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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망디 Jun 29. 2023

강렬했던 순례길 첫 아침의 추억

800km를 걸을 마음의 준비가 되었나요?

우리는 프랑스 바욘에서 생장으로 아침 일찍 출발했다. 바욘버스터미널에서 생장으로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제법 많은 사람이 모여 버스가 출발할 때는 좌석을 꽉 채웠다. 그렇게 세계각지의 순례자들을 태운 버스는 한 시간가량을 달려 생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함께 순례자 사무실에 도착했고 그 뒤엔 저마다의 숙소를 찾아 서로의 길을 떠났다. 그리고 우리는 55번지 알베르게에서 순례를 시작했다.

55번 알베르게에서 보이는 풍경

큰 방에 오직 2층침대만이 채워진 그 방은 몹시 생소했다. 그동안 도미토리식 숙소에 제법 적응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그곳은 휴식이 아닌 오직 '잠'만을 위한 공간 같았다. (어쩌면 이게 맞는 거지만) 다른 기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눕고, 잠드는 것에만 충실한 공간에 압도당한 나는 새로운 여정을 떠난다는 설렘을 만끽하기도 전에 '잘 잠들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되었다.


부스럭부스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침이 시작되었다.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를 그 소리를 기점으로 함께 잠든 순례자들이 하나 둘 눈을 떴다. 빛 한점 들지 않았던 방은 어느새 문틈으로 비친 불빛이 새어들어오고 있었다. 선잠이 깬 나는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한다는 머리와는 다르게 침대에 누워있었다. 


'아. 내가 오자고 했지만 정말 가기 싫다.'


아침잠이 더덕더덕 묻은 눈을 떠 몸을 일으키기 힘들었다. 5분만 더 누워있어도 되지 않을까 하며 속으로 게으름을 한껏 피우고 있을 때 내 침대에 무언가가 떨어졌다. 작게 눈을 떠서 보니 옆 침대에 있던 동생이 내쪽으로 무언가를 던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자고 있는 이 조용하고 소란스러운 방에서 소리 내어 나를 깨울 수는 없었는지 물건을 나에게 던져 나를 깨우려는 시도였다.


동생은 자신의 침대에 앉아 몸짓과 온 얼굴 근육으로 나에게 화를 내고 있었다. 동생의 바디랭귀지를 언어로 해석하면 '아니! 언니. 우리 아침 5시에 일어나기로 했는데, 왜 안 일어나? 일어나기로 했으면 발딱 일어나야지! 내가 이렇게 물건을 던지는데도 왜 안 일어나냐고. 내가 말도 못 하고 어! 알아서 좀 일어나! 그리고 일어났으면 얼른 준비해.'였을 것 같다.


내가 일어나니 그제야 동생도 준비를 시작했다. 순례길의 준비라고 할 것도 없었다. 일어나서 세수하고 양치하고 선크림을 바르고 무릎보호대를 찬 뒤 짐을 정리하고 떠나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빠른 짐 싸기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는 짐을 정리하는데만 한참이었고 (침낭을 정리하는데 오래 걸림) 씻는 차례를 기다리는 것 또한 한참이었다. 분명 눈을 떴을 때는 어두웠는데 알베르게의 문을 열고 나오니 어슴푸레하게 해가 뜨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순례는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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