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형님이 지켜보고 있다!
시대가 어려우면 우울한 세상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책들이 유행한다. 얼마 전에 리뷰했던 책잡지 에픽 2호의 주제도 마침 디스토피아였다. 요즘 코로나로 인한 코로나 블루 우울증부터 해서 경제는 침체되고,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여기저기서 하지 말라는 것 투성이다. 목적은 다르지만 CCTV로 감시하여 코로나 규정을 어긴 사람들을 잡아내고 있다. 꼭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우리나라는 초감시사회로 제법 유명하다. 중국처럼 심하지는 않지만 언제 어디서든 우리가 촬영되고 있을 확률은 굉장히 높다. 자동차마다 블랙박스가 설치돼 있어서, 집을 나서며, 복도에서, 아파트 현관에서, 주차장 입구에서, 내 차로 가는 동안 줄지어 있는 차들마다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촬영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긍정적인 면으로 생각하면 치안이 좋기 때문에, 카페에 물건을 놓고 나가도 누가 잘 집어가지를 않는다. 국민성이 좋은 부분도 물론 크지만, 무의식중에 어디에나 CCTV가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건 아닐까?
1984는 초감시사회를 그린 소설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텔레스크린이란 장치는 CCTV에 스피커, 마이크, 화면을 달아놓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비슷할 듯싶다. CCTV가 화면만 찍는 게 아니라 소리도 녹음하고, CCTV를 통해서 지시도 내릴 수 있다면? 범죄는 진짜 사라지기는 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빅브라더라는 가상의 존재는 그야말로 존경받으실 큰 형님이자, 나에게 가르침을 주시는 존재다. 물론 말을 안 들으면 혹독하게 혼날 각오를 해야 하는 큰 형님이다.
1984에서 제일 재미있었던 개념이 2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신어'라는 새로운 언어이고, 또 하나는 '배신'의 개념이다.
1. 신어 (New Speak)
1984의 세상에서는 '신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사용한다. 신어는 불필요한 말을 없애고 최대한 간결하게 만든 언어이다. 예를 들어서 '좋다 Good'이라는 단어가 있다면 반대말인 '나쁘다 Bad'라는 단어를 없애고, 안 좋다 Ungood이라는 단어로 바꾸는 게 신어의 개념이다. 멋있다. 끝내준다. 죽여준다. 장난 아니다. 환상적이다. 그럴듯하다. 이런 말은 존재할 수가 없다. good -> plus good -> double puls good. 이렇게 표현하는 게 신어다. 코미디 같지만 왠지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신어의 목적은 언어를 단순화 시켜서 인간이 복합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일제시대에 일본이 왜 우리말부터 빼앗고 일본어를 쓰게 했는지, 마지막 수업에서도 왜 침략군은 언어를 먼저 빼앗는지 확 이해가 된다. 말과 글이 곧 생각이고, 사상인 것이다. 표현이 풍부한 언어를 가진 민족은 감정 표현이 다양해지고, 반대로 사고가 유연한 민족은 풍성한 단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책이란 것이 우리의 사고를 얼마나 풍성하게 하는 것인지도 새삼 깨닫게 된다. 한 권의 책 안에는 얼마나 다양하고 풍부한 단어들이 들어있는가? 꾸준히 책을 읽는 사람들의 사고가 깊어지고 수준이 업그레이드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가 보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비롯해서 많은 글쓰기 책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
책을 많이 읽다 보면 결국 글이 쓰고 싶어진다.
반대로 많이 읽지 않고는 좋은 글을 쓸 방법이 없다.
많이 읽다 보면 수많은 단어들이 끊임없이 우리 뇌를 두드리고 생각을 발전시키며 사고를 깊게 한다. 이렇게 생각이 쌓이다 보면 쏟아내지 않을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렇게 쏟아져 내린 생각들이 책이 되는 건 아닐까?
2. '배신'의 개념
주인공인 윈스턴과 줄리아는 이런 세상에서 서로를 찾아내어 진실한 사랑을 나눈다. 잡혀가기 전에 윈스턴은 줄리아에게 말한다.
"자백은 배신이 아니야. 감정이 문제지. 그놈들 때문에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면 그것이 정말 배신이야"
배신은 감정의 문제다. 마음속에서 그 사람을 밀어내면 그게 정말 배신이 되는 것이다. 감정이라는 게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완벽히 통제되는 것이 아닌지라, 스스로는 배신하지 않았다고 생각해도 본인의 진짜 감정은 다를 수 있다.
이성은 배신하지 않았지만, 감정은 자기도 모르게 이미 배신을 했을 수 있다.
무의식에서 배신이 일어나는 거다. 나는 아직 저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 감정의 중심이 식어버리면 의식하지도 못하게 배신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배신이란 게 맘먹고 하는 게 아니라, 외부의 요인에 의해서 감정이 변하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1984는 생각할 거리를 너무 많이 주어서 어떤 면에서는 피곤한 소설이다. 그래서 재밌는 소설인 것 같다. 그래서 고전 명작이 되는 것 같고. 조지 오웰의 또 다른 소설 '동물농장' 과 전체적인 어두운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결은 조금 다른 소설인 것 같다.
소설을 읽고 나서 작가를 분석해 보는 걸 좋아한다. 글도 사람이 쓰는 것인지라, 그 사람의 인생과 환경이 어느 정도 묻어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작가 사상이란 것도 그 사람의 인생과 환경에서 영향을 받아 성립된 걸 테니까 말이다.
조지 오웰[George Orwell , 1903 ~ 1950]
우리나라의 역사로 보면,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전쟁 때까지 살았던 영국의 소설가다.
조지 오웰의 인생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조지 오웰은 평생 지독하게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지병인 결핵으로 끊임없이 건강 문제가 있었다. 40살 근처에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1945년이 되어서야 '동물농장'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된다. 그 이후에도 계속 결핵으로 고생하다가 1949년 드디어 최고의 걸작 1984를 출간한다. 하지만 1년도 못되어 지병인 결핵으로 피를 토하고 1950년 사망한다.
요약하자면,
평생 병을 달고 살았고, 부인은 일찍 죽고, 슬하에 자식도 없었고, 말년에 작가로 성공했으나 누려보지도 못하고 피를 토하고 죽음.
조지 오웰의 글이 디스토피아적인 색채를 띠는 것이 오히려 당연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 세상은 핑크빛이 아니었지 않겠는가.
1984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면서도 이야기 자체로 참 재미있는 소설이다. 고전 명작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클래식은 영원하다'. 사람들이 수십 년 수백 년을 대를 물려가며 읽는 책, 듣는 음악에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우리 모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