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ywon Kim Mar 31. 2020

작가 소개 (2) - 나는 나쁜 선생이었다.

좋은 교육자가 되고 싶은 이유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1년 간 한국에서 휴학기간을 보내면서, 강남의 한 고급 아파트에서 영어 과외를 하게 되었다. 


내가 만난 아이들은 10살 천진난만한 초등학생 여자아이(‘수지’)와 그 동생인 5살 장난꾸러기 유치원생 남자아이(‘보검’)였다. 둘은 매년 여름방학이면 미국으로 가 그곳에 사는 사촌형제들과 시간을 보내며 summer school에 다니기도 했고, 어린 동생은 영어유치원도 다니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 학부모님은 내게 원어민 수업을 요청하셨다. 초등학생 누나 수지는 부분적인 읽기와 쓰기를 할 수 있었고, 유치원생 보검이는 미국에서 영어 때문에 느낀 당혹스러움 때문인지 영어로 말하기를 싫어했다. 


나는 학부모님과 상의를 통해 누나 수지와는 읽기, 쓰기 위주의 수업을 진행하기로 하고, 동생 보검이와는 먼저 영어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진 다음, 파닉스 위주의 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나는 수업을 시작하며 학부모님께 “재미있게 배우는 게 제일 중요하죠!”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렸다. 나는 이때까지 내가 재미있고, 좋은 선생님이 될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수업이 시작된 지 3주 정도 지났을까? 서로에 대한 경계가 풀리면서 아이들의 본모습과, 나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수지는 수업 초반에는 내가 가져오는 영어 책이나, 나와 영어로 하는 대화에 흥미를 가지고 참여했지만, 3주 정도가 지나니 숙제가 있었다는 것조차 기억을 못 하는 듯했고, 같이 읽은 책에 대해 질문을 해도 자신 있게 답변을 하지 못했다. 새로운 책, 더 쉬운 책을 가져와도 재미없다는 표정을 짓고는 게임을 하고 싶다고 록 음악 같은 고음의 노래를 멈추지 않고 불렀다. 나는 “수지가 숙제를 해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니 우린 오늘 수업도, 게임도 할 수가 없어”라고 나름대로 단호한 표정을 지어가며 수지를 혼내보기도 했지만 잔소리는 그때뿐, 수지는 10분 후면 모든 것을 잊고 게임을 하고 싶다며 그녀의 샤우팅을 다시 시작했다. 


보검이와의 수업은 더욱 격렬했다. 처음에 나는 보검이에게 영어로 겁을 주고 싶지 않아서 약 한 달간 보검이와 한국어로 놀기만 했다. 보검이 방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둘 다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고 소리를 지르며 놀았다. 그러면서 가끔씩 기회가 생기면 영어 단어를 하나씩 알려주고는 했는데, 그럴 때마다 보검이는 “선생님 영어 하지 마!” 하고 뾰로통하게 말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보검이와 책상에 앉아 수업을 하려고 하면, 보검이는 초코 아이스크림을 먹어 검고 축축하게 된 혀를 내밀며 “나 공부 안 할 거야!” 하고 나에게 으름장을 놓았고, 나는 그런 보검이를 보면서 한숨을 쉬곤 했다. 보검이는 겨우 겨우 편 영어교재 전체를 색연필로 다 칠해버리고는 영화 속 악당처럼 “우하하하”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나는 공부하기 싫다는 보검이가 밉고, 또 안타까운 마음에 종종 교재를 덮고 밖으로 나가 보검이와 뛰어놀아버리고는 학부모님께는 머쓱한 표정으로 “오늘은 보검이가 피곤해해서 놀이시간을 가졌어요” 하고 말씀드렸다.


약 1년 동안 수지, 보검이와 이렇게 치고박으며 겨우겨우 영어를 가르쳤다. 아니, 아이들에게 “하지만 나는 영어를 가르쳐주러 왔는 걸 어쩌겠니?”라고 말하며 계속 들이대고 달래고 하다보니 1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으려나? 지금은 수지, 보검이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미화되었지만, 당시 아이들과 책상 위에서 같이 괴로워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그때를 돌아보면 우리가 벌였던 ‘영어공부 전쟁’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이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한 나의 부족함 때문이었다. 


우선 첫 번째로 수지와 보검이는 공부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이 당연한 사실을 나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10살 수지는 보통 나를 만나기 전 학교에 갔다가 수학학원, 수영 학원에 다녀온 후였다. 주말에는 나와의 수업을 위해 놀 시간을 희생(?) 해야 했다. 이런 스케줄 속에서 숙제를 할 시간이 없는 것 (나도 어릴 적 학교가 끝나면 학원에 가느라 학교 숙제도, 학원 숙제도 할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수업을 피곤해하고 지루해하는 것, 그리고 놀자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수지에게는 당연한 요구였다. 수지의 “게임해요오옷!!~” 샤우팅에는 ‘선생님, 전 지금 피곤하고 지루해요. 숙제도 못해서 수업에 오기도 싫었다구요. 선생님이랑 공부하느라 놀지도 못하니까, 재미있는 게임을 하면서 좀 쉬고 싶어요!’라는 뜻이 담겨있던 게 아니었을까? 보검이도 비슷한 이유로 수업을 싫어했던 것 같다. ‘하루 종일 영어 유치원에서 듣기 싫은 영어를 겨우겨우 참다웠는데, 또다시 영어수업이라고요?!’. 수지와 보검이는 공부할 시간이 아니라, 놀 시간이 필요하다고 나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두 번째로 내 수업은 재미가 없었다. 나는 취향도 유치하고, 애들과 잘 노는 편이다. 수지와 보검이랑 찍은 웃긴 사진들이 가득하다. 재미없었던 건 나보다는, 내가 가르치는 영어였다. 수지와 보검이에게 영어가 재미없었던 이유는, 영어가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아아, 나는 ‘하기 싫어요!’ ‘웩’ ‘악!!!’ ‘재미없어’라는 아이들의 말이 ‘너무 어려워요’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지 당시에는 몰랐었다. 그냥 수지와 보검이가 공부를 싫어하는 줄만 알고 있었다. 수지가 책을 읽기 싫어하는 이유가, 숙제를 안 해오는 이유가, 학부모님께서 ‘수지가 좋아하는 책’이라고 주신 영어책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읽는 것과 내용을 이해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계기였다.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싫어하는 보검이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런 보검이가 수업에 집중했던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자기가 알고 있는 단어가 나와 반가워하던 것이었다. 아이들은 자기가 이미 아는 것에는 흥미를 보이고, 모르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해 싫어한다. 내가 아이들의 수준을 더 잘 파악할 수 있었다면 수지와 보검이가 내 수업을 조금 더 좋아해 주지 않았을까?


마지막으로 나는 조급했다. 나는 나를 믿고 아이들을 맡겨주신 학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었다. 그래서 수지와 보검이가 얼른 영어책을 술술 읽고, 영어 단어를 척하면 척! 말해주기를 원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싫다고 해도 의지를 굽히지 않고 계속 영어로 말해주고 알려주고 설명해줬다. 그게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마지못해 아이들과 놀고 게임을 할 때도 계속 영어를 썼다. 하나라도 더 가르쳐줘야 한다는 생각, 수업 진도를 나가야 한다는 생각, 학부모님께 보여드릴 결과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같이 가기보다는 저 앞에 서서 빨리 오라고 재촉만 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수업이 아이들에게 벅차게 느껴지진 않았을까,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 든다. 



1년 간 수지, 보검이와 함께 하면서 행복한 순간들도 많이 있었다. 나는 특히 보검이랑 했던 수업들이 기억에 남는다. 수업 부담이 조금 덜했던 보검이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했다. 꽃이 한창 피던 봄날에는 보검이와 놀이터 옆 꽃밭에서 꽃을 종류별로 가지고 와서 어떤 꽃이 제일 이쁜지 얘기하고, 꽃을 얼마나 많이 찾았는지 영어로 숫자를 세보기도 했다. 보검이는 이쁜 꽃이 많다고 행복한 얼굴로 놀이터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보검이는 나한테 자주 자동차 놀이를 하자고 했다. 보이지 않는 자동차를 가지고 시합을 하는 놀이다. 처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이해가 안 갔지만, 곧 나는 보검이와 침을 튀기며 손가락 레이싱을 했다. 보검이가 자꾸 내 자동차를 부수려고 해서, 나는 막 책상 위를 도망 다녔다. 보검이가 공부하다가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 화이트보드에 막 그림을 그리면, 나는 보검이에게 무엇을 그린 건지 물어봤고, 그럼 보검이는 신나서 그림에 대한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영어 교재에서는 보검이가 하고 싶은 것을 직접 골랐는데, 한 번은 교재에 나오는 몸통, 꼬리, 다리 모양을 합쳐서 우리만의 괴물을 그렸다. 서로가 그린 괴물의 모습을 보고 보검이도, 나도 배를 잡고 웃던 게 생각난다.



만약 내가 영어를 가르쳐주기보다 수지, 보검이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더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수지, 보검이가 왜 영어를 싫어하는지 이해하고, 싫어하는 마음에 영어를 밀어 넣기보다 아이들이 영어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기다렸다면 어땠을까? 수지, 보검이가 좋아하는 놀이와 게임을 통해서 영어가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아이들이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느끼고 말할 때, 그때 수업을 시작했다면 수지와 보검이는 더 즐겁고 행복하게 영어를 배우지 않았을까? 영어가 재미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기억하고, 평생 영어에 대한 애정을 갖고 스스로 배워가기를 지속하지 않았을까? 


이해가 안 되는 작은 글자를 빤히 바라보고, 선생님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어야 하는 지루한 수업보다, 밖에서 뛰어노는 시간, 관찰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는 시간, 놀이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시간을 더 많이 보냈다면 어땠을까? 수지와 보검이는 영어뿐만 아니라 자신감, 창의력, 사고력, 의사소통 능력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 훈련하며 삶에 필요한 기술들을 폭넓게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자리를 빌려 한 없이 부족한 티쳐였던 나를 1년 간 인내해준 수지와 보검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 (공부를 하기 싫어하던 건 너희 책임이 아니라,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돕지 못한 나의 책임이었단다…) 그리고 이런 나를 믿어주셔서 수지와 보검이 수업에 함께 힘써주시고, 당시 투잡을 뛰던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학생들을 소개해주신 학부모님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제 나는 대학생 과외 선생님이 아닌, 교육자로서 교육 철학과 교육 방법을 연구하고, 고민한다. 나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사람, 그리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배움의 즐거움을 알려주는 교육자가 되고 싶다. 그래서 아이들이 인생 전반에 걸쳐 스스로, 즐겁고 행복하게, 배움을 추구하게 된다면 좋겠다. 좋은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싶다. 아이들이 자신의 가능성을 충만히 발휘할 수 있도록, 그래서 새로운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Empower people through education in the age of AI’ 

내가 교육 사업을 시작한 이유와 목적이자, 나의 비전이다.


보검이와 내가 그린 괴물 그림



작가의 이전글 작가 소개 (1) -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교육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