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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티처 Jun 08. 2021

교실생보(敎室生譜)(feat '자산어보')

낭만티처의잡생각

"물고기를 알아야 물고기를 잡응께요. 

홍어 댕기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 댕기는 길은 가오리가 앙께요."

영화 <자산어보>  중에서 


영화 <자산어보>에서 정약전이 “어떻게 그렇게 물고기에 대해서 잘 아냐”라고 물었을 때 창대가 답한 말이다. 영화 <자산어보>는 책 『자산어보』 서문을 바탕으로 한 창작물이다. 흑산도에 유배를 온 정약전이 창대와 서로 가르치고 배우면서 자산어보를 완성하게 되는 과정이 수묵화 같은 자연의 풍경 속에서 때론 잔잔하게, 때론 밀려드는 밀물과 썰물같이 펼쳐진다.


출처: 네이버 영화 <자산어보> 스틸 이미지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교사로서 나는 무엇을 알아야 할까?


초임 시절에는 잘 가르치는 법을 알고 싶었고 수학에 관심 없는 학생들을 집중시키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었고 학급 운영을 잘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그와 더불어 기독교적으로 수학을 가르치는 방법을 알고 싶었고 교실에서 복음 전파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싶었고 비기독 교사와 기독교사가 어떤 차별성을 가져야 할지 알고 싶었다.


전국을 다니며 연수를 듣고 대학원에서 기독교 교육과정을 배웠고 급기야는 공립을 그만두고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근무도 했지만 내 마음은 늘 부족하고 모른다는 생각에 허덕이며 자신감이 없었다. 그 허기는 어디로부터 왔을까?



교육경력 20년, 두 개의 능선을 넘어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교실에서 내가 알아야 할 것은 아이들이라는 것을. 수업 시간에 딴짓하는 아이들과 과제를 안 하는 아이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을 때 내 마음은 편해졌다. 학생과 1 대 1로 점심을 먹고 같이 교정을 거닐고 상담이 아닌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그 아이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게 되고 아이의 속도에 맞춰 기다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수학을 통해 성실함과 자신감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지만 아이들은 나에게 자신들의 창의력과 잠재 능력과 가능성을 알게 해 주었다. 교육은 그렇게 생생한 만남이어야 한다는 것을 희미하게나마 느끼게 해 주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자산어보> 스틸 이미지

 


"형이 아우보다 낫구나. 

너희 형제가 사학을 믿는 것은 뭐라 하지 않으나 

그 일로 인해 다른 관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조심하라. 

관리에게 중요한 것은 버티기다."


영화에서 정조가 정약전에게 한 말이다. 신유박해 때 막내 정약종은 순교를 하고 정약용과 정약전은 강진과 흑산도로 유배를 떠나게 된다. 두 사람이 유배지에서 버티는 방법은 달랐다. 정약용은 수십 권의 책을 집필하면서 백성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책을 저술해서 지금까지도 유명한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지만 정약전은 <자산어보> 외에는 잘 알려진 것이 없어 나는 정약용의 형 정도로만 알고 있는 상태였다. 영화에서 창대가 정약전에게 <자산어보> 한 권에만 매달리고 있는 이유를 묻자 ‘"장자 위에 부처가 있고 부처 위에 왼쪽 뺨을 때리면 오른쪽 뺨을 내밀라고 한 분이 있다. 어느 누구도 용서를 그렇게 표현한 사람이 없다."라고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세상은 “양반도 상놈도 없고 임금도 필요 없는 그런 세상이다."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정약용과 자신의 삶은 다를 수밖에 없다고. 영화 속의 정약전과 정약용은 그렇게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 제자의 삶을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자산어보> 스틸 이미지


예전에는 기독교사라면 수업도 기독교적으로 재구성하고 학급 운영도 달리해야 하고 제자 양육도 해야 하고 교회도 잘 섬겨야 하고 기독교사 단체 활동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어떤 활동을 해야만 기독교사의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일과 책임에 지쳐가면서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을 버티는 것이 힘들어졌다. 결국 내가 하고자 하는, 아니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게 되었다.


이제 나에게 무언가를 더 열심히 할 열정도 교육에 대한 희망도 없다고 생각했을 때 후배 교사로부터 의외의 피드백을 들었다.


"선생님 수업을 보니 감성, 사고, 모순의 키워드가 떠올랐어요. 아이들이 수업에서 실수하고 추측하고 답을 찾아가면서 재미를 느끼며 몰입하고 있었어요. 뭔가 아이들이 인위적으로 해야만 하는 모습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친구에게 편하게 물어보고 자연스럽게 서로 답해주는 모습이 협력이 되고 배움이 되는 그런 모습을 보았어요. 선생님도 뭔가를 조작하시거나 하지 않고 그 안에 자연스럽게 들어가 계셨어요. 선생님은 아이들을 고민하게 하는 교사. 쉽게 답을 주지 않는 교사. 끝까지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게 만드는 교사였어요."


그 피드백을 듣고 잠시나마 내가 꿈꿔오던 기독교적인 수업을 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동안 고민하고 공부했던 모든 것들이 ”이렇게 해야만 한다 “라는 틀을 벗어났을 때 자연스럽게 내 안에서 흘러나왔고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수업에서 자신의 수준에서 편안하게 수업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자산어보> 스틸 이미지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 


"질문이 공부야. 질문하지 않고 받아 외우는 공부만 해서 성리학이 그 모양이 된 거야."


영화에서 정약전과 창대가 서로 배우고 질문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이런 대사들은 무엇이 배움인지, 왜 배워야 하는지,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 어디로 배움이 향해야 할지를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창대는 출세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따라 육지로 나가 벼슬길에 오른다. 관리들이 백성들을 착취하는 현장을 목도하면서 창대는 스승인 정약전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닫고 절망하며 다시 흑산도로 돌아온다. 

“배운 대로 못 살믄 생긴 대로 살아야 지라."라고 하면서.


출처: 네이버 영화 <자산어보> 스틸 이미지


독야청청을 상징하듯 하얀 도포를 입은 창대의 모습을 보면서 학생들이 배운 대로 현실에서 살아보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경험할 때 자신의 지식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알게 되며 그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실패를 통해 나다움을 발견하게 되고 성경 말씀이 머리가 아닌 내 마음과 몸속에 생생한 근육이 되어 살아 숨 쉬는 경험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모든 열정과 이상이 산산이 부서지고 깨어졌을 때 바로 내 연약한 모습 그대로 나답게 살아가는 길이 열린다.



영화의 엔딩 크래딧이 올라갈 때 단순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 단순함이 나를 그 자리에 얼어붙게 만들었다. 흑백과 여백의 단순함처럼 인생은 화려하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삶을 자기답게 살아가는 이에게 깊은 맛과 멋이 있다는 여운을 남기는 듯했다. 어쩌면 교사가 할 일은 학생들의 지금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들이 생긴 대로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지켜보며 교실생보(敎室生譜)를 기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창대와 같은 제자와 함께 흑산도로 떠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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