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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ron A Oct 28. 2024

<서부의 사나이>(1958, 안소니 만)

폭력의 개척사를 서부에 묻다.

         1958년에 만들어진 안소니 만의 마지막 서부극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 영화 <서부의 사나이>는 그동안 웨스턴 영화가 생성돼서 발전하고 변화되며 퇴락해 가는 모든 과정을 담고 있는 것 같다. 한때 악당으로 군림하던 주인공 링크는 현재는 가정을 이루고 공동체를 살아가는 평범한 인물이다. 그는 마을의 아이들을 가르칠 선생을 찾기 위해 서부를 여행하다가 자신의 과거, 즉 문명이 존재하지 않았던 야만의 서부와 다시 만난다. 흘러가 버린 세월의 이름인 '과거'는 기억의 저장고에 담겨 왜곡되기도 혹은 미화되기도 한다. 그리고 현실 속에 상상으로 넘나들며 추억이란 낭만적 이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서부'라는 이름의 링크의 과거는 돌이키고 싶지도 않고 추억하고 싶지도 않은 사실이다. 그에게 닥친 위기 상황에서 그의 과거는 대면하기 괴로운 악몽 그 자체이다.  

 가장 미국적이고, 근원이 불확실한 나라의 신화였던 웨스턴이라는 장르가 어찌하여 이렇게 기억하기조차 불쾌한 과거의 망령으로 표현되어야만 했을까? 비록 이 영화가 ‘심리적 서부극’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안소니 만 감독은 그들에게는 신화였으나 원주민 인디언을 말살하고 폭력으로 세워진 서부의 역사를 보여주며 포장된 영웅주의를 거부한다. 이에 덧붙여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고 매카시즘을 넘어온 팽배해져만 가는 거대한 힘을 가진 미국이란 나라의 폭력성에 대해 은근히 조롱하고 있는 듯 보인다.

 크기가 맞지 않은 열차의 의자에 불편하게 끼어 앉아서 커다란 기적소리와 기차의 덜컹거림을 불안해하는 게리 쿠퍼의 모습은 꽤나 인간적이다. 하지만 그가 앞으로 만나게 될 과거의 '닥 토반' 일행은 유령 마을 '라수'와는 차원이 다른 악당들이다. 그렇기에 그가 '닥 토반'의 오두막에 들어섰을 때부터는 그 역시 이성적인 문명과는 거리가 먼 제어할 수 없는 폭주자로 변한다. 여인을 유린하고 마을을 강탈하려는‘닥 토반’ 일행의 폭력이나 옷이 벗겨지고 말 그대로 죽을 때까지 싸우는 링크의 폭력이 별반 다르지 않다. 이미 문명화 되어버린 서부에서 그들의 폭력성은 발붙일 곳이 남아있지 않은 망상일 뿐이다. 그렇기에 그 망상을 잠재울 방법은 폭력의 가장 정점에 있는 총이고 그들이 묻힐 곳은 이미 폐기 처분된 유령 마을이다. 그는 그들을 사살하고 폭력의 과거를 끝나가는 영화 속에 묻어버린다.

 서부 개척의 역사는 영광도 아니요 신화도 아니다. 그저 그 척박한 땅에서 아무것도 없는 인간들이 살아남기 위해 폭력도 행사하고 피도 불러온 인간사의 한 부분일 뿐이다. 그렇게 안소니 만은 영웅을 만들어 냈던 초기의 낭만을 뒤로하고 시효가 다한 웨스턴이라는 장르의 마지막 길을 과거의 유령으로 그리고 그 시대의 영웅이었던 인물들을 그들이 행했던 폭력이라는 이름의 망령 속으로 묻어버린다. 그리고 서서히 문명화되고 이성화되며 복잡하고 지난한 인간들의 생활사를 향해 말머리를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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