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꿈꾼 꽤 비밀스러운 일탈
누구나 한 번쯤 ‘다른 나’로 살아보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있을 것 같다. 아무도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곳에서 완전히 다른 나로 살아보는 상상. 그것이 성격, 말투, 아니면 옷 입는 스타일이든 그게 뭐든 간에. 부캐라는 멀티 페르소나적인 개념이 사회적 트렌드로 자리 잡은 이유도, 우리 모두 마음속에 또 다른 자아를, 아니 어쩌면 그것이 하나의 탈출구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지는 않을지.
유리상자 속 같은 삶을 깨고 나오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만 서른이었다. 사춘기가 늦게 온 것인지 아니면 Midlife Crisis(40~60대 찾아오는 정신적 위기를 일컫는 말)가 일찍 온 것인지. 마음속 지하창고에 갇혀있었던 무언가가 터져 나온 것일 수도. 아무튼 그랬다. 한번 들이닥친 태풍은 쉽게 가실 바람이 아니었고 결국 십 년 넘게 다니던 직장에 사직표를 던졌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가기로 결정했다.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인생에 쉼표 하나를 달아준다는 생각으로, 우선 일단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을 목표로. 걱정 많고 생각 많고 소심한 지금까지의 나는 이제 버려두고 완전히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 하고 만세 삼창하는 마음으로.
일단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름대로 산다던데, 내 이름은 거꾸로 불러봐도 일탈하고는 거리가 먼 느낌이었다. 진짜로 개명을 할 생각은 없었지만 적어도 부캐의 이름이 필요했다. 친구들과 만난 저녁식사 자리에서 화두를 던졌다.
"Guys, throw me some hot names please!"
(얘들아, 섹시한 이름 몇 개 좀 말해줘 봐!)
친구들은 마치 본인들이 이름을 바꾸는 것 마냥 신나서 여럿 이름들을 내놓았다. 그중 최종 후보에 오른 이름에는 Alycia(엘리샤), Taylor(테일러), (Sara)사라 등이 있었고 그중 내가 선택한 것은 Emma(엠마)였다. 평소에 엠마왓슨을 좋아한 것도 있었고, 일단 주변에 동명이인이 없었으며, 그냥 단순히 이름이 예뻐 보였다.
상상 속 엠마는 핑크 애쉬 옴브레의 긴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어깨 뒤에 한 송이 작은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휴일에는 자주 가는 위스키바에서 진토닉을 즐기고, 때때로는 EDM 축제에서 쿵쿵거리는 베이스로 빨려 들어가 춤으로 스트레스를 풀곤 한다. 그러나 평일에는 새벽같이 일어나 헬스장에서 땀을 흘리고, 멋들어진 정장과 힐을 신고 매콤한듯한 우디향을 풍기며 출근하는 도시여자이다.
하지만 변화에는 엄청난 힘이 따르며, 반대로 관성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몰랐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정말 맞다. 어느 순간 참새가 방앗간을 드나들듯 위스키바에서 진토닉 대신 교보문고에서 책을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매콤한 우디향 대신 교보문고 시그니처 디퓨저 향을 사들고 킁킁거리고 있었다. EDM 축제가 아닌 독서모임에 가입했고 춤이 아닌 글쓰기에 빠졌다. 그래, 사람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뀌겠어라고 위로하며 지내기를 삼 년. 더 늦기 전에 나는 작지만 방대한 엠마 프로젝트의 한 부분을 실행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는데, 그것은 바로 탈색이었다.
검정 색소가 많은 동양인 머리카락으로 애쉬적인 느낌을 내려면 탈색은 필수였다. 헤어 스타일리스트분과 상담을 통해 색을 결정하기로 했는데 과감하게 색을 고르는 자와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자와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건 너무 튀는 것 같아요...”
“에이~ 전혀 안 그래 보여요”
“그래도 한 이 정도가 좋을 것 같은데…”
“고객님! 변화를 주고 싶다면서요, 지금 고르신 걸로는 티도 안 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 그래도.."
결국 나는 아주 무난한 색을 골랐다. 애쉬 핑크 옴브레 하고는 아주 거리가 먼, 애쉬 다크 브라운으로.
탈색은 모발에서 멜라닌 색소를 제거함으로써 원하는 색깔이 머리카락으로 잘 흡수될 수 있도록 돕는 작업이다. 때문에 머릿결이 많이 상할 수밖에 없다. 특히 내 경우 석회질이 많은 캐나다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머리카락에 금속 성분이 많이 쌓여 쉽게 탈색이 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보통 사람들보다 머릿결이 두배로 더 상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일단 시작해 봐야 상태를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거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일단 금발로 먼저 완전히 탈색을 한 후에 일주일 정도 기다렸다가 염색약을 입혀야 손상도를 그나마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생 금발머리로 회사에 출근을 해야 한다는 말인데, 이미 상상만으로도 벌거벗은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고 더 멀리 상상할 것도 없이 그냥 안 되는 일이었다. 그날이 금요일이었는데 결국 토요일 딱 하루만 금발로 사는 것으로 타협을 보았다.
탈색 작업은 생각보다 정말 정말 오래 걸렸다. 장장 다섯 시간을 넘게 의자에 앉아 있으니 목부터 어깨, 허리까지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하지만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고, 길고 긴 인내의 시간 끝에 드디어 결과물이 공개되는 순간이 왔다.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천천히 눈을 떠 보았다. 거울 앞에는 내가 서 있었지만, 거울 속에는 엠마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거리 속 건물 창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게 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랬다. 금발머리로 밖을 나서는 일은 나름의 용기가 필요했는데 신기한 것은 너무나도 어색한 내 모습에 조금 민망하기는 했지만 부끄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피할 곳이 없어지니 대담해지는 기분이었고 덩달아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았다. 기왕 하루를 금발로 살아야 한다면 최대한 즐겨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다음 날 친구와 성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하지만 찰나의 용기는 밀려드는 주말인파에 반나절도 못 가 바로 꼬리를 내렸다. 다른 곳도 아닌 성수라니 무슨 생각이었던 걸까. 누구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히 걸어 다니는 모습을 상상했건만 마치 온 우주가 나를 처다 보고 있는 것처럼 얼굴이 화끈거렸다. 밥을 먹을 때도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넘어가는지 계속 신경이 쓰여서 편하게 먹지 못했고 결국 옷가게에 들러 급하게 모자를 샀다. 친구는 아무도 신경 안 쓴다고 오버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냥 어딘가 불편했다. 멜라닌 색소가 빠져나갈 때 오래 묵은 소심함도 같이 빠져나갈 줄 알았건만, 이런. 생각보다 재밌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어쩌면 나도 몰랐던 나를,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내가 무언가 놓치고 있다고 생각했고 엠마를 통해 그 무언가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지금껏 말 잘 듣는 K-장녀로 살며 주저하게 된, 용기 내 보지 못한, 그래서 닿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 때문에 남의 인생이 더 특별하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지. 스스로 평범함은 재미없음이라 단정 지었고 자랑(?)할만한 일탈 한번 없이 인생을 즐기고 있다 말할 수 있을까 하며, 내 멋대로 멋없는 인생이라 정의했다. 그때 왜 나는 내 인생이 무채색이라 생각했을까? 머리를 애쉬 핑크 옴브레로 염색한다고 해서 갑자기 인생이 다채로워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후 나는 두 달에 한 번씩 십오만 원이나 들여 헤어 영양 케어라는 것을 받아야 했다. 탈색 머리가 완전히 다 잘려 나갈 때까지 꾸준히 관리해주어야 한다. 변화는 여러모로 비싼 값을 치르나 보다. 그렇지만 덕분에 나는 내게 주어진 모든 순간을 껴안는 법을 배웠다. 정말로 놓치고 있었던 것은 반대편에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지금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를 인정하는 일이었다. 이 정도면 꽤 성공스러운 일탈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