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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비 Nov 17. 2023

'회색 육면체'를 마주하다.

주체적인 삶에서 발견한 '무기력' 일기

 자기 확신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믿고 삽니다. 그러다 무기력에 빠진 나를 마주했습니다. 그렇게 일상에 색이 빠져 '회색'이 되었습니다. 이유를 고민하다가 밖으로 어떤 틈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모습, 즉 '육면체'가 되고 싶은 나를 마주했습니다. 그렇게 '회색 육면체'를 '나다운 색을 가진 매력적인 모양'으로 만드는 과정을 기록해보려 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단지 더 행복한 내일을 꿈꾸는 과정이라 믿습니다.




 어제 '회색 육면체', 결점과 못난 모습을 감추고 완벽하고 싶은 내가 만든 무기력을 마주했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마음이 아주 편안했다. 이전이라면 생각만 하고 미루던 눈에 보이는 집안일을 아무렇지 않게 바로 처리했고, 익숙한 일상에 더 호기심을 보였다.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영감을 모았다.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계획을 세웠다. 단순히 '회색 육면체'를 인지한 사실이 만들었다기에 극적이고 유의미한 변화다.

사진: Unsplash의 John Thomas

 편안하다, '편하고 걱정 없이 좋다'. 편하다, '몸이나 마음이 거북하거나 괴롭지 아니하여 좋다'. 진짜 걱정도 없고, 몸이나 마음이 거북하거나 괴롭지 않았다. 기분이 좋았다. 왜일까? 우선 결점과 부족함을 인정하니 부담이 없어졌다. 일상에 해야 하는 일 투성이었는데, 부담이 없어지니 할 수 있는 걸 했다. 그러니 생각을 넘어서 행동으로 이어졌다. 또 알게 모르게 나를 압박하던 자기혐오를 마주했고 나아가 이해했다. 이해가 되니 자연스레 사과하고 나와 화해한 거 같은 감각이다.


 나는 스스로 결점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절대적인 결점이라는 건 없으니, 내가 싫어하는 모습이 더 중요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첫째, 나는 게으르다. Big-Five 성격유형검사를 해보면 성실성 지표가 낮다. 이는 무질서하고, 즉흥적이고, 충동적이라는 의미다. 바로 정리하지 못하고, 대청소를 하고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나를 매번 나무란다. 항상 생각은 빠른데 실행은 어렵다. 둘째, 나는 공감보다 논리가 편하다. 최근 '너 T야?'라는 밈이 유행했다. 따뜻한 공감을 바랄 때, 공감해주지 않고 차가운 반응을 보일 때 쓰는 말이다. 미숙하던 시절 실패한 리더십을 만든 원인이 동기 부여와 공감 부족이라 여겼다. 오랫동안 협력하고 공감하는 리더십을 고민했다. 실은 지금도 고민한다. 꼭 필요한 부분이지만 사실 나는 논리와 판단이 더 편하다. 공감하려는 노력은 나를 답답하고 피곤하게 만든다. 셋째, 나는 쉽게 긴장한다. 나는 자주 대화를 하다 큰 소리를 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경험상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인정하니 내 생각을 부정당하고 허점을 지적당할까 봐 불안한 거였다. 그래서 긴장하고 큰 소리를 내는 거다. 같은 이유로 발표만 했다 하면 숨은 차오르고 말은 빨라진다. 보는 사람도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게 한다. 넷째, 나는 고집이 세다. 나는 대부분 생각과 행동에 이유를 가지고 있다. 상대가 내 생각과 행동에 담긴 논리를 뒤집지 못하면 설득되지 않고 계속해서 토론을 벌인다. 사실 나는 그럴듯한 이유를 쉽게 만들어내기도 한다. 부끄럽지만 때때로 사실을 과장하거나 부풀리기도 한다. 한참 고집을 부리다 인정하고 생각을 바꾸면 '어쩌라고, 그건 안 중요하니 생산적인 이야기를 하자'는 태도를 보인다.


 다만 결점을 뒤집어 생각하면 내 강점이 되기도 한다. 첫째, 나는 창의적이다. 일반적으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정보를 잘 연결하고 새로운 방식이나 아이디어를 쉽게 만들어낸다. 평범한 방식보다 새로운 방식을 계속해서 고민한다. 둘째, 나는 전략적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쉽게 구체화해 낸다. 구성원이 가진 특성이나 성격까지 고려하여 좋은 성과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낸다. 필요하다면 에너지가 많이 들지만 인지적 공감을 통해 충분한 동기부여를 이끌어낸다. 셋째, 나는 주도력이 있다. 나는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어 변화를 만들 수 있다. 관습이나 구태에 저항하고 대화와 설득으로 변화를 만드는 동력을 이끌어낸다. 때로 내가 말하는 방식이 다소 고압적이고 위협적일 수 있다. 그렇지만 적절히 활용하면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넷째, 나는 자기 확신이 강하다. 내가 살아온 과정과 쌓아온 생각, 경험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외부에서 보내는 자극이나 비판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스스로 판단을 의심하지 않아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나아간다.


 내 결점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편해졌다. '회색 육면체'를 만든 건 결국 자기혐오다. 결점에 숨겨진 이면에는 강점이 위치한다. 싫어하는 모습을 혐오하다 보면 강점을 부정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에 빠지는 건 아닐까? 내가 가진 강점은 잘 활용하고, 결점은 인정하고 타인과 사회에 이해를 구해야 하는 건 아닐까? 스스로를 사랑하고, 우리를 수용하여 나답고 우리 다운 내일을 꿈꿔야 하는 게 아닐까?

사진: Unsplash의 Yulia Gadalina

 나를 둘러싼 관계와 공동체, 사회에서 부담은 내려두고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충분히 양해를 구하고, 잘못한 게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너그러이 용서하며 살자. 나답고 행복한 일들로 일상을 가득 채우고 싶다. "여러분, 사실 저는 완벽하지 않고 부족한 부분이 많은 사람이에요. 완벽하지는 않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해볼게요. 많이 부족하더라도 지지하고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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