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꿀벌 김화숙 Mar 24. 2024

그 사람 다시는 우리집에 못 오게 해

나는 침묵을 깨고 싶었다. 미친년처럼 말하고 싶었다.


# 3월 22일 올린 글이 실수로 영구삭제되어 재업로드합니다.       


제인 캠피온의 <피아노>를 나는 ‘인생 영화’로 소개하곤 한다. 1993년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과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당시엔 나는 모르고 살았다. 폴란드에서 두 아이를 연년생으로 낳고 기르며 영화와 거리가 멀게 사느라 그랬다. 하프타임은 좋은 책과 영화를 꾸러미로 내게 선물해 줬다. 어쩌다 이제야 보나 아쉬워하며, 이제라도 봐서 다행이라며 몇 번을 보았다.         


주인공 에이다 때문이었다. 여섯 살 때부터 말을 못하게 된 여자의 ‘선택적 침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영화가 에이다의 과거 사연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나는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무엇이 이 여자의 입을 막아버렸는지를. 딸 하나 데리고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러 바다 건너온 에이다. 피아노를 버리게 한 남편에게 결코 마음을 열지 않는 에이다. 결국 다른 남자에게 가는 에이다. 다 내 이야기 같았다.     


말 잘하는 내가 침묵 속에 살았다면 누가 믿을까. 그때부터 침묵은 나를 이해하는 새 언어가 되었다. 나는 미치도록 말하고 싶었다. 죽기 전에 이 가슴에 쌓인 것들을 풀어내고 싶었다. 나를 침묵하게 하는 것들에 나는 점점 눈을 떠가고 있었다. 남편이든, 하나님의 대리자든, 자식이든, 내 입을 막는 것들을 나도 에이다처럼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내 의견을 말하고 싶었다    

 

닥치는 대로 읽다 보니 페미니즘 책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었다. 여성신문은 책을 소개해 주기도 했지만 원고료를 책으로 주기도 했다. 그렇게 만난 책 중에 《아주 작은 차이》, 《착한 여자 컴플랙스》, 《한국에는 남자들만 산다》, 《여성과 광기》 등이 있었다. 나는 비밀 공부라도 하듯 페미니즘 책을 혼자 읽었다. 교회에서 믿음 없는 ‘미친년’으로 보일까 불안해서였다.     

 

덕이 여성신문을 썩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여성신문을 궁금해하거나 읽지는 않으면서 여성운동이나 페미니스트를 자주 비난했다. 나는 그의 눈 밖에 날까 조심하게 되었다. 그와 이런 주제로 언쟁할 자신도 없고 불화하게 될까 두려웠다. 함께 읽자고 그를 설득할 만큼 내가 확신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말을 삼키고 침묵하곤 했다. 대신 도서관이나 카페에서 혼자 페미니즘 책을 읽곤 했다.

    

《한국에는 남자들만 산다》를 쓴 고은광순은 군사독재와 맞서 데모하다 구속과 제적을 두 번이나 당한 후 한의사가 된 아줌마였다. 호주제의 폐해를 공론화하고 계속 여성의 삶을 변화시키려 글과 말로 싸우는 게 멋있게 보였다. 저자가 시어머니를 언급하는 문장에 ‘침묵’이란 단어가 나왔다. “시어머니는 모든 분노, 모든 욕망, 모든 슬픔, 모든 외로움을 그 침묵 속에 꽁꽁 끌어안아 담으셨다.” 내가 바로 그런 여자로 살고 있음을 보게 되었다. 남녀 사이, 부모자식 사이, 집단구성원 사이는 모두 평등하게 변해야 소통도 되고 사랑도 가능하다는 저자에게 나는 절절이 공감했다.


더 놀라운 건 저자의 남편을 언급하는 대목이었다.     

"치고 빠지지 못하고 치고, 치고, 또 친다고 눈을 흘기면서도 나를 항상 지지해 주는 나의 남편, 그리고 함께 사는 사람들과 행복해지지 위해 노력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드린다." (13-14쪽)


페미니스트 아내를 항상 지지해 주는 남편이라니, 나는 형광펜으로 진하게 밑줄을 쳤다. 저자가 참 부러웠다. 생각해 보니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덕은 결코 나를 전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가 과연 나를 항상 지지해 주는 날이 올까. 페미니즘도 같이 공부하며 공감하는 남편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그에게 내 의견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까?    

       

《여성과 광기》가 던지는 질문은 더 충격적이었다. 그 여자들은 정말 미쳤는가? 과연 누구의 입장에서 볼 때 미쳤는가? 만약 미쳤다면 왜 미쳤는가? 정상과 비정상을 판단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그들에 대한 정신과적인 치료는 어떻게 행해졌는가? 세상이 ‘미친년’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여자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건 묘한 감정이입이었다. 내가 누구 기준에 맞춰 침묵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나도 ‘미친년’이 될 수 있겠구나 예감했다.



시건방지게 그런 걸 묻냐고?      

    

내가 미친년 취급받는 날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우리가 폴란드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배경에는 C와 관련된 ‘사건’이 있었다. 90년대는 공산권 선교열풍 속에 국내 지부마다 경쟁적으로 선교사 파송을 하던 때였다. 우리를 파송한 지부의 담임이던 C는 중국을 자주 오갔는데, 중국에서 ‘성비위’가 불거졌다. C는 국내 담임직에서 해임되고, 지부는 풍비박산났다.


나는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단체를 떠난 후에도 이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소문만으로 다 알 수 없기도 했지만 누군가를 단죄하는 게 조심스러워서였다. 그 사건 직후에 중국에 머물던 C는 한국에 돌아왔고, 요한복음 8장의 여자처럼 종교권력 싸움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주장하며 단체에 나타났다. 그가 담임하던 시절에 함께 했던 ‘양들’을 만나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중엔 우리 가정도 있었다. 우리가 단체를 떠난 후에도 우리집에 왔고 여전히 ‘목자’로 우리를 대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C를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 그가 덕을 중국으로 초대해서 함께 여행하고 돌아왔을 때도 나는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그가 덕을 ‘말 잘 듣는’ 제자 취급하는 게 싫었다. 반대로 나를 보면 늘 조언을 아끼지 않는 게 갈수록 불편했다.      


“사모가 깨어 기도하고 섬겨야 교회가 서는 거야.”

“직장 다녀도 00사모는 양들을 아주 잘 돕더라.”  

“개척 교회가 성장하자면 사모 역할이 제일 중요해.”

“성공하는 목회자에겐 항상 헌신하는 사모가 있지.”  

   

어지간하면 침묵 속에 듣던 내가 변해가고 있었다. C가 다녀가고 나면 밤에 잠이 잘 안 왔다. 도대체 나는 왜 그가 불편할까? 혹시 내가 그를 도덕적으로 단죄하나? 자신을 검열하면서도 또 다른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 '도대체 여기서 뭘 얼마나 더 잘해야 저런 소리를 안 듣고 살 수 있을까.' 그랬다. 전에 해본 적 없는 질문이 올라오고 있었다.       


C가 안산에 와서 우리 부부와 함께 저녁을 먹은 날이었다. 나는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이들을 데리고 그와의 저녁식사 자리에 나갔다. 그날따라 진심으로 밥맛도 없었다. 그가 장황하게 하는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서 끝나고 집에 가고 싶은데 덕은 듣고만 있었다. 내가 끼어들어 질문했다.      


“죄송한데요. 95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저희가 폴란드에 뼈를 묻겠다며 파송됐잖아요. 그런데 저희를 불러들일 정도로 심각한 일이 뭐였어요? 직접 들은 게 아무것도 없어요. 소문만 가지고 판단하고 싶지 않아요. 목자님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어요.”


C가 당황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다시 한번 물었다.

“저희를 동역자로 생각한다면 간단하게라도 말씀해 주세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C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시건방지게 나한테 그런 걸 물어보는 거야? 그걸 질문이라고 해?”

그건 나를 딱 '미친년' 취급하는 표정이었고 태도였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말했다. 동역자로서 직접 듣고 싶었다고. 그러나 그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고 또 한 번 나를 시건방지다고 했다. 나는 입을 다물어 버렸고 마음을 닫았다. 더 이상 대화할 가치가 없었다. 식사 자리는 마무리되고 헤어졌다.      


그날 밤 나는 스스로에게 다시 물었다. 더 이상 도대체 뭘 얼마나 더 잘해야 해? 나는 더 이상 C를 견딜 수 없었다. 그의 목소리도 듣고 싶지 않았다. 진짜 시건방진 건 C였다. 내가 어떤 어려움을 헤쳐가고 있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 하나도 관심 없으면서 나한테 이래라저래라하다니.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그 밤에 덕에게 분명히 못 박았다.

“그 사람 다시는 우리집에 오지 못하게 해. 더는 아니야.”  

매거진의 이전글 51세 아줌마의 일기장 훔쳐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