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1)
왜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사교육이 성행할까?
조장훈 저자의 책 <대치동>은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이라는 부제 하에, 한국인의 세속적인 욕망이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로 향하게 된 경로를 추적합니다. '대치동은 대한민국 모든 욕망의 최전선'이라는 저자의 말처럼, 대치동을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사교육 생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책이지요. 특히 사교육의 메카라 불리는 '대치동' 사례를 활용하여 왜 우리나라에서 사교육이 성행하게 되었는지, 입시 제도의 역사를 세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우리나라 입시제도의 역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게 되지요. 대치동 출신 강사가 썼다는 말에 처음에는 선입견을 가졌지만, 그만큼 생생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대치동이 사교육의 메카가 된 이유를 세 가지로 꼽습니다. 하나는 '학원 관련 규제의 완화', 둘은 '입시 제도의 대대적인 변화와 다양화', 셋은 '뛰어난 역량을 가진 인적 자원의 유입'이지요. 지금은 학원 운영 시간을 밤 10시까지로 제한하고 있지만(물론 지키지 않는 곳도 있지만), 예전만 하더라도 대치동은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수업으로 불야성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입학사정관제, 학생부종합전형(학종) 등 다양한 입시제도가 생겨나며 입시 학원은 학부모와 학생으로 문전성시를 이뤘죠. 또한 공교육이 무너지며 훨씬 처우가 좋은 학원으로 우수한 강사진들이 유입되기 시작했습니다. 상위 몇 프로의 강사는 연예인 부럽지 않은 고소득을 올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노력의 종착점은 수학능력시험과 대학 입시로 귀결됩니다. 해마다 수능 때만 되면 출퇴근 시간 및 비행기 이착륙 시간 조정, 경찰차 배치 등의 진풍경이 벌어지지요. 여느 나라에서 보기 힘든 희귀한 장면에 외신들도 한국의 입시 과열 현상을 유의미하게 보도하곤 합니다. 일 년에 한 번 치러지는 시험이 왜 그리 중요한지, 그 시험 결과로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수험생 부모라면 누구나 뛰어든다는 비정상적인 사교육 열풍에 대해서도 조명하지요.
사실 대한민국의 입시 열풍은 어느 한 가지 원인으로 결론짓기엔 무리입니다. 제도와 정책, 시장구조, 개인의 욕망, 부의 시스템 등 여러 요소가 다층적으로 얽혀있지요. 지금까지 교육 정책의 변화와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특수한 환경, 그리고 그를 둘러싼 세속적 욕망을 알지 못하고는 재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저자가 직접 욕망의 최전선인 대치동에서 경험하며 느낀 것들을 기록한 이 책은 여러모로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며 특히 마음에 와닿았던 구절은 아래와 같습니다.
[입시 과열의 원인]
이제 강남은 돈 없어도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이 되었고, 후세의 계급 상승을 위해 노력한 부모들은 현세에 구원받았으니 이보다 호소력 있는 신화와 종교는 일찍이 없었다. 맹모삼천지교의 유교적 세계관 속에서 윤리적으로 정당화되었던 이 나라의 교육열은 강남 부동산 폭등의 신화에 편승하여 이제는 거의 신앙의 대상으로 승격된다. 그것은 자식 사랑이면서, 동시에 직장에서 버는 돈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수입을 실현하는 기적의 재테크였으며 부모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시대의 미덕이 되었다.
사교육의 열풍을 타고 대치동 집값도 폭등했습니다. 대치동 전셋값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수험생 아이를 위해 무리해서 이사 가거나, 그러지 못한 경우에는 주변 지역에서 하교 후에 라이딩을 하는 등 어떻게든 좋은 학원을 보내려 노력하지요. 수능 만점자의 인터뷰에 '교과서만 충실히'는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만점자가 다닌 학원 정보는 삽시간에 퍼져나가 거듭되는 입시 과열을 야기합니다.
그리고 자식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오래전 대치동에 입성한 학부모들은 그 사이 폭등한 강남 부동산과 맞물려 기적의 재테크를 이루었습니다. 좋은 환경에서 교육시키고 몇 배의 부동산 시세 차익을 누리며, 대치동 성공 신화를 이어가게 되지요.
사교육에 대한 우리 사회의 왜곡된 인식은 국가의 부당하고 자의적인 개입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이는 스스로 교육을 선택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 및 권리와 상충되는 까닭에 사람들은 사교육을 사회악으로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열망하는 모순된 인식을 갖게 되었다.
저자는 교육의 선택은 개인의 권리이며, 사교육을 규제하는 정부의 태도로 오히려 사람들이 모순된 인식을 갖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해마다 매스컴에서는 가계 사교육비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부정적인 뉴스를 내보냅니다. 가계 소득 대비 사교육비 비중이 지나치게 높은 현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무리하여 돈을 벌어서라도 좋은 환경에서 교육시키고 싶은, 그래야 우리 아이가 다른 또래들에게 뒤처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맹목적인 사교육 투자에 이르게 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사교육 대상 연령이 점점 낮아져서 열풍은 일찌감치 시작됩니다. 영어 유치원이나 국제학교로 시작되어 고등학생이 되면 유명 학원이나 강사 티켓팅으로 이어지지요. '사교육비 때문에 등골이 휜다'면서도 섣불리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 미래를 위한 불가피한 투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대학 입시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는가는 이제 고등 교육 자원의 분배를 넘어 계급 유지 또는 계급 상승 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중차대한 일이 된 것이다. …… 교육열이 뜨거울수록 학벌 경쟁은 치열해지고, 어렵게 학벌을 얻은 이들은 자신의 특권을 당연하고 정당한 것으로 여기며 학연을 통해 이를 강화한다. 학벌주의로 인해 교육열이 뜨거워지고, 뜨거워진 교육열이 학벌주의를 담금질한다.
입시 요강이나 대입제도 개선과 관련된 정책이 발표될 때면 연일 뜨거운 감자가 됩니다. 학벌 자체가 계급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보니, 내 아이가 공정하게 대입을 치를 수 있는지의 엄격한 잣대로 바라보게 되지요. 병역과 더불어 자녀 대학 입시비리가 고위층 인사 검증의 단골 소재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 '입시'란 공정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외국에서는 보편화된 기여입학제 등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지요.
그리고 힘들게 좋은 학벌을 얻어낸 뒤에는, 사회에서 학연을 통해 그들만의 리그를 공고히 합니다. 학벌은 여전히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끈으로 작용하기에, 학벌주의가 강해질수록 교육열도 그에 비례하여 뜨거워집니다.
[입시제도와 수험생]
계급 간 힘겨루기 속에서 대입 제도는 파행을 면치 못하고, 여론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일관성을 상실한다. 문제는 제도의 격변 아래에 우리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아이들은 미성년이기에 제도의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형식적 권리조차도 없다. 그저 주어진 입시 제도하에서 묵묵히 압박감을 견디고 있다.
저 역시 대학 졸업 후 입시학원 강사로 일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강사로서의 위치 때문에 어린 아이들을 푸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학원에서 스트레스 받는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당장 보이는 성적이 중요했기에 암기를 권하고, 주입식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부모 손에 이끌려온 아이들은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른 채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묵묵히 감내했고요. 문제 하나 더 틀렸다는 이유로 의기소침하는 아이들을 보며, 어려서부터 이유도 모르고 경쟁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던 기억이 납니다.
문제는 이들의 경쟁이 대입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입의 트라우마를 안고 이들은 다시 취업을 위해 대학 내내 학점 경쟁에 몰두하고, 스펙을 쌓는 데 열을 올린다. …… 한국인의 대학 진학의 목적은 학사 학위와 명문대 학벌 취득에 국한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진리를 추구하거나 정의나 자유를 희구해서가 아니라, 그냥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학벌을 수단으로 삼아 세속적 성공을 이루고자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다.
대입으로 촉발된 경쟁은 취업을 위한 경쟁으로 이어집니다. 대기업 등 좋은 직장이라 일컬어지는 곳에 취업하고자 또다시 경쟁 레이스에 뛰어들게 되지요. 힘든 대학 입시를 끝내고 나서도 좀 더 좋은 회사에 가고자 하는 열망에, 취업을 위한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게 됩니다. 캠퍼스의 낭만보다는 각종 스펙을 쌓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대학 생활이 이루어집니다. 고등학교 때 입시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했듯이, 대학 때도 각종 인턴과 대외활동, 공모전 등의 수상 이력으로 이력서를 채웁니다. 일종의 명문대라는 목표가 대기업 입사라는 목표로 치환되는 겁니다. 입시학원을 기웃거렸던 학생들은, 이제 인적성 검사나 각종 자격증 취득을 위한 수험 학원들을 찾아 불안한 미래에 대비하게 되지요.
저자는 현실에 발붙이기 위해서 사람들의 세속적이고 노골적인 욕망을 정면으로 마주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대치동이 교육열과 부동산에 관한 한, 우리 사회 욕망의 최전선임은 자명한 사실이고요.
한국 사회의 학벌주의가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먼저 어떤 기원에서 사교육 열풍이 생겨나고 강화되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책에서 언급되는 생생한 사례들은, 그 과정에 적잖게 도움이 될 겁니다.
.
.
.
이번 책 역시 분량이 많아서 두 회차에 나누어 포스팅할 예정입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학벌주의와 능력주의, 그리고 입시 제도의 대안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그럼,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