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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Jan 22. 2021

화산 폭발하는 밤

눈 앞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니



과테말라 아카테낭고 화산 




이처럼 신비롭고 웅장한 장면은 다시 없으리라.
해발 4000m 부근 텐트 옆에 모닥불을 피우고 앉아 화산 폭발을 구경했다. 거리가 워낙 가까운 터라 그 모습이 어찌나 생생하고 비현실 적인지, 스크린이 가장 큰 영화관에서 관람하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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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화산 내부는 로또 추첨 통처럼 생겼을 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는 직경 수 미터는 되는 거대한 돌덩어리들이 한꺼번에 굴러다니는 듯한 그 소리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한동안 돌 끓는 그 소리가 계속되다 폭발하는 순간에는 지진과 천둥소리가 뒤섞인 굉음을 낸다. 각종 화산 쇄설물들이 로켓처럼 튀어 오르고, 곧 검은 구름이 재앙처럼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는 끈적거리고 새빨간 마그마가 과음을 한 것 마냥 울컥울컥 게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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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으나 살을 에는 추위와 희박한 산소가 텐트 속으로 밀어 넣었다. 결국 나는 다섯 겹이나 옷을 껴입고 두꺼운 침낭 속으로 들어갔고, 얼어붙어가는 두 손을 옆구리 깊이 찔러 넣은 채 미라처럼 굳어 버렸다. 조금의 미동도 없었지만 고산병 증세가 심해지면서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그저 얼른 잠들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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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의미로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의식이 희미해지며 고통이 옅어질 때마다 무지막지한 폭발음이 다시 나를 악몽 같은 현실 속으로 되돌려 놓았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 다시 자다 깼다. 1인용 텐트의 공포스러운 좁은 공간이 점점 나를 조여왔다. 비닐랩으로 얼굴을 칭칭 감아맨 다음 구멍 하나만 뚫어놓은 것처럼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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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쯤 혼이 나간 채로 별별 생각을 다했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한 짧은 인생이 여기서 막을 내리나. 이렇게 끝나기는 너무 아쉬울 것 같은데. 오백 가지 멋진 말을 남겨두었다는 어느 노랫말처럼, 나도 언젠가 만날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멋진 장소를 많이도 찾아 놓았는데. 그러고 보니 가족들이랑 친구들에게는 화산에 간다고 말도 못 하고 나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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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역시 생명은 질기더라. 어느새 밝아 오려는 조짐이 보이는 이른 새벽, 정신이 돌아온 나는 카메라와 삼각대만 등에 맨 채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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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º사진 : 박성호

지은 책 : [바나나 그 다음,] [은둔형 여행인간]

공식홈페이지 : www.antsungho.com

인스타그램 : @ant.s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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