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잃었다. 아니, 사실 잃은 것은 아니다.
벌 수 있었던 돈을 벌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마치 내 돈을 뺏긴 것 마냥, 자려고 누운 침대에서 한동안 마음이 뒤숭숭했다. 한 번도 내 돈이었던 것이 아닌데 그걸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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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였다. 서울의 한 관공서에서 일하는 아는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형, 다른 게 아니라, 일할 수 있는지 물어보려고요.”
“…아, 정말 고마운데, 내가 올해는 책 읽고 책 쓰는 데에만 집중하려고!”
“1년 계약에 매달 xxx만원이에요.”
“…”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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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해 생일(1월 4일)이 찾아올 때마다 새로운 다짐을 하곤 하는데, 올해도 당연히 거창한 다짐이 있었다. 최대한 일을 줄이고 공부와 내 작업에 시간을 쏟자는 것.
단기적으로 하는 일이야 부담 없이 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 물리적인 시간과 정신적인 부담을 보기보다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물론 그것은 내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그것이 내 머릿속 많은 공간을 차지하게끔 부추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동생의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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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은지 겨우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런 식으로 넘긴 일이 다섯 개나 된다. 서글프지만 책에만 집중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좋은 제안들이 쏟아진다. 누구나 알 법한 잡지사의 일도 있었고, 나를 알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인 공중파 방송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좌절할 만큼 아쉽지는 않다. 건방진 말 같기도 하지만, 나는 많이 알려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감은 전혀 없으므로. 오히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준비되어있지 않거나 보여줄 게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충분히 준비될 때까지 쉽게 기회를 소모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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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올해는 무척이나 중요한 일년이 될 것 같다. 여행을 마친 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탓이다. 이제 곧 한국에 귀국한 날로부터 딱 1년이 된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많은 기억을 잃었다. 내게 있어 여행의 경험은 이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큰 재산이므로, 앞으로 더 사라지기 전에 최대한 기록으로 남기고, 다듬고 정제해서 각각의 조각상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는 굳이 인생을 즐기며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행히 작년에 일하면서 딱 1년 정도의 생활비와 작업실 임대료만큼은 모아 놓았으므로, 감사하게도 내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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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내 신념과 이상은 이렇다. 그래서 아는 동생의 제안도 거절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언제나 바람처럼 되나? 이번엔, ‘아무렴 어때, 지금은 책이 더 중요한걸.’하며 가볍게 넘기기 어려웠다. 아는 동생의 부탁이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저, 액수가 너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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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 말하기엔 건방지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무려 수십 개월 치 임대료를 낼 수 있는 금액이다. 무료로 집에 살게 해주시는 부모님께는 차마 얼마였는 지 이실직고하기도 어렵다. 나는 바보인가, 아니면 철부지처럼 현실 감각이 뒤떨어지는 것인가, 하고 스스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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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7일 일요일, 곧 눈 올 예정.
오늘을 출근하면서 도시락을 깜빡했다.
만약 내가 그 일을 하게 됐으면, 최소한 수제 버거나 연어 초밥을 배달해 먹었으려나?
하지만 이제 미련을 버려야지 뭐... 그래도 요새는 GS 편의점 도시락이 괜찮더군요… 궁시렁 궁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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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º사진 : 박성호
지은 책 : [바나나 그 다음,] [은둔형 여행인간]
공식홈페이지 : www.antsungho.com
인스타그램 : @ant.s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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