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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ing Mar 04. 2024

삐빅- 서른입니다.

계속 흔들리겠습니다.

오늘부로 나는 "만 나이로도" 서른이 되었다. 몸무게 앞자리야 시시각각 바뀔수도 (?) 있지만,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 건 10년마다 있는 일이니 인생에 정말 많아야 10번 정도 있는 일 아니겠는가. 게다가 "어른"이라는 칭호가 붙는 20대에서 30대로 가는 것은 왜인지 모르게 더 큰 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나이야 시간가면 저절로 먹는 것이 당연하지만, 20대는 유난히 저절로 된다. 유약하고 미약한 10대에는 사회가 어느 정도 맞춰둔 틀에서 오밀 조밀 움직이다가 덜커덕 생일이 지나면 20대라는 "어른"이 된다. 사실 20대의 나는 10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발버둥은 미약했고 존재는 불안했으며 유난히 흔들렸던 시기다. 


나의 경우엔 이 나이에 따른 위치 변화가 크게 작용한 감이 있다. 20대가 될때에는 주 생활지를 서울로, 30대를 앞둔 시기에는 외국으로 이사를 왔으니 말이다. 모든 동물은 주거환경이 바뀌면 불안해 한다. 그렇게 나는 20대의 마지막까지 지독하게 흔들렸다. 


다행히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30대의 시작을 타지에서 맞이하는 것이 내심 불안했다. 서른이나 먹어도 생일은 언제나 큰 일이잖아. 그렇게 2년 전 30대를 먼저 시작한 브라질 친구, 40대 중반에서 20살짜리 고양이를 키우는 일본인 친구와 앉아 30살이 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친구가 20대때 30살에 이루고 싶었던 것이 있었냐는 질문에 나는 2년 전을 떠올렸다. 처음으로 외국에 나와 일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던 때였다. 숱하게 많은 기업 면접을 보고, 매일같이 탈락 메일을 보고, 그래도 나쁜 일이 아니라고 애써 마음을 잡았던 시기. 30살의 나는 외국의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즐거운 외국 생활을 살아갈 것이라고, 커리어도 잘 쌓아 가고, 대부분의 관계는 안전하리라. 미래의 계획은 어떤 때는 위로가 되니까 그렇게 주문처럼 미래 계획을 자꾸만 세웠던 시기. 미래는 흔들리지 않는 것 처럼 보이기 쉽다. 먼 지평선의 바다가 평화로워 보이듯. 


그 시기를 본다면 지금 내가 맞이한 서른은 얼추 그 목표에 가깝다. 외국에서 일을 하고, 그 어느때보다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 둘러쌓여 생활한다. 어느정도 적절한 커리어, 대단히 많지는 않아도 바운더리 안의 사람들과 즐거운 관계를 유지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만족은 이런 것에서 오지 않더라. 이것들은 여전히 흔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커리어는 늘 불안하다. 예산이 깎여나갈 때마다 조급해지고, 아무리 "결과가 과정을 증명한다"를 되뇌이며 묵묵히 나아가려해도, 그 과정 동안 나는 무수하게 무너졌다. 바운더리 안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 나는 많은 사람들을 "간봐야" 했다. 상처받을 여유가 없었으니까. 외국에 사는 동안 가족의 곁에 있을 수 없다는 불안은 나를 자유롭게도, 미안하게도 했다.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것은 나도 다양한 그들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다양함은 가끔 나를 지치게 했다. 


다만 내가 서른이 될 즈음부터 느꼈던 만족은 나의 내면 속 흔들림이 조금 덜 하다는 것이었다. 외부의 불안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20대 동안 쌓아온 나를 위한 작고 작은 요소들이 나를 받쳐줬다. 하루 마무리 쓰던 일기가, 울적한 기분이 들 때에는 우선 하던 산책이, 누군가의 연락을 기다리지 않기 위해 요일마다 세워둔 셀프케어 리스트들이 나를 지탱했다. 흔들 흔들 찰랑찰랑 아슬하던 나를 위해 쌓아올린 둑이 댐이 된 셈이다. 


3은 "안정"의 숫자라고들 한다. 다리가 3개면 왠만한 것들을 세울 수 있다. 그 말은 3부터는 혼자 설 수 있다는 뜻 아닐까. 두발 자전거는 달려야 설 수 있지만 3륜 구동은 그 자체로도 안정적이니까. 이제 두발자전거처럼 쉴새없이 달리기는 조금 숨에 찰 수 있겠지만, 얼레벌레 3륜 구동이 혼자 서 있을 수 있다면 더 편할 수도 있겠다. 내 서른의 목표는 내가 쌓은 댐이 누군가에게 벽이 되지 않는, 여유로움을 가지는 것이 되겠다. 작은 가시에도 생채기가 나던 시절을 지나, 사실은 지금도 미약하기 그지없는 미생이지만. 3이라는 숫자가 주는 위안으로 조금 더 커봐야지. 


그러니 조금씩 더 다양하게 흔들려보자. 흔들리는 방향도 다양하면 내 삶의 범위가 될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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