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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히 Nov 06. 2020

이준형 EP monologue

단단하게 뻗는 목소리 뒤에 소년 같은 여운이 뒤따라오는 싱어송라이터


우연히 들었던 이준형의 노래는 나중에 다시 들을지 말지 고민되는 애매한 노래였습니다. 제가 주로 듣는 사운드도 아니었기에 익숙함에 기대지도 못했고, 한국 인디밴드의 전형적인 문법을 충실히 따랐기에 신선함이 주는 희열도 덜했습니다. 그렇게 한 번 듣고 넘어간 후로 이준형의 노래는 제 뇌리에서 천천히 잊혔습니다.

날 좋은 정오에 카페테라스에서 김병윤 작가의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를 읽고 있었습니다. 랜덤 플레이리스트로 이것저것 듣고 있기도 했죠. 그때 이준형의 노래를 다시 만났던 것 같습니다. 만났다기보다는 마주쳤다는 게 맞겠죠. 처음 듣는 노래라고 생각했습니다. 본 적 없는 것에 대한 반가움처럼, 불편하지 않은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뮤지션 이름을 보니 이준형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엥? 무슨 가수 이름이 이렇게 싱거워. 어떻게든 사람 눈에 한 번 더 들려고 이쁘고 독특한 이름 찾아 헤매는 판에 이렇게 삼삼한 이름이라니, 욕심이 없는 사람인가? 싶었습니다. 잠자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는 탄탄하게 뻗어나가지만, 소년처럼 풋풋한 여운이 그 뒤에 따라왔습니다.

"빛나는 꽃이여 내게로 와주오. 내게로 와서 빛나주오."

수록곡 꽃밭의 가사입니다. 함축적이거나 시적인 가사는 아니었지만, 그 가사와 목소리가 왜 그리 단단하게 느껴지는지, 왜 그리 순수하고 진솔하게 느껴지는지 알 수 없고, 그때는 이유 없이 감정만 웅웅 울렸습니다.

잠시 책을 놓고 잠시 담배를 태우러 밖으로 나오고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제가 읽고 있던 소설의 등장인물과 이준형의 목소리, 기타 소리와 책의 여운이 한데 뒤섞여서 무언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김병윤의 소설에는 어떻게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캐릭터들이 나옵니다. 소설이 끝나는 시점에서 알게 된 것은, 진정한 행복을 위해 필요한 건 명예도 돈도 타인의 인정도 아닌, 진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주체적 용기뿐이라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가명을 쓰고 자신 숨며 살아가, 이젠 진짜 제 이름을 내걸고 세상에 나아가는 장면은 아직도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그 장면이 이준형의 노래와 기묘한 공명을 일으켰던 것 같습니다. 흔하디 흔한 이름을 내걸어도 상관없다는 듯, 그게 내 이름이니 괘념치 않는다는 듯,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 목소리와 기타 소리는 담담하게 앞으로 나아니다. 인터넷에 이준형을 쳐도 야구선수 이준형이 먼저 나오고, 가수 이준형을 쳐도 트로트 가수 이준형이 먼저 나오는 판에, 그의 노래와 목소리는 너무나 올곧게 뻗어나갑니다. 처음으로 제 이름을 걸고 세상에 맞선 소설 속 주인공이 겹쳐 보이는 게 다른 이유는 아니겠죠. 이름이 하든 말든, 진부하든 말든, 그냥 곡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기쁘게 웃으며 나아갈 뿐입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사람은 언제나 행복해지죠.

이름을 내걸고  음악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는 이 뮤지션에게, 내가 신선치 못하다고 느끼는 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그는 아마 앞으로 더 많은 더 깊은 더 넓고 더 아름답고 더 진솔한 음악을 할 것이니까요. 더 좋은 더 행복한 음악을 만들리라고 은연중에 확신합니다. 왜 그런지는 정확한 이유는 못 대겠습니다. 사람 마음이 그런 거 아닌가요. 딱히 이유도 없고, 명분도 없지만, 그냥 우연한 소설과 우연한 장면과 우연한 시간들이 우연히 부딪혀 처음 보는 장면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요. 사람 마음이 래요. 그렇게 누군가를 기대하고 누군가가 좋아지고 그런 거죠.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이준형의 음악이 멋있다고 느낍니다. 사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든 사람들이 모두 멋있습니다. 단지 그날의 우연한 마주침들이 이준형의 음악과 맞물렸을 뿐이겠죠. 좋은 음악을 들었습니다. 아니 좋은 음악이 저와 마주쳤습니다.

"내 알 수 없는 맘을 던지네."

EP 수록곡 첫 번째 트랙 '알 수 없는 맘'에 나오는 가사입니다. 이번 EP에서 제가 제일 애정이 가는 곡입니다. 알 수 없는 맘을 던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저무는 하루에 미련이 남는 야속한 낙조 보며 듣기 좋은 노래입니다. 이번 EP를 해지는 하늘을 앞에 두고 들으면 그만한 시간이 없을 것 같네요.

이번에 새로 나온 '태양'이라는 신곡도 있으니, 이준형 님에게 남은 시간을 응원하며 전곡을 다시 돌려봐야겠습니다.


본문에 적은 노래 두 곡의 링크를 달아둡니다. 좋은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꽃밭

https://youtu.be/1pp0N7F2m_E


알 수 없는 맘

https://youtu.be/C8OkuQvk6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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