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장소가 되기까지
영화는 우리를 종종 낯선 곳에 데려가고 그 사이에서 낯익은 기억을 마주하게 한다.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 역시 관객들의 기억에 틈입하는 탁월한 면모를 보인다. 카메라는, 가 본 적 없는 어느 2층의 양옥집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관객들은 어느새 할아버지 집에서의 추억들을 더듬기에 이른다. 알 수 없는 노스탤지어를 느끼며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출처는 어디일까. 우리는 이 영화의 어떤 지점에서 익숙한 향기를 맡게 되는 것일까.
<남매의 여름밤>은 표면적으로 옥주의 가족이 할아버지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벌어지는 해프닝들을 다루며, 그 과정에서 관객으로 하여금 옥주의 시점에 이입하도록 설정한다. 동시에, 집의 시점에서 인무롸 공간을 프레임 속에 담으며 “집의 시간들”을 관객에게 전한다. 할아버지의 집에 들어오는 옥주의 가족을 담은 쇼트는 흡사 집이라는 아늑한 주체가 손님인 그들을 맞이하는 듯 보인다. 그리고 영화의 중반부에 도달하기 전까지, 카메라는 집 안의 곳곳을 훑으며 할아버지의 집이라는 공간으로 관객들을 안내한다. 영화의 엔딩에 다다라서는, 카메라는 등장인물, 특히 할아버지의 흔적이 남아있는 이곳저곳을 연속적으로 프레임에 담는다. 이는 언뜻 할아버지와 긴 세월을 함께 해온 집에게 보내는 헌정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두 “주인공”의 시점은 공간, 그리고 장소로서의 집의 의미를 전달하며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공간과 장소의 미묘한 차이를 생각해본다. 두 단어 모두 어떤 영역을 이르는 말이지만 그 인상과 분위기는 결을 달리한다. 공간이란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속성으로 다가가는 곳을 짖칭한다면, 장소는 각자의 기억과 체험, 시간들이 녹아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간략히 말해, ‘특정한 기억이 녹아있는 공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이미지와 카메라의 구도, 등장인물과의 거리 등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 공간 혹은 장소로서의 “할아버지의 집”을 보여주며, 관객들로 하여금 공통적이면서도 개별적인 향수를 체험하게 한다.
우선 영화는 공간으로서의 집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전시한다. 벽에 걸린 달마도, 유독 반질반질한 가죽소파, 잔고장 없이 오래 써온 선풍기, 원재료를 알 수 없는 담금주 병들이 가득한 방. 그 보편적인 이미지들을 통해 관객들이 경험했거나 혹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을 만큼의 추억을 불러오도록 유도한다. 나아가 분홍빛 노을 아래 뛰노는 모습이나 복잡한 마음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모습, 풀잎이 우거진 정원에서 편한 마음으로 물을 주는 모습 등 관객이 언젠가 우연처럼 경험했을 모습들까지 프레임 안에서 시각화한다. 그다음은, 장소로서의 집을 보여주는데, 이는 옥주의 시점에서 대부분 그려진다. 관객들이 옥주에게 이입하게 함으로써 일련의 적응을 보여준다. 할아버지의 집에 도착했을 때, 옥주는 편하기보다는 알 수 없는 생경함에 불편한 내색을 보인다. 점점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반경을 넓혀나가는 옥주를 보며 관객은 자연스레 유사한 기억을 되살린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그 감정의 변화들을 영화가 포착하면서 관객과의 유대를 쌓고, 회상의 층위를 두텁게 한다.
집이라는 장소가 형성하던 안온함을 위협하려 할 때 카메라는 앞서 사용하던 구도나 거리감을 달리한다. 그를 통해 시간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집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시키기도 한다. 집을 내놓자는 아빠와 고모의 대화에서는 이전까지 등장했던 평상 장면에서 사용되던 구도와는 정반대의 리버스 숏으로 그들을 관찰한다. 또 할아버지를 모실 곳을 살피기 위해 요양원을 방문한 장면에서는 기존 쇼트들에 비해 더욱 거리를 두며 인물들을 프레임 안에 담는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집이 점유한 어떤 지위를 공고히 하면서 관객들이 집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갖도록 한다.
이런 무해한 기억과 경험들을 창조해내면서 영화는 비로소 관객들이 노스탤지어를 느끼도록 한다. 공간이 장소가 되어가는 그 시간들을 목격하면서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기억의 편린들을 재조합하기에 이른다. 우리 할아버지가 비록 정원이 딸린 2층 양옥집에서 지내지 않으셨어도, 방학은 맞아 늦잠을 자는 아들에게 장난을 치지 않아도, 우리는 영화가 데려다 놓은 그 장소 안에서 파편화된 기억을 다시 모아보는 것이다. 그 방식을 통해, 영화는 우리의 세밀한 기억으로 풍성해진 체험을 자양분 삼아 추진력을 얻는다. 그렇게 또 한 걸음 내딛으며 현실과 닮아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