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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경 Mar 10. 2019

설거지 없던 한 달, 손이 통통해졌다

십 년 만에 다시 만난 건조한 내 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시댁에서 한 달 넘게 생활하게 되었다. 또한 독특한 시댁의 사정으로 그 한 달간 밥을 차리지도 치우지도 않았다. 정말 독특하고 감사한 곳이다, 나의 시댁은. 친정보다 시댁을 더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밥을 차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인데, 이건 내게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밥 차리는 걸 정말 싫어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겠냐마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어둑해지는 저녁 시간, 밥을 차리느라 싱크대 앞에 서서 눈물을 흘린 적도 있다. 이유는 하나, 밥을 차리기 너무너무 싫다는 것. 피치 못할 어려운 사정으로 족발 세트 한 번 편히 시켜먹지 못하던 시절이었으니 주말도 없이 기계처럼 성실하게 밥을 차려내던 내가 그러던 중 단 하루, 끓어오르는 짜증을 다스리지 못하고 아이씨를 반복하며 눈물을 흘렸던 상황은 이해받고 싶다. 하지만 이 얘기를 하면 다들 피식피식 웃는다. 난 정말 밥을 하기 싫었다.


그런 내게 시댁살이는 천국이었다. 시부모님 두 분이 외출하신 틈을 타 욕실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 바가지로 물을 퍼부어대며 머리를 감는 불편함, 눈만 마주치면 들어야 하는 잔소리는 조금도 힘들지 않았다. 해가 뜨고 내 얼굴을 보면 굶어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배고프다고 사정을 하는 가족들을 위한 밥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는 건 어떤 불편함, 짜증, 성가심, 피곤함도 다 이겨낼 수 있는 특별한 에너지를 만들어냈다. 로또 당첨된 사람처럼 한 달 내내 싱글싱글 웃으며 살았다. 그렇게도 좋으냐고 묻길래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라고 답했고 진심이었다. 


기분만 좋아진 건 아니었다. '뭐 해 먹지'라는 고민이 사라졌고 쓰던 글을 마무리하거나 새로운 책을 기획하는 일에 좀 더 집중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한 달간 엄청나게 많은 밀린 일들과 게으름 부리던 원고들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는데, 이제껏 내 일상이 오늘 뭐해먹을까에 관한 고민과 식사 준비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쏟아왔었는지 단단히 실감했다. 시간을 좀 더 규모 있게 쓰게 되었고 - 새벽과 오후 시간, 쓰던 글을 부랴부랴 덮어놓고 쌀을 씻는 건 내 오래된 일상이다 - 그렇게 집중하여 써낸 글들은 이전보다 제법 읽을만했고, 새롭게 기획한 책들 몇 권이 동시에 계약에 이르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 몇 달간 구상만 했지 막상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던 일들 - 출판사를 등록하고, 공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인쇄소들을 찾아다니는 내 인생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일들을 다 해치웠던 SUPER MONTH 였다. 새벽 글쓰기는 몇 년째 이어오는 습관인데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면서 아침 반찬을 고민하거나 한참 쓰다 말고 훌쩍 지난 시간에 놀라 부리나케 쌀을 안치지 않아도 되니 새벽의 두세 시간이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내가 선물 받은 건, 우연히도 내가 갖게 된 건 매끼의 밥상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넉넉히 얻게 된 시간들이야말로 결혼 십 주년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런데, 손이 좀 통통해졌다. 나이를 실감케 하던 탄력 잃은 손등의 피부가 오동통하니 탱탱해졌다. 습진까진 아니어도 늘 좀 축축하고 불쌍해 보이던 손이 회춘하기 시작한 것이다. 설거지를 그만둔 한 달 동안 손이 달라졌다. 신기하지만 믿어지지 않아 몇 번을 확인했지만 사실이었다. 손이 다시 젊어졌다. 다시 어려졌다. 결혼 전, 기껏해야 핸드크림 바르고 커피잔 들고 다니는 일에나 쓰였던 철없고 통통한 그 손이 다시 돌아왔다. 가끔씩 식빵에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를 발라 먹는 일,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일이나 하던 물정 모르고 밥도 못하고 쌀도 못 안치던 십 년 전 손이 되어버렸다. 손등에 반질한 느낌이 돌았고, 자리 잡으려던 주름은 희미해졌다. 손톱은 반들거렸고 윤기가 도는 듯 보였다. 통통하게 젊어진 손을 보는 기분은 제법이었다. 물 한 번 안 묻히고 살던 아가씨 때로 돌아간 느낌에 손을 볼 때면 흐뭇해졌다. 


신혼 초, 내가 끓인 국을 먹고 절망하던 남편의 어두운 표정이 지금도 또렷하다. 앞으로 남은 생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집에서 아내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은 이번 생엔 틀렸다며 포기했었단다. 그랬던 그가 외식도 싫다며 집밥을 외치는 데는 십 년간 하루같이 밥을 차리고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어내느라 욕심낸 적도 없는 음식 솜씨가 늘어버린 아내의 사연이 눈물겨운 빠질 수 없겠다. 아무리 못하는 일도 매일 꾸준히 십 년을 하면 결국 기술이 늘게 되어 있다는 걸 내가 만든 제육볶음을 쌈 싸 먹어가며 정확히 느꼈다. 매콤하면서도 달달한 맛이 제대로였다. 잼병이던 내가 감칠맛 팍팍 도는 요리들을 척척 해내는 건 아내라는, 엄마라는 이름의 의무감이었다. 도망가고 싶었던 무수한 시간을 참아낸 결과였다. 그 때나 지금이나 요리는 가장 어렵고 가장 싫은 일이었다. 이를 악 물고 버티는 사이 요리 실력이 늘었다. 또, 안타깝게도 그러는 사이 손은 물 마를 날 없는 일상의 축축함을 이기지 못했고 예정보다 훨씬 빨리 늙어갔다. 피부는 얇아졌고 검버섯처럼 보이는 무언가도 생겨났고 쭈글쭈글해졌다. 늙어버린 손이 낯설어 이리저리 돌려보기도 했지만 예전의 그 손이 아니었다. 


한 달의 시간이 멈추지 않았으면 했지만 신데렐라의 마법은 풀려버렸다. 난 다시 글을 쓰다 말고 밥을 앉히고 미역을 물에 불린다. 업무를 보다가 급하게 들어와 꽝꽝 얼어있는 고기 덩어리를 던지듯 레인지에 돌리고 오늘까지 약속된 원고를 메일로 보내고는 야채실을 뒤져 거칠게 양파를 깐다. 키보드와 싱크대를 바쁘게 오가는 손에게 고무장갑은 사치였고 키보드까지도 습진에 걸릴 것처럼 축축해졌다. 덕분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예전의 그 손으로 돌아왔다. 바람 빠진 풍선 같은 늙어가는 손, 그 손이 돌아왔고 난 다시 뭐해먹을지를 고민하느라 쓰던 글을 중단하고 냉장고를 뒤지는 일상을 살고 있다. 한 달간 호사를 누리던 손은 언제 그랬냐는 듯 기계처럼 파를 썰고 쌀을 씻는다. 이왕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좀 즐겁게 해도 좋으련만 어째 밥 하는 일은 하면 할수록 더 싫기만 한 건지 제발 좀 형편이 나아져서 밥 주는 아파트로 이사 가면 소원이 없겠다. 



이은경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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