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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앤희 Oct 11. 2024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어쩌면 (우리의) 아름다운 날들 2

일기예보는 적중했다. 알람대신 빗소리로 잠에서 깨는 일은 오랜만이었고 거세게 내리는 비는 마당에 피어난 하얀 수국이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로 쏟아졌다. 살면서 불쑥불쑥 새삼 감사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추운 겨울날 기다리던 버스가 바로 왔을 때,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며 시답잖은 이야기로 웃을 때, 키우는 강아지가 내 품에서 포근히 잠들 때, 하루를 별일 없이 마치고 이불속으로 들어가 맨 두발을 꼼지락 될 때. 그리고 하나 더, 비 오는 날 실내에서 창밖을 바라볼 때. 조금 더 기분을 내보고 싶어 LP를 틀었다. 음악은 모든 순간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힘이 있으니까. 거센 빗소리와 잔잔한 음악이 더해지니 마치 멋진 베이스와 부드러운 알토의 합창처럼 느껴졌다.  


사실 제주여행의 반은 날씨가 다했다고 해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주로 자연 풍경과 야외활동을 즐기러 오는 곳이기 때문에 비가 오는 순간 할 수 있는 것들의 제약을 많이 받는다. 이 비를 뚫고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 이전에 스치며 들어보았던 포도뮤지엄이 생각났다. 빠르게 네이버에 검색을 해보니 마침 전시를 진행 중이었고 거리도 숙소와 아주 멀지 않았다. 가자!


후배는 포도뮤지엄에 가기 전에 들리고 싶은 카페가 있다 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카페인데 내게 꼭 소개를 해주고 싶다고. 사실 제주에는 예쁘고 이색적인 카페가 정말 많고 특히 바다를 끼고 있는 카페들은 별다른 인테리어가 필요 없어 보일 정도로 바다 자체가 시그니처 메뉴가 되는 곳도 많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어떤 곳이길래? 입구에 도착하니 카페 밖에서는 커피콩 볶는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기대에 잔뜩 차있는 내게 후배는, "나 감성카페요!" 하고 외치는 곳은 자기 취향이 아니라며 정말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 있는 곳이라 자부했다. 커피는 직접 테이블로 가져다주셨는데, 잔에서부터 주인의 취향이 느껴졌다. 향, 고소함, 산도, 온도에 따라 변화하는 커피의 맛 등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고, 서로 다른 커피를 시킨 후배와 나는 커피 한잔에서 느낄 수 있는 그 복잡한 세계를 탐험하는 마음으로 음미했다. 이렇게 취향을 알게 되는 일은 정말 즐겁다. 어릴 적 소화기간이 약해 고기를 잘 못 드시는 아빠 때문에 우리 집 김치찌개에는 고기대신 늘 낙지가 들어갔는데, 어느 날 놀러 간 친구집에서 김치찌개에 돼지고기를 넣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돼지고기 김치찌개의 맛을 알게 된 일은 나의 맛의 세계를 확장시키는데 엄청난 기여를 했다. 누군가의 취향을 엿보는 것은 내게 그런 느낌이다.


섬세한 커피맛을 충분히 즐긴 후 우리는 포도뮤지엄으로 향했다. 뮤지엄에서는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이라는 전시를 진행 중이었다. 전시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는 제목만으로 어떤 컨텐츠인지를 알 수가 없었다. 왜 '어쩌면'이라는 단어가 붙었을까? 무엇을 두고 아름다운 날들이라고 이름 붙였을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초입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었다.

   

'초고령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는 오늘날, 노년의 삶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에 온기를 더하고 세대 간의 공감을 모색하고자 마련했습니다'


내 나이 서른 중반, 노년이라는 단어와는 아직 멀지만 가까운 사람들의 노년을 조금 더 직접적으로 느끼기 시작하는 나이. 먼 얘기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더 이상 먼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하는 나이. 그즈음 바라보는 노년의 삶이라. 나는 곧바로 전시의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쩌면 아름다운 날들 전시 中


노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늙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육신과 정신의 노화를 두고 말하자면 나는 정신의 노화가 더 두렵다. 내게는 중증치매를 앓고 계시는 할머니가 있다. 간병인 없이는 모시기 힘들어 지금은 요양원에 계신다. 내가 누구인지, 아니 당신이 제일 아끼는 아들이 누구인지도 겨우 기억해 내는 할머니를 보며 기억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를 보았다.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단지 누구를 못 알아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보낸 시간, 그 모든 시간 속에 있었던 당신과 나, 함께 지켜온 것들, 하물며 미움까지도 허무로 변하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이 허무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던 중, <Forget Me Not>이라는 제목의 설치미술 전시를 보게 됐다. 행여나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어떤 감상도 미리 빼앗고 싶지는 않아 자세히 적지는 않겠다. 영상과 설치미술로 만들어진 이 전시는 배롱나무의 일생을 통해 만물 속 생명의 시작부터 그 마지막까지, 우리의 삶을 빗대어 생의 순환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벽에는 이런 설명이 덧붙어있었다.


"기억이 소멸해도, 사랑은 더 근원적인 형태로 남아 우리와 함께한다."  


모든 것이 허무라는 이름을 달고 사라질지 몰라도, 여전히 사랑은 남는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문뜩, 삶이란, 계속 움직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어느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 것. 그렇기 때문에 소멸이 아니라 그저 그냥 계속 움직이는 것.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늘 어떤 형태로 남아있는 것.


< Forget Me Not >


인상 깊었던 작품 하나를 더 나누고 싶다. 조각난 캔버스로 이루어진 <재구성된 풍경>이라는 미술작품이다. 한번 조각난 캔버스는 이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장면들을 만들어낸다는 소개글을 읽었다. '이전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그러나 여전히 아름다운'이라는 말이 계속 생각을 붙잡았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우리는 매일 노화한다. 노화란 늙어간다는 뜻도 되겠지만 변화한다 라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매일 변화한다. 어제는 오늘과 같을 수 없고, 오늘의 나와 어제의 나는 물리적으로도 같을 수 없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가 사라지거나 무의미해지거나 쓸모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이전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아름다운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대로, 같을 수 없는 것은 같을 수 없는 대로.  


 Reconstructed Landscape (재구성된 풍경) by Davis Birks


전시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어느새 비가 그치고, 안개가 자욱이 들어섰다. 습기를 푹 머금은 몽환스러운 제주 산속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지만 마음은 더없이 또렷해졌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여, 어쩌면, 아니, 우리의 아름다운 날들이 만들어져가고 있겠지. 우리는 곧바로 허기진 배를 채우러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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