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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Jan 22. 2021

수십 개월 치 작업실 임대료



사진 - 에티오피아의 소금 캐는 인부들




돈을 잃었다. 아니, 사실 잃은 것은 아니다.


벌 수 있었던 돈을 벌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마치 내 돈을 뺏긴 것 마냥, 자려고 누운 침대에서 한동안 마음이 뒤숭숭했다. 한 번도 내 돈이었던 것이 아닌데 그걸 알면서도.



엊그제였다. 서울의 한 관공서에서 일하는 아는 동생에게 연락이 왔다.



“형, 다른 게 아니라, 일할 수 있는지 물어보려고요.”


“…아, 정말 고마운데, 내가 올해는 책 읽고 책 쓰는 데에만 집중하려고!”


“1년 계약에 매달 xxx만원이에요.”


“…”


“형?”



나는 매해 생일(1월 4일)이 찾아올 때마다 새로운 다짐을 하곤 하는데, 올해도 당연히 거창한 다짐이 있었다. 최대한 일을 줄이고 공부와 내 작업에 시간을 쏟자는 것.


단기적으로 하는 일이야 부담 없이 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 물리적인 시간과 정신적인 부담을 보기보다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물론 그것은 내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그것이 내 머릿속 많은 공간을 차지하게끔 부추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동생의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새해가 밝은지 겨우 2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이런 식으로 넘긴 일이 다섯 개나 된다. 서글프지만 책에만 집중하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좋은 제안들이 쏟아진다. 누구나 알 법한 잡지사의 일도 있었고, 나를 알리기에 가장 좋은 방법인 공중파 방송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좌절할 만큼 아쉽지는 않다. 건방진 말 같기도 하지만, 나는 많이 알려지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감은 전혀 없으므로. 오히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게 되었을 때, 내가 준비되어있지 않거나 보여줄 게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충분히 준비될 때까지 쉽게 기회를 소모하고 싶지 않다.



그런 면에서 올해는 무척이나 중요한 일년이 될 것 같다. 여행을 마친 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탓이다. 이제 곧 한국에 귀국한 날로부터 딱 1년이 된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많은 기억을 잃었다. 내게 있어 여행의 경험은 이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가장 큰 재산이므로, 앞으로 더 사라지기 전에 최대한 기록으로 남기고, 다듬고 정제해서 각각의 조각상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는 굳이 인생을 즐기며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다행히 작년에 일하면서 딱 1년 정도의 생활비와 작업실 임대료만큼은 모아 놓았으므로, 감사하게도 내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듯하다.



일단 내 신념과 이상은 이렇다. 그래서 아는 동생의 제안도 거절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언제나 바람처럼 되나? 이번엔, ‘아무렴 어때, 지금은 책이 더 중요한걸.’하며 가볍게 넘기기 어려웠다. 아는 동생의 부탁이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저, 액수가 너무 컸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 말하기엔 건방지다.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무려 수십 개월 치 임대료를 낼 수 있는 금액이다. 무료로 집에 살게 해주시는 부모님께는 차마 얼마였는 지 이실직고하기도 어렵다. 나는 바보인가, 아니면 철부지처럼 현실 감각이 뒤떨어지는 것인가, 하고 스스로 생각했다.



1월 17일 일요일, 곧 눈 올 예정.


오늘을 출근하면서 도시락을 깜빡했다.


만약 내가 그 일을 하게 됐으면, 최소한 수제 버거나 연어 초밥을 배달해 먹었으려나?


하지만 이제 미련을 버려야지 뭐... 그래도 요새는 GS 편의점 도시락이 괜찮더군요… 궁시렁 궁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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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º사진 : 박성호

지은 책 : [바나나 그 다음,] [은둔형 여행인간]

공식홈페이지 : www.antsungho.com

인스타그램 : @ant.s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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