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이 끝났다
가만히 있지 않을수록 내 몸과 마음이 점점 더 건강해졌다.
“스워오보 스타워오 솅 치아욈 Słowo stało się ciałem.”
내가 좋아하는 폴란드 속담이다. 우리말로 “말이 육신이 되었다”라 번역할 수 있다. 육신을 ‘몸’, ‘신체’ 또는 ‘전부’라고 읽어도 된다. “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 속담처럼 "말대로 됐다"는 뜻이다. 과거형 문장이니 이루어진 결과에 대해 긍정적 부정적 의미로 다 쓸 수 있다.
성경에도 이 속담과 토씨 하나 안 틀리는 문장이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한복음 1장 14절) 요한은 예수가 누구인지 소개하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중에 살았던 사람이라고 했다. (철학적 신학적 개념 ‘로고스Logos’와 ‘성육신成肉身Incarnation’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니다.) 예수가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진실을 이보다 더 멋지게 말할 방법을 나는 모르겠다.
말과 몸, 이건 내 평생의 화두였다. 내 말과 내 몸을 부정하고도 나란 사람을 말할 수 있을까? 나는 말하는 존재이자 몸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내 말과 내 몸을 알고자 먼 길을 돌아 돌아 얼마나 헤맸던가. 사람에게 상처주는 것도 말이었다. 나를 분노하게 하는 말도 있고 살리고 눈 뜨게 하는 말도 있었다. 내 몸을 숨 막히게 하는 관계도 보았다. 나는 가슴속에 쌓인 말을 하고 싶었다. 내겐 말이 곧 육신이었다.
2014년이야말로 내게 말이 육신이 된 해였다.
가만히 있으라?
힘든 일은 왜 한꺼번에 일어날까.
50대의 내 몸은 안 아픈 데가 없었다. 허리와 뒷목, 어깨며 팔이 아파 죽겠는데 병원은 원인도 치료 방법도 제시하지 못했다.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일하고 글 쓰며 무리해서 그런 줄 알았다. 할 말은 가슴에 쌓아두고 몸은 혹사하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출근하고 퇴근하고 피곤에 절어 또 일어나 일했다. 소화가 잘 안 되고 살도 빠졌지만 나는 몸의 신호를 알아듣지 못했다.
그 봄에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안산의 단원고 2학년 아이들 250명이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세월호와 함께 바다에 침몰했다. 그 아이들 또래인 우리 막내는 안산의 다른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믿기지 않았다. ‘전원 구조’ 오보를 철석같이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공포 영화를 피하듯 나는 세월호를 현실로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내 몸과 마음이 못 버티고 죽을 것처럼 힘들어서였다.
믿기지 않았다. 사고 소식이 들려온 그 아침만 해도
구조될 줄 알았다. 어디 먼 망망한 대양도 아니고
여기는 코앞의 우리 바다.
어리고 푸른 봄들이 눈앞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동안
생명을 보듬을 진심도 능력도 없는 자들이
사방에서 자동인형처럼 말한다.
가만히 있으라, 시키는 대로 하라, 지시를 기다리라.
-김선우, ‘이 봄의 이름을 잦지 못하고 있다’ 중
그 봄의 이름을 찾지 못한 채로 여름이 왔고 나는 간암 절제 수술을 받았다. 내 몸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그제야 들렸다. 나는 의사와 병원 대신 자연치유를 택했다. 뭘 알았다기 보단 살자니 내 몸을 따라야 했다. 차츰 내 눈이 뜨였다. 세월호는 돌발적인 교통사고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적폐가 한꺼번에 터진 사건이었다. 내 간암도 오래 눌려 살던 B형 간염 보유자 몸이 더는 못 견디겠다 아우성치는 폭발이었다.
세월호와 내 암의 가장 큰 공통 문제는 “가만히 있으라”였다. 아이들에겐 “가만히 있으라” 하고 선장과 선원들은 가장 먼저 탈출해 버렸다. 나는 어른이라 부끄러운데 세월호 아이들에게 감정이입했다. 의사가 내 질문을 묵살하고 가만히 있으라 했을 때 나는 분노했다. 더는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지시에 따르라”, “순종하라” 그런 말은 할 수도 견딜 수도 없었다. 그러면 암이 재발할 거라고 내 몸이 소리쳤기 때문이다.
2014년은 내 삶을 그 이전과 이후로 나누는 커다란 변곡점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진짜 죽을 거 같아 나는 목소리를 냈고 말하는 대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촛불 혁명에 매주 참여했다. 세월호를 더 이상 피하지 않고 기억 활동에 함께 했다. 안산의 여성 단체에서 토론하고 데모하고 공개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말하게 됐다. 가만히 있지 않을수록 내 몸과 마음이 점점 더 건강해졌다. 말은 내 몸이었다.
그후 어느 해 ‘미투’가 한창이던 3월 안산, 여성의 날 기념 집회에서 나는 이런 공개 발언을 했다.
미투(#Me_Too)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
-여러분, 가만히 있지 말고 욕을 하세요!
여러분, “여자는 남자를 돕는 배필”이란 말 들어보셨죠? 창조할 때부터 하나님이 남자를 도우라고 여자를 지으신 거야, 이게 여자의 정체성이야, 그러죠. 저는 결혼할 때 “남편을 사랑하고 잘 돕고 순종하겠습니다”라고 서약했어요. 목사 아내라고 “남편을 잘 동역하고 순종하겠습니다” 사모 선서란 것도 했어요. 이게 제 손발을 묶고 입에 재갈을 물릴 줄 몰랐어요.
목사 사모를 소위 ‘그림자’라고 해요. 한국에서 사실 현모양처들이 다 그렇게 살죠. 남편 목소리, 남편 체면, 남편 권위, 남편의 말을 대변할지언정 자기주장을 하면 어떻게 되죠? (청중, 욕먹어요!) 굉장히 부담되죠잉? 그렇게 살다 보니 자꾸 하고 싶은 말이 제 가슴에 쌓이는 거예요. 이 말하면 불순종일까? 이러면 신앙심이 부족한 여자? 남편의 사랑을 잃을까? 고민하느라 말을 삼키는 거죠. 어찌 됐을까요? 간암에 걸렸어요.
여러분 지금까지 여자가 하는 설교 얼마나 들어보셨나요? 미사 집전하는 여성 보셨나요? 여성 스님의 설법은 좀 들었어요? 없었죠? 그게 자연스럽다 여길 정도로 익숙하죠. 그런데 성경을 다시 연구해 보니까 그건 타락한 질서였어요. 남성이 권력을 독점하고 종교 경전을 가부장제와 짬뽕해서 여성을 지배하도록 만든 겁니다. 여성은 열등한 존재야. 여성은 남성을 따르는 게 본분이야. 이런 여성혐오가 창조주의 뜻이라고 퍼뜨리며 장난친 거라고요.
성서를 보는 신학도 그래요. 해방신학도 있고 다양한 민중신학도 있고 페미니즘 신학도 있어요. 가부장적인 종교 권력은 다른 관점을 다 이단시하고 목소리를 차단했어요. 제가 성서를 새롭게 살피고 목소리를 내니, 부부 싸움이 났을까요, 안 났을까요? (청중, 났어요!) 네, 엄청났죠. 제가 이혼하자고 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청중, 했어요~~) 했죠. 이렇게 살 거면 갈라서자 했죠. 잘못 배운 걸 따를 수 없다. 이런 하나님을 뭐가 좋다고 믿냐, 그랬죠.
그런데 남편이 안 헤어지겠대 글쎄! 왜 안 헤어져? 제가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목소리를 내는데, 그냥 버틸 수 있을까요? 그렇죠. 안 헤어질 거면, 내 말 들어! 어떻게 됐을까요? 내가 가만히 안 있으니 나 자신이 변했어요. 당당해졌어요. 내가 변하면 세상이 어떻게 보인다? 그냥 둘 수 없죠. 바꿔야 할 대상으로 보이죠. 가정, 내가 있는 곳, 종교계도 다 바꿔야 할 세상이었어요.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할 책임이 제게 있더라고요. 맞죠?
그런 목사 할 거면 때려치워! 이런 가부장적인 목사 때문에 한국 교회가 개독교 소리 듣는 거야. (청중, 맞아요~~~) 그렇죠? 자기 스스로 안 바뀌면 내가 바꿔야죠. 개독교 안 되고 싶으면 페미니즘 공부해!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다고요? (청중, 했어요!) 우리는 함께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토론하며 교회 문화를 바꿔가고 있어요. 교회에서 페미니즘 토론하는 즐거움을 아시나요? 네. 저 사모님 좀 이상한 거 아냐? 사모가 미쳤대. 그런 소리 당연히 들었죠. 그러나 이런 소리도 들었어요. 와! 속이 시원하네. 예수가 그런 분이구나.
사람을 해방하고 구원하는 게 예수 복음 아닌가요? 맞죠. 그런데 왜 지금까지 교회는 여자들만 숨죽이라고 하고 가만히 있으라 했죠? 그게 구원이고 해방인가요? 아니죠! 다 가부장제한테 속은 거예요, 여러분. 변화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어떻게 한다? 먼저 나를 바꿔야 해요. 가정을 바꾸고, 교회를 바꾸고. 못 바꾸겠으면 어떻게 한다? 욕하고 떠나! 욕을 해야 해요. 이게 아니야, 욕을 안 하니까 세상이 안 변해요. 그 속에 있으려면 바꿔야 해요, 여러분.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그의 형상으로 평등하게 창조했어요. 우린 가부장제에 속아 산 겁니다. 그러니 집에서든 교회에서든, 어디서든 말없이 설거지만 하지 말고 욕을 하세요. 이건 아냐! 예수 빽 믿고 하나님 빽 믿고 욕을 하고, 문화를 바꾸자고요! 오케이? (청중,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