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쩨리 Jan 21. 2023

넷플릭스 <정이> 리뷰 - 너무 기대했던 영화

연상호 감독은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본 리뷰는 <정이>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스포일러가 싫으신 분들은 뒤로 가기 해주세요.


연상호 감독의 첫 넷플릭스 오리지널 <정이>가 공개됐다. 예고편이나 포스터 비주얼이 흥미로워서 바로 봤는데, 요약하자면 참 정도 안 가는, 엄청 아쉬운 영화였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정이>는 전쟁영웅이었던 윤정이 용병의 뇌를 복제해 전투용 인공지능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고민과 문제를 다룬 영화다. 문제는 보여주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아서 90분이라는 너무 짧은 러닝타임이 벅차도록 여러 가지 고민을 충분히 곱씹지 않고 한 번에 던진다는 점이다.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정이>는 그동안의 수많은 SF영화와 디스토피아 영화가 던진 고민과 주제의식을 모두 모아놓았다. 뇌를 복제하여 만든 인공지능을 '나'라고 정의할 수 있는가?부터 사람의 뇌를 복제하여 만든 안드로이드를 인간이라고 정의해야 하는가?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아픈 딸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엄마의 삶에서 '나'의 삶은 무엇인가? 등등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곱씹어야 하는 문제들이 산발적으로 짧은 시간 안에 마구마구 등장한다.


그러니 <정이>의 주제의식은 약해지고, 얘기하고 싶은 게 모호해지니 집중할 수가 없다.




티 나지 않게 베끼던가, 잘 베끼던가

<정이>는 여러 주제의식을 하도 짬뽕해 놔서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르는 게 문제인데, 그렇게 되는 데에 한몫한 것이 바로 유명한 영화 여기저기서 짜깁기 해온 화면과 설정들이다. 잘 베끼면 오마주로서 볼 재미가 생기지만 어쭙잖으면 꼴 뵈기 싫어지는데, <정이>는 후자에 해당한다.


<정이>에서 크로노이드를 탈출하려는 '윤정이' 용병의 뇌를 가진 안드로이드가 수많은 복제된 윤정이 용병 사이에 숨어있던 장면을 봤으면 누구든지 윌 스미스 주연의 <아이, 로봇>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렇게 인공지능을 다룬 영화의 바이블을 베끼려면 아예 잘 베끼던지, 이 장면을 쓰는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의미도 없고, 보는 맛은 떨어지니 관객을 바보 취급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쁠 정도다.

이 외에도 <아이, 로봇> 속에 등장했던 사람과 인공지능을 구분하는 윤리검사 장면, 도망치는 윤서현 박사를 쫓던 수많은 안드로이드들이 달려 있던 모노레일 등도 <아이, 로봇>이 자꾸 생각난다.


또, 우주의 쉘터를 보여주는 장면은 <엘리시움>을 닮았으며, 돈을 벌기 위해 전쟁 용병으로 나가는 지상의 사람들 또한 설정이 비슷하다. 가정용 안드로이드, 성적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안드로이드를 등장시켜 인공 지능의 윤리를 문제 삼는 건 <블레이드 러너>를 닮았다. 황폐화된 디스토피아 지구의 모습은 하도 어디서 많이 보아서 도대체 어느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디스토피아 미래를 배경으로 한 지구를 다루고, 인공지능을 다룬다는 점에서 비슷한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고, 설정이 겹칠 수는 있다. 중요한 건 이런 문제들을 다뤘던 영화들이 왜 그런 설정을 가져왔는지, 왜 그런 장면이 있어야 했는지 고민 없이 그저 가져오기만 해서 <정이>가 던지는 문제나 주제의식에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짧은 러닝 타임으로 감춘 구멍들

보통 이렇게 고민 없이 유명한 장면들을 베껴 나열한 영화는 필연적으로 개연성이 작살나 있다. <정이>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얼핏 보면 러닝타임이 90여분 밖에 되지 않아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연상호 감독은 관객의 눈을 속이고 싶었던 것일까? 어쩌면 본인을 속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전쟁 영웅이라 피겨까지 만들어지는 마당에 윤정이 용병네는 왜 그렇게 아직도 가난한 것인지 영화에서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아무리 수술비가 비싸다고는 하지만, 그녀를 활용한 제품까지 나오는 데다 용병 특성상 돈을 받고 일하는 군인인데 왜 C등급의 뇌 복제를 동의할 정도로 가난한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윤정이 용병의 뇌를 연구해 전쟁용 안드로이드를 개발하겠다면서 윤정이 용병이 죽었던 작전은 왜 자꾸 시뮬레이션해야 하는지, 하드웨어는 왜 업그레이드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이외에도 아드리안 자치국과의 전쟁이 갑자기 종료된다던지, 크로노이드 회장은 딱 봐도 돈 밖에 모르는데 아무런 상업적 가치도 내지 못하는 연구를 왜 계속 지원하고 있는지, 윤정이 용병의 딸 윤서현 박사는 어떻게 연구소에서 일할 정도로 크게 되었는지, 김장훈 소장은 크로노이드 회장의 뇌를 복제한 것에 불과한데 왜 개별 행동을 하는 것인지 등등 설명이 필요한데 설명이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


<정이>의 장면을 보면 윤상호 감독이 뭘 만들고 싶어 했는지는 짐작이 간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이런 거 한번 만들고 싶었구나'라는 뜻이다. 그냥 그 정지화면을 만들고 싶었던 것일 뿐, 장면 사이사이를 어떻게 메꾸어야 할지, 전체 흐름은 짜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영화가 나온 것이다. 




결국 재미도 없다는 게 제일 문제

사실 주제의식이고 개연성이고를 떠나 영화 콘텐츠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깔깔대며 웃고, 화려하고 이런 재미 말고 이 콘텐츠를 볼 만한 원동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존윅>의 스토리나 개연성 따위를 얘기하지 않고 사람들이 호평하는 건 <존윅>이 관객들이 몰입해서 볼 원동력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정이>가 주제의식이 여러 개이건, 개연성이 떨어지건, 여러 영화에서 장면을 베껴오건 <정이>를 볼만한 원동력을 제공했다면 다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나 <정이>는 그 어떤 것도 달성하지 못했다. 

스토리가 뛰어나 몰입해서 볼만한 힘이 있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해 보는 맛을 주는 것도 아니며, 리듬감 있거나 찰진 액션 장면으로 볼거리를 주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유쾌하고 재밌게 볼 만한 영화도 아니다.


스토리는 뻔하고, 구멍투성이의 전개에, 그저 그런 볼거리의 장면들, 어디선가 베껴온 듯한 장면,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SF영화에서 수없이 봤던 주제 의식 등 볼거리도 없고 줄거리과 주제의식은 지루할 뿐이다. 그래놓고 마지막에 엄마와 딸의 관계를 가지고 신파를 집어 넣고 울어라고 하니 울기는커녕 기분이 나빠진다. 


재미, 볼거리, 메시지 등 그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달성 못한 게 <정이>다.


한줄평
����� 1.5/5
재미, 볼거리, 메시지 등 그 어느 것도 없는 영화.



연상호 감독 영화를 볼 때마다 예전에 <돼지의 왕>을 만든 감독이라는 게 상상이 안 간다. 다음엔 제발 좀 잘 만들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글래스어니언 리뷰 - 피할 수 없는 소포모어 징크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