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유로원 Nov 09. 2024

나는 올해의 불지옥을 모른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다.

내년 여름에는 달랏 한달살기를 추천합니다.

어느 기획자의 라이프스타일 전략

나는 전략 짜는 기획자다. 그래서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늘 만들어 가는데, 2년 전에는 자연 속 단독주택에서 살고 싶어서 거제도로 이사를 갔고, 매일 아침 새소리와 함께 눈 뜨고 통창으로 숲숲한 나무들을 보며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사랑하는 그 집이 매우 오래된 집이라 난방비가 정말 많이 든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나는 추위도 약하고 더위에도 취약한 몸뚱이를 가진 탓에 첫 해에는 뭣도 모르고 난방을 펑펑 틀었다가 한 달에 50만 원이 넘게 나온 적이 있는데 그다음 해부터는 아끼고 아꼈더니 방 밖으로 아얘 나오질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아 이렇게 추울 때는 차라리 어디 따뜻한 동남아에서 한 달 정도 살고 오면 어떨까?" 란 생각을 했었고 작년 겨울 초입 역시 오들오들 떨다가 안 되겠다 가자!! 하고는 태국 치앙마이에서 1개월을 살고 왔다. 그리곤 가장 추울 때 출국해서 봄기운이 살짝 스며드는 시기에 입국했다. 그리고는 유레카를 외쳤다! 이거다!



그럼 더울 때는 어디로 가지..?

태국 치앙마이의 겨울은 그리 덥지 않은 선선한 날씨였고 물가도 낮아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금액으로 호강하다 돌아왔다. 그 기억이 너무 좋았어서 그럼 이번 여름은 물가가 낮으면서도 기온이 시원한 곳을 가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이 베트남의 달랏 지역이다. 동남아 대부분은 한국 여름 시즌과 함께 같이 더울 수밖에 없는데, 그중에서도 베트남의 달랏은 해발 1500미터의 고산지역이라 평균 기온이 18~25도 안팎이라고. 유튜브 쇼츠에서 추천하는 걸 보고는 에어비앤비를 검색했더니 대부분 한 달 렌트 비용이 30~50만 원 사이었다. 세상에! 그래서 결정했다. 이번 여름은 베트남 달랏에서 한 달을 보내자고. 나는 코로나 이전부터도 재택으로 일해왔는 데다. 또 관련한 일들이 타이밍 좋게 들어와서 7월 중순 베트남 달랏으로 출국해 딱 8월 말 한국으로 들어왔다.


시원하다 못해 추운 베트남 달랏.

달랏이 아무리 우리나라 가을 날씨라곤 하지만, '설마 동남아인데 춥기 까지야 하겠어..?'라고 생각했던 나. 하지만 공항에서 내린 달랏의 밤 기온은 정말 쌀쌀했다. 주변에 달랏을 갔다 온 사람들이 '긴팔 꼭 챙겨가라 했던 말'을 무시하지 않았던 나를 칭찬한다... 가끔 비 오는 밤은 추워서 털옷을 입고 자기도 할 정도였다. 그래도 너무너무 행복했던 건 덥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침 내가 달랏에 도착하니까 한국은 불지옥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달랏은 마지막 베트남 왕의 별장이 있는 피서지인 만큼 서늘한 날씨 하나만큼은 알아줘야 한다.

평균 낮에는 25도 ~ 밤에는 18도까지 떨어졌었다.


이 가격 실화인가요?

여름의 달랏은 우기여서 습도가 높다. 유튜브의 누군가는 습도가 높아서 너무 싫다고도 하는 걸 봤는데, 하지만 가을에 비가 와봐야 여름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되지 않는가. 거의 매일 비가 왔고, 가끔 맑은 날이 있었는데 오히려 나는 흐리거나 비 온 상태의 온도가 마음에 들었었다. 더위를 피해서 간 거였으니까. 그리고 날씨뿐만 아니라 저렴한 물가가 정말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는데 내 체감상 저렴한 곳은 한국 물가의 1/10 정도였던 것 같다. 커피는 700원, 쌀국수는 천 원, 저렴한 숙박은 1만 원~3만 원 대. 하루 세끼에 커피 2잔을 마셔도 하루 평균 만원 정도 썼던 거 같다. 특히 숙소 뽑기를 정말 잘했는데 첫날 간 곳은 너무 유니크한 이탈리안 감성의 숙소였고 내 또래의 호스트들이랑도 친해져서 덕분에 한국인은 모르는 핫플을 많이 알게 되었다. 

베트남 달랏은 아직 외국인이 많은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다. 그래서 아직 타 유명 관광지에 비해 물가가 저렴하고 외국인이라고 바가지를 씌우거나 하는 게 없다. 어딜 가나 친절하고 특히 한국 사람인 걸 먼저 알아보고 인사를 해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여기서도 한국 인기는 꽤 높은 거 같은데, 오자마자 사귄 현지 친구 생일파티에 우연히 갔다가 2차로 가게 된 가라오케에서 이 친구들, 빅뱅의 '거짓말'이랑 원더걸스 'Tell Me'를 한국어 가사로 불렀다.(반면 최신곡은 모르는 듯..?) 어떤 친구는 쿨의 아로하를 열창하더라는.. 아주 재밌었다. 나 하나쯤 추천 글 쓴다고 한국인이 엄청 많이 가진 않겠지..? 이 물가가 오르지 않길 바랄 뿐이다.



여행지가 아닌 전략적 선택지

한국으로 들어왔을 직후에는 아 이 정도면 불지옥은 넘어간 온도겠구나 싶었다. 물론 추분이 지났을 때까지도 가을날씨가 아니라는 상황이었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한국 여름의 온도가 앞으로도 계속 올라갈 예정이라면 나는 매년 여름에는 달랏을 올 것 같다. 솔직히 나만 알고 싶긴 하지만, 뉴스에서 말하듯 전 세계 기온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고 자연재해가 빈번해지고 있는 걸 몸으로 체감하는 지금이 아닌가. 

현재 11월 한참 단풍이 들어야 할 시기에 단풍을 보기 힘들어졌다. 날씨와 환경은 인간의 힘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기에, 이런 타 지역 한달살이는 단순히 여행지 추천을 떠나 어쩌면 앞으로는 생존과도 연관된 고민이자 선택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직업의 특성상 남들보다 변화에 민감하고 아직 다들 안 할 때 먼저 시작하는 편인데 기후 변화에 관하여 난 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날씨의 변화는 산업 전반, 일의 형태 등 우리 삶의 여러 것들을 바꾸어 나갈 것이다. 어쩌면 향후 몇 년 이내 이상기후를 피해 다른 나라로 피신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신조어가 나타날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베트남 달랏은 여건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불지옥 탈출구가 될 것이고 짧은 여행으로는 볼 건 별로 없지만 날씨와 물가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피서지라 생각하며, 모르는 분들이 많기에 한 번은 알고 가면 좋을 여행지로 추천한다.

작가의 이전글 1. 전시를 하게 되었다. 계급장 때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