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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사이 Jan 16. 2024

찬란하고 어두웠던 물리학의 시대, 여전히 배고프다

‘불확실성의 시대’를 읽고

불확실성의 시대(토비아스 휘터/배명자 옮김)


책 표지에 모든 것이 드러나 있다. 1900년부터 1945년의 시기를 조망하며, 주인공을 표지 모델로 내세운다. 슈뢰딩거, 아인슈타인, 보어, 하이젠베르크 등 물리학의 거장들이 거시적인 우주부터 미시적인 원자까지 훑어가며, 자연의 존재 방식과 형태를 그려나간 시대다. 특히, 원자 수준의 세계는 이미 인간의 이해범위를 벗어난 듯, 당대 거장들 사이에서도 격렬한 논쟁거리였다.

저자는 이때를 ‘불확실성의 시대’이자 ‘찬란하고 어두웠던 물리학의 시대’라 부른다.


이 책을 크게 두 개의 축으로 해체한다.

 

제1축)

막스 플랑크는 흑체 복사 연구를 통해 에너지는 ‘불연속적 단위’ 즉 양자로 존재한다고 밝힌다.

톰슨, 러더퍼드를 넘어, 닐스 보어는 새로운 원자 모델을 제시하며, 원자핵 주위의 전자는 불연속적인 에너지 수준에 위치한다고 가정한다. 에르빈 슈뢰딩거는 입자의 파동방정식을 도출하며, 입자의 위치를 찾을 수 있는 확률에 관한 수학적 틀을 제공했다. (고양이 사고실험으로 양자역학을 거부하고자 했지만, 역설적으로 양자역학에 힘을 실어준 슈뢰딩거를 제1축에 놓고 싶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알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를 개발한다.

아인슈타인은 보어와 솔베이회의에서 두 차례 격돌하기도 했지만,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과 함께 양자이론을 죽을 때까지 인정하지 않는다.

 

제2축)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원리,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성을 나타내는 E=mc^2 등의 획기적 이론을 제시한다. 제임스 체드윅은 중성자를 발견했고,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은 중성자를 이용하여 우라늄 핵분열을 발견한다. 과학자들은 연쇄 반응을 일으켜 E=mc^2의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질라르드와 아인슈타인은 핵분열을 이용한 무기가 개발될 수 있다는 경고 서한을 루스벨트에게 보내고, 결국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주도로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1945년 8월, ‘물리학의 위력’을 가장 순수하고도 잔인한 방식으로 세상에 드러낸다.


제1축과 제2축은 중첩되지만, 무게중심은 확실히 변했다.

‘1925년은 아인슈타인 시대의 끝이자 하이젠베르크 시대의 시작이었다’ p183


아인슈타인은 주류 물리학계와 거리를 두었기에 독자적인 물리 법칙을 발견했다. 하이젠베르크는 젊은 나이로 기성세대의 사고를 벗어나 창의적인 모델을 제안했다. 아인슈타인이 필연적인 진보의 파동 위에서 담대하게 바통을 넘기지 않은 것은 아쉽다.


독일 패전 후 1945년.

하이젠베르크는 다른 독일 과학자들과 함께 영국의 헌팅던셔 농장의 ‘팜 홀’이라는 붉은 벽돌 건물로 보내졌고, 히로시마 폭발이 있던 8월 6일 저녁에는 잔디밭에서 럭비를 하며 즐기고 있었을 뿐이다.


불확실성의 시대에 천재 물리학자들이 대거 등장하며 마치 입자처럼 충돌했을지라도, 과학사의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볼 때 거대한 진보의 파동 역시 상쇄되고 보강되어 가는 듯하다. 아인슈타인이 지고, 하이젠베르크가 뜨고, 다시 하이젠베르크는 저물어 간다.


양자역학도 원자폭탄과 함께 끝난 것일까? 아니면, 핵융합이 시도되듯 양자 기술의 시대를 열 것인가?


1935년 양자역학을 반박하기 위해 제시했던 EPR역설은 ‘벨 부등식’에 대한 존 클라우저 등의 실험으로 ‘성립하지 않음’, 즉 양자 얽힘이 증명된다.

양자 얽힘을 증명한 존 클라우저, 알랭 아스페, 안톤 차일링거는 2022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다.


한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제3축으로 본다면, 제2축과 맞닿아 길게 이어질 것이다.

1945년 원자폭탄과 함께 욕망은 산산조각 나고, 공포가 고개를 든다. 뒤늦게 고뇌하고 자책하는 오펜하이머가 끝일까? 오펜하이머의 제자, 데이비드 봄은 EPR역설을 지지하는 실험을 했고, 닐스 보어는 다시 슈테른-게를라흐 실험으로 반박한다.

 

이쯤에서 정리한다.

과학은 인류의 손에 쥐어진 하나의 도구에 불과할까? 과학자의 책임은?

하나님이 선악과를 두되, 호기심에 먹은 인간을 통제하지 못했다. 호기심이 과학의 본질이라면, 신조차도 어쩔 수 없다. 굳이 책임을 묻는다면, 내 손에 피가 묻었다고 말하는 양심에 물어라. 정치인이든, 과학자든.


물리학자들은 아직 배가 고프다.

양자역학 발전의 어딘가에 ‘앤트맨과 와스프’의 고스트가 군사 프로젝트로 등장하여 또 다른 오펜하이머를 만들지 않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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