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로우키
일하는 곳 건물 일 층에 새 카페가 들어왔다. 내게는 너무 익숙한 카페다.
언젠가 주변 사람들이, ‘너 작업실 성수라 그랬지? 로우키라는 카페 한 번 가봐. 거기 커피 진짜 맛있어.’ 하고 말했다.
한 번 들었을 때는 ‘글쎄…’, 두 번 들었을 때는 ‘그래…?’했다.
그리고 똑같은 말을 세 번이나 듣게 되었을 때는, 그제야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의의 제안을 세 번이나 뿌리치기에는 켕기는 마음이 들어서였을까. 뭐, 어차피 남아도는 게 시간이기도 했고.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지금까지 로우키에서 선물용 핸드드립 커피백을 열 개 가까이 샀다. 내가 마신 건 없고 친구들이 작업실에 놀러 올 때마다 선물했다. 제발 옷 좀 많이 사 입어라, 하는 말을 주기적으로 듣는 내게는 꽤 과소비였던 셈이다.
사실 나는 커피 맛을 잘 알지 못한다. 시다, 쓰다, 달다, 정도만 느끼고 나머지는 두루뭉술하게 뭉쳐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다. 로우키에서 커피를 마실 때도 ‘으음, 좋은 커피군.’ 정도만 생각했지 그 이상까지는 아니었다. 이건 분명 카페의 문제가 아니라 내 개인적인 문제다. 하지만 왜 그렇게 선물용 커피를 많이 샀느냐면, 프로의 영역에 초대된 느낌이 좋아서였다.
처음 로우키에서 핸드 드립 커피를 주문했을 때, 티는 내지 않고 속으로 놀랐다. 커피 한 잔을 내리는 과정이 무슨 과학 실험을 보고 있는 듯했다. 양자색역학의 쿼크이론만큼이나 복잡해 보였다. 솔직히, 내린 커피를 작은 잔에 따라 먼저 시음까지 해보시는 모습을 봤을 때는, ‘저렇게까지…?’라는 생각도 했다. 어쨌든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이다. 어떤 일이든, 진심으로 열정을 쏟는 모습을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사람은 참 멋있다.
시답잖은 얘기, 하나 더. 내게는 카페에서만 느낄 수 있는 우쭐함이 있다. 조금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마는.
나는 원래 카페를 찾을 때면 이따금(거의 항상) 티 낼 수 없는 뿌듯함을 느끼곤 한다. 대부분 카페에 적혀있는 커피 원두 원산지 표시 때문이다.
‘케냐, 탄자니아, 에티오피아, 르완다, 과테말라, 콜롬비아, 브라질, 인도네시아.’ 주로 이 사이에서 적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내가 뿌듯함을 느끼는 이유는 이 모든 나라에서 신선한 산지 커피를 마셔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카페에만 가면 유치하게도 직원에게 자랑하고 싶어진다.
‘저기, 실례지만…’
‘네?’
‘제가 여기 적혀 있는 나라들 전부 다녀왔습니다, 아하하.’
하는 대화를 하고 싶어진다. 진지하게 정말 그렇다.
다행히 아직은 실제로 그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하지만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마다 이런 대화를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지 않은 적도 없다.
물론 묻지도 않았는데 여행 많이 다녔다고 자랑하는 것만큼 상대방을 피곤하게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그저 혼자 커피를 홀짝이며, ‘아, 에티오피아 좋았지…’하고 중얼거리는 정도로 만족해야 할지도.
그래도 쓸쓸한 얘기만은 아니다. 나는 역시, 커피의 맛은 상상력이 반이라고 생각하니까.
사진1 / 콜롬비아 커피 농장.
사진2 / 농장의 커피 콩, 풋내가 난다.
사진3 / 식후마다 커피를 내려 주시던 에티오피아 시골 숙소 아주머니.
사진4 / 에티오피아 카페, 기계가 없고 바닥에 직접 불을 피운다.
사진5 / 케냐 마사이족 가정집에서 끓여 주신 커피.
사진6 / 카페 로우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