. 그들에게만큼은 나도 Fancy Nancy 만큼 멋진 친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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