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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심리사로 살아남기

이 업을 유지하며 내 가족을 지킬 수 있을까..?

by 두솔

상담심리사로 살아남기.



이 주제로 글을 쓰려니 어디서부터 글을 풀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 이유는 나에게 이 주제가 너무나 현실이고, 우리 삶의 실체는 어느 영역이나 그렇듯 복잡하기 때문이다. 단순하면 참 좋을 텐데. 포스팅을 켜고 20분째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을 거듭하다 이 문장으로 시작해 본다.



나는 상담심리사가 되기로 선택한 대한민국의 청년이다.



심리상담을 업으로 삼고 있는 선배 분들, 혹은 상담심리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은 이 문장 하나가 담고 있는 현실이 얼마나 많은 감내를 요구하는지 느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동시에 대한민국에서 가정을 꾸려 살고 있는 결혼 3년 차 새내기 부부이기도 하다.



이전 세대에 비해 집값과 물가가 말도 안 되게 폭등한 현시대 대한민국에서 청년으로 산다는 것, 그리고 2세를 소망하는 신혼부부라는 것만으로도 눈앞에 놓인 현실이 녹록지 않다. 그런데 상담심리사로 살고 싶다는 것은 직업적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업계에서, 그나마 버는 작은 수익마저도 전문성을 수련하는 데 고스란히 다시 투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의 고질적인 특징 중 하나가 있는데, 바로 세상에 이로운 것을 남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때는 사회적 기업의 형태를 띤 동아리를 창설했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매년 크리스마스에 공익 광고를 기부하는 회사를 선택했다. 기울어진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 만하게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매일 불타오르는 건 아니지만 내 삶의 중요한 순간들에는 결정적인 기준으로 작용해 왔던 것 같다.



새 살이 돋기 위해 삶의 고름을 짜내는 것 같았던 20대를 지나는 동안 심리 상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면서 이 도구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체감했다. 직장을 잘 다니던 20대 후반, 나의 고질적인 정의감이 불타 올랐는지 상담이라는 도구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망설임이 필요 없이 나는 상담심리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돌아보면 심리 상담은 마음이 아픈 사람만 받는 거라는 일반적인 편견이 나에겐 없었던 것 같다. 나로 태어나서 나로 잘 살아가기 위해 선택하는 정성스러운 방식이라고 여겼고,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상담심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석사 학위가 필요했다. 그 당시 나는 상담심리만을 배우는 특수 대학원의 존재를 몰랐기 때문에 교육대학원 안에 있는 상담심리 전공으로 석사를 진학하게 된다. 그때는 몰랐다. 상담심리사라는 직업을 지키기 위해 내 개인의 삶은 얼마나 궁상맞고 때로는 옹색하게 살아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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