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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비 Nov 19. 2023

'척척박사'씨, 이제 아웃이에요.

주체적인 삶에서 발견한 '무기력' 일기

 자기 확신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믿고 삽니다. 그러다 무기력에 빠진 나를 마주했습니다. 그렇게 일상에 색이 빠져 '회색'이 되었습니다. 이유를 고민하다가 밖으로 어떤 틈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모습, 즉 '육면체'가 되고 싶은 나를 마주했습니다. 그렇게 '회색 육면체'를 '나다운 색을 가진 매력적인 모양'으로 만드는 과정을 기록해보려 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단지 더 행복한 내일을 꿈꾸는 과정이라 믿습니다.



 완벽하지 않고 결점 많은 내 모습을 인정하고 지내는 일상이 참 좋다. 부담 없이 힘을 빼니 신기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걸 한다. 지난주 주말에는 휴식을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오늘은 밖으로 나가 친구 생일을 축하하고 어느덧 겨울이 찾아온 동네를 걷고 동네 책방에서 여유롭게 책을 골랐다. 

사진: Unsplash의 Janko Ferlič

 평상시라면 책방에서 지금 내 고민에 힌트를 줄 책을 찾아 나섰겠지만, 오늘은 달랐다. 겉으로 보기에 끌림이 없는 책인데 선뜻 열어보았다. 실은 '잘 모른다'는 감각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잘 모르니까 경험해 보자고 되새겼다. 첫 문장, 첫 문단, 첫 페이지... 흥미가 생기지 않아도 일단 읽어봤다. 지루함이 드는 문장도 있었고,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을 해보게 한 문단도 있었고, 설레는 이야기를 들려준 책도 있었다. 그렇다. '모른다'는 감각으로 시작되는 설렘과 새로움을 잊고 있었다.


 틈이 없고 싶은 나는 무엇이든 아는 척척박사이고 싶다. 아니 척척박사인 척을 한다. 척척박사인 나는 대화를 시작하면 '모른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모르는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내가 아는 이야기들로 대화를 주도한다. 그렇게 척척박사씨는 대화를 나누고 들어와 생각한다. '뭔가 이야기를 많이 나눈 거 같은데... 배운 게 없다.' 인정하고 나니 보인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데 뭘 배울 수 있을까?

사진: Unsplash의 Simeon Jacobson

 내 안에서 척척박사인 척 연기하는 배우는 필요 없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인정하자. '모른다'는 감각을 창피해할 필요 없다. 모르면 듣고 경험하고 배우자. 충분히 듣고 이해하고 찬찬히 내가 가진 경험과 이야기를 나누자. 급할 필요 없다. 충분히 고민하고 이야기하자. '모른다'는 감각에 담긴 설렘과 새로움을 충분히 내 일상에 새기자.


 오늘 하루를 돌아보니, 척척박사씨가 튀어나와 많은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대화를 나누면서 내 안에서 이상한 이질감이 맴돌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좀 이상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거 같았다. 내가 모르는, 다른 이야기에는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내가 잘 알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계속해서 새로 꺼내었다.


 얼마 전 짝꿍에게 '너와 나누는 이야기는 깊어지거나 넓어지지 못하고 자꾸 맴도는 거 같아. 재미없어.'라는 말을 들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거 같았다. 왜지? 실은 오랫동안 나를 둘러싼 관계를 고민하고 있다. 깊은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하나 둘 멀어지는 느낌이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아마 척척박사씨 지분이 꽤 될 거다. 그러니 척척박사씨, 이제 아웃이에요. 제 안에서 나가주세요. 당신은 저를 재미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일상을 회색으로 만들고 있어요. 이제 저는 다른 이야기를 충분히 궁금해하고 여유롭게 듣고, 배우는 매력적인 이야기꾼이 될래요. 

사진: Unsplash의 Ilyass SEDDOU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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