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다스리는 법
마지막으로 꿈을 꾸지 않고 잔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매일밤 꿈을 꾼다. 보통 하루에 몇 편을 연달아 꾸는 적도 많은데, 꿈꾸는 것도 능력치가 쌓이는지 언젠가부터는 꿈인 것을 자각하고 자유자재로 꿈을 조종하는 경우도 있다. 어젯밤에도 꿈을 꾸었다. 벌려 놓은 일이 너무 많은 상황에서 이것저것 문제가 터져 골치 아픈 꿈이었는데, 그 와중에 너저분해진 방을 보며 이건 또 언제 치우나 하고 한숨을 푹 내쉬려는 찰나, 순간 지금 이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얼른 온 신경을 집중하여 눈을 떠보니 역시나 꿈이었다. 방금 전까지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고 해결해야 하는 문제도 많았는데, 이 모든 것이 눈 한번 힘주고 뜬 것으로 말끔히 사라지다니. 마치 그냥 누르면 되는 리셋버튼처럼.
순간 모든 일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에 놓인 고민들과 걱정들과 문제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많은 일들이, 눈을 뜸으로서 사라져 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없었던 일처럼 돼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영화 인셉션처럼 지금 이 순간도 결국은 또 꿈속에 꿈속에 꿈이었다고 믿어보면 되려나? 그것도 아니라면 이미 뜬 눈을 어떻게 다시 뜰 수 있을까 침대에 누워 천천히 잠을 깨다 어렴풋이 떠오른 단어는 '직시'였다.
직시의 사전적 의미: 정신을 집중하여 어떤 대상을 똑바로 봄
요즘 나는 도망가지 않기를 부단히 연습 중이다. 일이든 관계든 감정이든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기. 내게는 엄청난 에너지가 드는 일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천천히 깨부수고 있는 중이다. 최근 이사도 하게 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많은 변화를 겪고 있는데, 알아봐야 하는 일도 많고 처리해야 하는 일도 많고 하나부터 열까지 처음 해보는 것 투성이지만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씩 부딪쳐보는 중이다. 나는 종종 아주 작은 일에도 쉽게 두려움을 느낀다. 어쩌다 내 마음이 그렇게 프로그램화된 것인지를 아는 것은 별개의 문제고, 신기한 것은 직시하기만 해도 두려움의 무게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갑자기 누가 덜어낸 것도 아니고 크기가 작아진 것도 아닌데 그렇다.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불안은 쪼그라든다. 멀리서 보기에 큰 산처럼 보였던 일들은 산 입구에 서면 오를만하게 느껴지고 막상 오르다 보면 아주 작은 언덕이었음을 깨달으며 안심한다.
영어로 'Eye-Opening'이라는 말이 있는데, 잠을 깨우는, 눈이 휘둥그레지는, 놀라운, 경이로운 이라는 뜻의 형용사로 어떤 좋은 것을 보았을 때, 멋진 광경을 마주했을 때, 신기한 경험을 했을 때 등 긍정적인 표현으로 쓰인다. 왜 눈이 떠진다는 표현을 썼을까 생각해 보니 눈을 뜰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었다. 물론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이 괴로워 영원히 꿈속으로 피해 있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에 눈을 뜬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뜻이니 눈 뜸은 곧 생명력이구나.
비록 오늘 아침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어떤 일들이 마법처럼 뿅 하고 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천천히 눈을 살짝 떠 그 틈새로 새어 나가는 불안을 잘 보내주고, 새어 들어오는 안정과 잘 지내보려 한다. 모니터 밖 시야로 집 정원이 보이는데, 무성한 초록 잎 세상을 펼쳐내는 나무들과 봄과 여름 사이로 다투어 피는 꽃들 그리고 뭐가 그렇게 바쁜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다람쥐와 토끼들이 눈을 뜨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나뭇잎 사이로 파란 하늘연못이 보이고 연못 위에는 연꽃처럼 구름이 둥둥 떠 있다. 살랑한 바람과 함께 찾아온 감사함에 눈을 더 크게 떠 초록과 파랑을 눈에 담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