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의 일생
안방 자동커튼이 알람처럼 열렸는데도 제나는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오늘 하루 운동은 건너뛸까? 하고 생각했다.
그 생각과 동시에 늦었구나 하며 몸을 일으켜 서둘러 나갈 준비를 했다.
방을 나와 무심코 바라본 거실 창밖의 풍경을 보고 제나는 입이 쫙 벌어졌다.
밤 사이 하얗게 눈덮인 풍경을 더 만끽하고 싶어서 거실창문을 열었다. 오랜만이다. 바깥공기가 집으로 들어온 것이. 나무가지 사이로 새들이 날아다는 모습이 신기해 자동반사적으로 제나는 사진을 찍었다.
정말 멋진 날이군.. 새롭게 겨울이 시작되는 기분이야..
눈을 처음 본 어린아이같이 신나하는 자신을 모습을 보며 제나는 기분이 또 좋아졌다.
제나가 생각하는 자신의 어린시절에는 오늘과 같은 천진난만함이 없었다.
어릴때도 늘 어른스러웠다.. 고 제나는 생각했다.
어릴 적 제나는 집에서 자기 속내를 드러낸 적이 별로 없다.
몇 장면 정도는 언니들과 놀았던 기억도 있지만
부모님도 언니들도 동생들도 제나는 다 맘에 들지 않았고
심리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가족들과 분리되어 홀로인 때가 많았다.
맘에 들지 않는 모습이 있어도 그냥 속으로 생각할 뿐
그들과 다른 부류의 사람처럼 스스로 거리를 두며 살았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부모님의 행동에 대한 불만, 언니들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 동생들을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는 마음.
그 모든 감정들을 그냥 온몸으로 숨기고 제 할 일만 묵묵히 열심히 하는 아이. 그게 제나의 모습이었다.
그게 분노였을까, 두려움이었을까.
가족들은 아무도 제나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친구를 사귀기 시작할 무렵, 아마도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인듯하다.
제나는 온 마음을 친구에게 쏟았다. 마치 가족과 단절된 것에 대한 보상심리처럼.
친구 집에 가면 단란하고 화목한 친구 집이 부러웠다.
제나는 친구들의 부모님께 친구보다 더 신뢰받는 아이였다.
제나는 자신보다 친구를 더 사랑했는데 늘 원하는만큼 돌려받지 못했다.
아버지를 대신해 의존할 사람으로 선생님을 찾았고
사랑을 받기 위한 대상으로 친구를 찾았다.
선생님들에게 인정받고자 열심히 공부했고
친구의 우정을 얻기위해 친구에게 시간과 마음을 쏟았지만
진정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해 열심인지는 몰랐다.
그로 인해 제나가 얻은 것은
선생님의 기대를 채우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과
자신이 원하는 만큼 우정을 나눌 친구는 세상에 없다는 실망감
그런 제나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없다는 절망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나가 자신의 삶을 지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본능적인 성실함이 그 모든 슬픔을 침묵으로 덮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루종일 내릴 것 같은 눈이 어느 새 그쳤다.
펄펄 쏟아지는 눈을 봤을 때, 온몸으로 신나하는 어른이 되는 것.
어릴 적 꿈꾸었던 어른의 모습을 떠올리며 제나는 거실창밖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