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0년 ~ 1914년
메트로폴리스
지상 낙원이 아니라 지상 지옥이었던 맨체스터와 시카고를 지나 이제 유럽의 도시, 이름만 들어도 아름다울 것 같은 도시 파리로 왔다. 프랑스 파리라고 하면 안 가본 사람들에게는 어떤 로망의 있는 도시이다. 미국의 거대 도시들과는 또 다른 어떤 낭만이 있을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가 있다. 이건 비단 나에게만 있는 생각이 아니라 많은 아시아인들이 생각하는 파리의 이미지인 것 같다.
그중에서도 일본 사람들의 파리 사랑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2006년, 영국의 방송사 BBC가 정체를 알 수 없는 현대 질병에 관한 기사를 보도했다. 해마다 10여 명의 일본인 관광객들이 그 질병 때문에 파리에서 본국으로 후송된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파리 증후군'이다!
그들은 거의 평생 파리의 낭만적이고 이상화된 도시 풍경을 동경했지만, 냉담한 현지인들과 인파로 인해 붐비는 대로, 불결한 지하철역과 무례한 웨이터들 때문에 크나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정신적 붕괴'를 겪는다는 것이다.
급기야 일본 대사관은 이러한 파리 증후군 환자들을 위한 24시간 응급전화를 개설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무언가 시트콤 같기도 하고, 다소 이해가 갈 것도 같지만 역시 좀 과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쯤 프로이트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도 1885년 파리를 방문했다가 비슷한 정신적 붕괴를 겪었다고 기록했었다. 파리에 대한 동경으로 도착했지만 오만한 사람들, 위협적인 인파, 다가가기 힘든 사람들 때문에 편집증적 망상에 사로잡혀 죽으려고까지 했다는 기록이다. 파리를 가보지 않은 나로서는 이렇게까지 괴리가 있다고? 하는 생각과 아무리 괴리가 있다고 정신이 나갈 정도라는 말인가 싶다.
파리는 사실 따듯하고 낭만적인 사람들이 사는 평화롭고 낭만적인 도시라기보다는 전형적인 거대도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거대한 낭만을 기대했던 사람들이 북적북적하고 혼잡하고 더러운 도시를 마주하면 멘붕이 오는 것이다.
파리 증후군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재미있는 개념이 등장한다. 바로 바도와 플라뇌르이다. '바도'는 인파로 붐비는 거리를 어슬렁 어슬렁 거닐며 도시 생활을 구경하는 구경꾼을 뜻한다. 여기에서 플라뇌르라는 개념이 나온다. 영어로는 번역도 안되는 개념인데, 도시의 인파 속에 섞여 있으면서도 사람들과 동떨어진 채 도시를 탐색하는 은밀하고 초연한 초연한 관찰자요 예리한 품평가인 근대적 도시인이다.
어렵다. 내 식으로 풀어보자면 파리에서 거대한 목가적인 낭만을 기대하지 말고 거대 도시 속에서 사람들이 뒤섞여 살아가는 모습을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하면 그 사람사는 아름다운 모습이 바로 파리의 매력이라는 정도인 것 같다. 이 정도가 내 한계다. ㅎㅎ
파리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이 느끼는 심각한 소외감 즉 감정의 급락과 외로움이 뒤섞인 상태는 우리 모두가 도시에서 느낄 법한 기분의 극단적 형태다. 대도시의 인간관계는 인간적인 요소가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외롭기 마련이다. 그 해법으로 도시 구석구석을 걸으며 둘러보며 친해지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도시 자체와 친숙해져서 극복하는 것이다. 도시라는 곳은 참 편리하고 좋기도 하지만 필연적으로 외로움을 만들어 내는 곳인듯하다.
유럽의 거대도시 파리를 지나 다음에는 현대 도시의 대표주자 미국의 뉴욕으로 가보자 ~ ^^
그럼 그때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