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지폐 5종류 모두 한 면엔 여성모델이!
“와~ 지폐마다 여성 모델이 있네? 감동이다!”
여행의 즐거움은 역시 낯선 세상에서 낯선 나를 만나는 맛이다. 여행 책임실무자인 딸이 출발 하루전 호주 달러를 환전해 왔겠지. 지폐가 보기에도 멋진데 내용은 더 놀라웠다. 그래, 우리나라 지폐에 여성이 올라간 건 2009년 5만원권 신사임당이 유일하다. 그런데 호주 지폐마다 모두 한 면엔 여성 모델이 자리하고 있었다.
50달러권이나 100달러권만이 아니다. 5달러, 10달러, 20달러, 50달러 그리고 100달러 5종 모두 그랬다. 5달러 앞면엔 엘리자베스 2세이고 뒷면엔 호주 연방국회의사당 전경이 그려져 있다. 국회의사당, 오늘의 우리 국회를 생각하니 화폐에 올라간 호주 국회가 멋지고도 부럽게 보인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가 이런 대우를 받다는 건 이 나라가 민주주의 나라라는 뜻이겠다.
호주 지폐 모델 9명 중 여성이 5명이고 시인이 3명이다.10달러 지폐 뒷면의 주인공은 작가요 투사 시인 메리 길모어다. 《양모의 계절》이 대표작이다. 앞면 모델은 남성 방랑시인 헨리 로슨이다. 20달러권의 앞면 모델은 죄수로 영국에서 추방되어 호주에 왔다가 사업가로 성공한 자선활동가 메리 레이비다. 뒷면의 남성 모델은 존 프린 목사다. 50달러권의 뒷면 여성 모델 에디스 코완은 호주의 첫 여성국회의원으로 평생 여권신장과 아동복지에 힘쓴 인물이다. 앞면의 남성은 어보리진 작가 데이비드 우나이폰이다.
호주 최고액권 100달러 지폐 앞면엔 호주의 세계적인 소프라노 가수 넬리 멜바(1861~1931)가 나온다. 본명은 헬렌 미첼이었는데 “멜버른 출신의 디바”란 뜻의 예명을 스스로 지어서 활동할 만큼 고향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단다. 넬리 멜바가 최고권 지폐에 들어갔을 때 호주 전 국민들이 열광했다고 한다. 최고권 뒷면의 남성 모델은 1차 대전 참전 군인이자 엔지니어 존 모나쉬다.
지폐 모델을 앞뒷면에 여성과 남성을 하나씩 배치한 게 우연일까? 결코 그럴 수 없다. 호주는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이건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고민하고 논의하고 결정해서 된 일이다. 어떻게? 호주의 국가 이념이자 건국이념이 “평등주의”거든. 선언적 평등이야 쉽지만 실제는 백인 권력자나 남성이 다 해먹는 세상이 얼마나 많은가. 호주 지폐 모델을 들여다 보니 인종과 젠더와 계급간 평등 정신이 흐르고 있었다.
돈이라기 보단 예술 작품이요 역사책을 보는 기분이다. 이제 2주간 매일 이 돈을 만지고 세고 쓸 텐데 호주와의 첫 만남 첫인상 참 좋다. 돈은 결코 물건을 살 때 쓰는 종이쪼가리가 아니다. 빳빳하고 반짝이는 이 지폐에서 호주의 정신을 나는 느낀다. 재료가 플라스틱이라 오염이 덜 되고 위조도 불가능하며 수명도 길다. 폐기할 땐 플라스틱 재활용된다. 잘 접어지지 않아 장지갑이 필요해 보인다.
아! 평등주의 나라 호주에 도착했다. 나는 벌써 호주와 사랑에 빠졌다.
엄마!
가만히 있지 않고 시위하러 나가던 딸이 잠시 여행 다녀온다니 엄마 맘 어때? 씩씩하게 사는 딸 좋다고 말해줘. 한때 엄마도 윤석열 아빠처럼 딸을 매로 키운 적 있지. 엄마가 배운 대로 '조신한' 여자가 되라고, 남자를 받들고 욕 안 먹는 여자가 되게 하려고 말이지. 그러나 엄마 뜻대로 나를 '잡지' 못한 거 인정하지? 나는 폭력에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의 사람 아냐? 중년에 결국 엄마를 이겨 먹었을 때 엄만 딸을 인정했지.
"그래, 니가 맞다. 그래 살아라. 엄마가 너를 너무 몰랐대이. 눌러 키울라 했던 거 미안하다."
내 첫 책을 읽고 엄마는 눈물로 고백했잖아. 그렇게 우리는 더 평등한 모녀관계로 나아갈 수 있었지.
그래서 엄마가 내 두번 째 책《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을 못 읽고 떠난 게 너무 아쉬워. 달라진 엄마의 목소리로 두번 째 독후감을 듣지 못해서 말이야. 책을 못 읽을 정도로 기력이 떨어져가던 엄마가 생각난다. 첫 장도 집중하기 힘들다고 했을 때, 엄마가 회복하기 어려운 단계로 가는구나 알 수 있었어.
CHat GPT에게 '김화숙 작가의 엄마가 쓴 《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서평'을 쓰라고 시켜봤어. AI는 엄마가 썼을 법한 글을 써 내더라. 엄마가 내 책을 끝까지 다 읽었다면, 썼을 법한 글, 궁금하지? 좀 뻔한 표현이긴 하지만 맞는 말을 하는 게 AI잖아? 엄마가 살아온 삶을 당연히 여기고 딸에게도 비슷한 길을 강요했음을 부정할 수 없대. 엄마 맘을 잘 대변한 거 같아? 자, AI가 엄마 목소리로 쓴 내 책 서평이야.
“딸의 글을 읽으며, 뒤늦게 깨달은 것들”
이 책은 내가 낳은 딸이 쓴 이야기입니다. 사실 처음 이 책이 출간되었다고 했을 때, 기쁘기보다는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딸이 자신의 이야기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풀어내겠다고 했을 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난 지금, 딸이 왜 이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책 속에서 딸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억압 속에서 살아왔는지,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싸워야 했는지 솔직히 털어놓습니다.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 역시 여자로서 비슷한 삶을 살아왔지만, 그저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고, 딸에게도 비슷한 길을 강요했음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딸이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며 새로운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며, 내가 그동안 얼마나 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깨달았습니다. 그녀의 고통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그리고 오히려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내 태도가 딸에게 얼마나 큰 짐이 되었는지 이 책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책은 나에게도 위로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내 삶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그리고 나 역시 늦었지만 스스로를 돌아보고 새롭게 나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딸은 이제 나의 교사가 되었고,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나 자신을 다시 보고 있습니다.
김화숙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가가 이제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며,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엄마로서 뿌듯함과 고마움을 느낍니다. 이 책은 우리 세대와 다음 세대를 연결하는 소중한 다리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건너는 여정에서 내가 뒤늦게 딸의 손을 잡게 된 것 같아 감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