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티처의 잡생각
최근 ‘죽음’을 주제로 2박 3일 리트릿을 진행하고 <‘상처 입은 아버지와 아들’의 회복에 대한 자문화기술지>(김명찬, 교육인류학연구, 2015)를 읽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극장에서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를 보았다. 프리랜서로 살다 보니 그냥 주어지고 다가오는 것들로 하루가 채워지는 데 의도 없이 선택한 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신비롭기만 하다. 마치 삶이 나에게 무슨 말을 건네는 듯한 느낌이 든다.
’죽음’을 주제로 리트릿을 준비할 때 참여자들이 죽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세션이 진행될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짐작이 잘 안되어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었다. 사람마다 죽음에 대한 생각과 준비가 다르기에 어느 선에서 리딩과 질문을 다루어야 할지 막막했다. 다행인 것은 공동 진행이었기 때문에 그 기준을 어렵지 않게 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계절이 너무 좋았던 탓일까. 10개월의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한 동료들의 신뢰 때문이었을까, 조금은 염려했던 리트릿이 모두에게 충만한 선물로 마무리가 되었다. 해 질 녘 하루살이들의 군무를 마당에 나와 보면서 알 수 없는 울컥함에 감동했고 서클 닫기때 서로를 껴안고 인사하며 죽음을 준비하며 걸어가는 삶의 여정을 서로 축복하며 깊은 존재로 연결되었다.
<‘상처 입은 아버지와 아들’의 회복에 대한 자문화기술지>는 아버지와 갈등을 빚고 살았던 아들이 아버지의 삶과 자기 삶의 이야기를 통해 서로 회복해가는 모습을 그린(?) 질적 연구 논문이다. 연구자는 상담자로서 생존해 있는 아버지와의 힘들었던 관계를 실제적으로 풀어가는 과정을 기술했는데 한편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었다. 이런 논문이 가능했던 이유는 연구자 스스로가 끊임없이 자기 분석을 하고 그 자료를 여러 곳에 기록해놓았기 때문이었다.
연구자는 아버지와 주 1회 이상의 전화 통화와 문자 메시지의 내용도 논문에 기록했다. 연구자는 이 논문을 작성하면서 자신이 박사가 되어간다는 사실보다 아버지와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 더 기쁘다고 했다. 표면적으로 괜찮아 보이는 쇼윈도 가족이 아니라, 죽도록 싸우면서도 풀어나가는 견딤을 아는 가족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전쟁의 외상으로 인해 자살한 할아버지를 목격한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면서 아버지가 ‘나쁜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픈 아버지’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서 함께 치유의 여정으로 나아가게 된다. 논문을 읽으면서 연구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름다움으로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그 일이 존재를 사랑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되었다는 울림을 주었다. 이런 것이 질적 연구가 주는 힘이 아닐까 싶다.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는 1971년부터 물방울만을 그린 세계적인 화가 김창열 화백의 삶을 사진작가인 그의 둘째 아들이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다. ‘상처 입은 아버지와 아들’의 회복에 대한 자문화기술지를 영화로 보는듯한 느낌이었다. 감독이 사진작가여서인지 화면과 앵글 하나하나가 예술이었고 음악과 나레이션도 예술이었다. 나중에 뉴스에 나온 김오안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누군가 아버지의 영화를 만들지도 모르는데 그렇다면 그것을 내가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산타클로스보다 스핑크스를 더 닮았다고 생각한 아버지, 자라면서 가장 힘든 것은 아버지의 침묵, 자신이 진지하지 않고 산만하다며 뭐라고 하신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또한 늙고 고집 센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영화를 만든다면 첫 장면은 무엇일지, 인생에서 힘든 순간들은 언제였는지, 아버지 인생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무엇인지, 마지막 장면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그 답을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5년여에 걸쳐 찍은 영화를 김창열 화백은 보지 못하고 작년에 돌아가셨다. 그 시간 동안 감독은 아버지 김창열 화가의 삶을 이해하면서 조금 더 아버지와 가까워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감동적으로 다가왔던 것은 한 개인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서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겪은 대한민국의 역사와 그 시대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침묵과 균열 속에 전쟁의 트라우마와 살아남은 자의 고통이 자리하고 있음을 이해하면서 감독은 아버지와 동질감을 느끼며 아버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감독은 아버지가 자신에게 전달한 것 중에 꼭 하나만 간직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침묵이라고 말한다. 침묵은 말하지 않는 모든 것을 드러내기 때문이기에. 앞서 말한 ‘죽음’을 주제로 한 리트릿은 10개월 여정으로 진행되었는데 1회의 주제가 ‘침묵’이었다. 그런데 영화도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의 죽음과 침묵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2주일에 걸쳐 나에게 다가온 일상이 이렇게 연결되면서 많은 말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난주에 열렸던 ‘교사신뢰서클’에서 침묵이 그냥 비어있는 시간이 아니라 자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는 소감이 기억난다.
생활패턴을 바꾸어 아침 운동을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어간다. 덕분에 침묵 속에서 혼자 아침 산책을 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매일 새로운 색을 펼치는 하늘과 그 속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하늘, 하루하루 다른 빛깔로 물들어가는 잎사귀와 떨어지는 낙엽과 쇠락해져 가는 계절과 떨어지는 온도를 느끼며 이런저런 잡생각이 오간다. 계절은 순환하면서 죽음과 삶을 되풀이하고 있다. 그 속에서 모든 것이 소중하고 아름다우며 존재만으로 충분하다고 말해준다. 침묵 속에서 살고 고요하게 부활한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살면서 소소한 상처를 입기도 하고 예기치 않은 사고로 큰 트라우마를 겪기도 한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면서 시대마다 죽음의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죽음이 언제 다가올지 알지 못하지만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 그 여정에서 누군가는 지금의 자신을 더 깊게 들여다보고 싶어서 리트릿에 참여하고, 누군가는 연구를 통해 아버지의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삶을 회복해 나가기도 하고, 누군가는 세계적인 화가 삶의 이면에 담긴 고통을 영화로 담아내며 아버지의 삶과 그 시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기린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새해가 부활했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삶은 다양하게 여러 가지 소소하고 중요한 일들과 사람들을 통해 나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그 말들을 다양하게 해석하며 잘 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겉으로 괜찮은 것 같아도 나에게 남아져 있는 트라우마와 상처들을 스스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삶은 더 거세게 나에게 말을 걸어올지 모른다. 침묵 속에서 그 말들이 무엇을 드러내고 있는지 들어보고 침묵에 기대어 쉬기도 하면서 내가 가야할 길을 묵묵히 걸어갈 힘을 얻는 날들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내 존재가 침묵해야 하는 순간이 되었을 때 너무 늦은 후회와 인사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
갈수록 쌀쌀해지는 바람을 느끼며 매일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고 기도를 보낸다.
사랑한다고.
용서한다고,
용서해달라고.
미안하다고.
감사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