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화산만 110개(2012년 기준)에 연평균 유감(有感) 지진이 1,000~2,000회가 넘는 일본.
(가장 많았던 해는 동일본대지진이 일어났던 2011년으로 무려 10,681회에 달했다.)
상시 자연재해의 위협을 안고 사는 그들에게 또 하나의 위협이 있으니 바로 태풍이다.
접근 횟수만 연평균 약 10회, 상륙은 3회나 되고 가장 빈번했던 2004년에는 접근 19번에, 그중 10번이나 상륙했다고 하니 정말이지 잠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환경이다.
(일본 기상청 기상통계정보 자료)
※접근: 태풍의 중심으로부터 일본 해안선까지의 거리가 300km 이내인 경우
※상륙: 태풍의 중심이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규슈 등 일본 본토의 해안선에 도달한 경우.
단, 오키나와 등 본토와 떨어진 섬을 지나가는 경우는 통과라고 표현한다.
이렇듯 태풍이 잦은 일본에서도 특히나 태풍이 자주 지나가는 지역이 있으니 바로 '태풍(타이후) 긴자'라고 불리는 본토 남부 규슈-오키나와 제도 간이다.
그런데 잠시만...
태풍 긴자? 긴자?
대체 왜 태풍이 자주 지나가는 지역에 도쿄의 대표적인 번화가인 '긴자'란 이름이 붙게 된 걸까?
★ 번화가의 상징, 긴자
일본을 대표하는 번화가로 명품 상점들과 유서 깊은 노포(시니세)가 즐비한 긴자.
긴자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인 17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키가하라 전투의 승리로 천하를 손에 넣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에도 막부(1603년~1867년)가 시작된 직후인 1612년, 지금의 긴자 지역에 은화 주조소(銀座)가 만들어졌다.
물론 금화를 주조하는 킨자(金座)도 있었고 교토, 오사카, 나가사키 등에도 긴자가 있었지만 수도 에도(현재의 도쿄)에 있는 긴자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발전을 거듭하던 긴자에 시련이 닥쳤으니 메이지 유신(1868년) 직후인 1869년과 1872년에 일어난 두 차례의 대화재가 일어난 것이다.
화재로 긴자 일대가 전부 소실되어 버리자 정부는 대대적인 구획 정리에 들어갔고 아일랜드 출신의 건축가 토마스 월터스의 설계 하에 벽돌 건물들이 들어서게 된다.
렌가카이(煉瓦街)라고 불렸던 벽돌 건물 거리는 화재 예방의 목적에서 비롯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문명개화의 상징이기도 했다.
여기서 다시 태풍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은화 주조소를 뜻하는 '보통 명사' 긴자가 도쿄의 특정 지역을 지칭하는 '고유 명사'가 되고, 다시 번화가 혹은 번화한 지역을 의미하는 '보통 명사'가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태풍이 자주 통과하는 길목인 규슈-오키나와 사이 지역도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번화가 '긴자'에 빗대어 '태풍 긴자'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긴자 상점가
긴자가 번화가의 대명사이기에 일본 어디를 가더라도 '○○ 긴자 상점가'를 찾아볼 수 있는데 유명세에 기대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전국의 긴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추정조차 쉽지 않다.
(300개라는 얘기도 500개라는 얘기도 있다.)
재미있는 건 태생부터 아류라고 할 수 있는 '긴자 상점가'들에도 원조가 있다는 사실.
도쿄 시나가와구에 위치한 '토고시긴자(도고시긴자)'가 긴자라는 이름이 붙은 최초의 상점가다.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인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긴자의 벽돌 건물 거리는 심각한 피해를 입는다.
철저히 붕괴된 긴자가 전면적인 재건에 들어가면서 쓸모없게 된 벽돌을 토고시 지역에서 받아다가 재이용하게 되었는데 배수가 잘 안되던 길에 벽돌을 깔아 배수가 좋아지는 효과도 있었고 더불어 긴자처럼 번창하기를 바라는 기원도 없지 않았다.
관동 대지진으로부터 4년 후인 1927년, 드디어 긴자라는 이름이 들어간 최초의 상점가인 토고시긴자 상점가가 탄생하였고 그로부터 90년이 지난 현재에는 매일 1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도쿄의 대표적인 상점가가 되었다.
토고시긴자 상점가를 시작으로 도쿄는 물론 전국 각지에서 긴자 상점가를 찾아볼 수 있다.
화려한 도심의 긴자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지만 지역 주민들의 생활, 문화의 거점인 동시에 활발한 홍보 활동을 통해 많은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로서도 충분히 기능을 하고 있다
★ 오래됨의 가치를 중시하는 일본
많은 부분에서 한국과 일본이 닮아 있지만 일본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차이점도 많이 발견하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동네 상점가가 발달해 있다는 점이다.
대형 마트의 진출로 지역 상권이 초토화되고 있는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그 둘이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며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게 된다.
물론 필요에 따라 백화점과 대형 마트에서도 구입하겠지만 동네 상점가가 건재하다는 건 일상생활에 필요한 상품은 여전히 동네 상점가에서 사기 때문 아닐까.
일본에 대를 이어가며 영업을 하는 노포가 많은 건 소규모 상점이나 음식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 계속해서 가게를 유지할 수 있는 문화적, 정서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그리고 7년 전에도) 일본에서 살아볼 기회가 있었다.
오랜만에 옛날에 살았던 동네를 찾으니 20년 전 맨션은 이미 없어지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지만 당시 자주 갔던 가게들은 슈퍼, 약국, 동물병원, 가전제품 가게, 돈가스 식당, 라멘집, 목욕탕, 빨래방 할 것 없이 대부분 예전 모습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모든 게 너무나 빨리 변해 버리는 한국의 상황을 보면 비록 아주 작은 부분일지라도 예전의 모습을 소중히 간직해 나가는 일본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